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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타인의 취향 말고, 나의 취향 <소공녀>(2017)

2020년 12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세계 명작으로 손꼽히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설 《소공녀》에서, 주인공 세라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언제나 품격을 잃지 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교훈과 감동을 선사한다. 전고운 감독이 연출한 영화 <소공녀>는 미소(이솜)라는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이런 소공녀의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지 질문한다. 2년 차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미소는, 성심성의껏 청소를 하고 받은 일당을 월세와 세금, 약값으로 저금하는 성실한 인물이다. 별다른 욕심 없는 그녀에게 포기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

부딪혀도 또 뭉치는 가족의 비밀 <남매의 여름밤>(2020)

2020년 11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이삿짐이 실린 아빠의 봉고차에 몸을 실은 중학생 옥주와 남동생 동주는 할아버지 댁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한다. 할아버지의 병색이 짙어졌다는 소식에 남매의 고모 미정도 들어온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다섯 명은 무더운 여름을 함께 보내게 된다.  2015년 영화 <불꽃놀이>를 연출하고, <남매의 여름밤>으로 첫 장편 데뷔를 한 윤단비 감독에게는, 평범한 일상에서 감지되는 작은 변화를 깊이 들여다보는 특별한 눈이 있다. 병기는 낮잠 자는 아들을 보고 어렸을 적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장난과 같은 장난을 치고, 배우자...

고양이와 함께한 절망 탈출기 <내 어깨 위 고양이, 밥>(2016)

2020년 10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런던 시내에서 버스킹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제임스(루크 트레더웨이)는 벌이도 시원찮은데다가, 허름한 차림새와 지저분한 몰골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에게 내쫓기기 일쑤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제임스는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 ‘밥’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자기 전재산을 들이고 밥에게 먹을 것을 챙겨 준다. 그 후로 길고양이 ‘밥’은 제임스의 버스킹에 함께하며, 특유의 친근감으로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다. ‘밥’으로 인해 제임스는 평생 한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따뜻한 환호를 경험하며, 약물 중독 치료와 재활의 의지를 다진다. 영화...

재봉틀로 꿈꾸는 복수<드레스 메이커>(2015)

2020년 09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호주의 대표 여성 작가 로잘리 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드레스 메이커>는 동갑내기 소년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고향에서 쫓겨났던 틸리(케이트 윈슬렛)가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벌이는 복수극이다. 성공한 틸리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첫 번째 이유는 마을에 혼자 남은 엄마 몰리(주디 데이비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틸리가 마을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정신이 불안정해진 몰리는, 자신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또 다른 이유는 살인자라는 누명을 벗고 진실을 알기 위함이었다. 틸리는 ...

더불어 사는 세상을 고민하다 <기생충>(2019)

2020년 08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2019년 칸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를 넘어 세계 영화사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전작들에서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들면서 살아 있는 디테일과 장르적 변주를 통해 대중을 사로잡았던 봉 감독은, <기생충>에서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 숨겨진 이면을 예리하게 건드린다. 과거에는 부자와 악덕, 가난한 자와 선량의 이미지가 연결됐다면, 현시대는 극중 충숙(장혜진)의 “부자니까 착한 거야, 내가 부자였으면 ...

무지개 너머 매직 킹덤을 찾아서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2020년 07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올랜도의 디즈니랜드 근방에 사는 여섯 살 꼬마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의 이야기다. 무니는 친구들과 주차된 차에 침을 뱉거나 모텔의 누전 차단기를 내리는 등 다소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천진난만한 악동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잔돈을 구걸해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거나 폐허가 된 콘도에서 놀다가 불을 내는 모습을 보면, 아슬아슬한 긴장과 함께 어딘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사실 무니는 디즈니랜드가 보이는 ‘매직 캐슬’이라는 모텔에서 엄마와 살고 있다. 디즈니랜드 근처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형형색색의 기념품 숍...

지친 영혼에게 갓 지은 밥 한 끼를 <리틀 포레스트>(2018)

2020년 06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임순례 감독이 연출한 <리틀 포레스트>는 음식을 다룬 영화이다. 감독은 요리 전문가의 부담스러운 영역이 아니라, 일상의 범주에서 소박한 음식 한 끼가 힘들고 지친 사람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고시에 낙방한 혜원(김태리)이 고향 집에 내려왔다. 갑자기 왜 왔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배가 고파서 밥 먹으러 왔다”라는 대답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녀는 고향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집 앞마당, 뒷산, 고모네 논, 친구네 과수원 등에서 계절이 제공한 신선한 먹거리로 한 끼 한 끼 정성스레 밥을 지어 먹는다. 팥을 찌고 빻은 치자 ...

동상이몽이 된 관계의 끝 <결혼 이야기>(2019)

2020년 05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결혼 이야기>(2019)는 뛰어난 배우들의 역량과 조합으로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으로, <오징어와 고래>, <마고 앳 더 웨딩>, <위아영>,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등을 통해 가족 간의 미묘한 갈등과 복잡한 감정에 대해 다뤄 온 노아 바움백 감독의 최신작이다. LA 출신 배우인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극단을 운영하는 연출가 찰리(애던 드라이버)과 함께 아들 헨리를 키우며 뉴욕에서 산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TV 출연도 거절하고 남편의 극단에 집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지가...

작은 선택이 모여 내 삶이 된다 <7번째 내가 죽던 날>(2017)

2020년 04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4월이다. 더욱이 4·3 제주 항쟁과 4·19 혁명, 4·16 세월호 참사 등 우리 사회가 겪은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해야 하는 달이기도 하다. 두렵게 혹은 멀게만 느껴지는 죽음.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나의 죽음’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7번째 내가 죽던 날>(라이 루소 영 감독)은 미국의 신인 작가 로렌 올리버의 데뷔작으로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큰 호평을 받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십대 소녀의 죽는 날이 반복되는 타임 루프(time loop: 이야기 속에서 ...

돌아온 탕자, 그 현대판 이야기 <벤 이즈 백>(2018)

2020년 03월 장다나(영화 평론가)

크리스마스 하루 전 홀리(줄리아 로버츠)와 가족들 앞에 아들 벤(루카스 헤지스)이 나타난다. 벤은 약물 중독으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던 중, 연락도 없이 불쑥 가족들을 찾아온 것이다. 반가운 마음과 걱정 반으로 기쁘게 맞이한 홀리와 달리, 재혼한 남편과 딸은 벤의 방문이 반갑지 않다. 함께 성탄예배를 다녀 온 그날 밤, 홀리의 집은 도둑이 들어 난장판이 되고, 반려견 폰즈가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어느 누구도 벤을 반기지 않는 상황 속에서 홀리와 벤은 폰즈를 찾아 나서고, 이들의 갈등과 균열은 점점 커진다. <벤 이즈 백>은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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