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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가

2020년 02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요한복음 1장 1절~5장 47절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의 기억에 따라, 일곱 개의 표적을 중심으로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그중에서 ‘가나의 혼인잔치,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베데스다 연못의 치유,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는 공관복음서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으로, 요한복음만의 특별함을 맛보게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기록해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 2월호부터 시작하는 요한복음 묵상을 통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믿는 일이 왜 중요한 지를 다시금 마음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의 수신자, 기록 시기 및 목적에 대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와 십자가 죽음에 대해 구약에 기록된 예언이 성취됐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구약 인용은 1차 수신자인 에베소의 그리스 로마 문화권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이들은 이방 땅에 살면서 유대 민족에게조차 버림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었기에 구약의 말씀이 성취된 사실을 통해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요한복음은 ‘누구든지’(요 3:16)라든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참조 요 20:29)이라는 표현 등을 통해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함을 알게 합니다. 기록 시기는 공관복음이 완성된 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기 전인 A.D. 70~95년경으로 보이며, 기록 목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며 신자들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참조 요 20:30~31).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장)
요한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1장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예수님에 대한 호칭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로고스)’으로 소개합니다(요 1:1, 14).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와 계시, 구원을 감당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해서 이 땅에 하나님을 계시하고, 인간은 이 말씀을 영접함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이 요한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며, 영접하지 않는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매우 당연한 논리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대원칙을 1장에서 의도적으로 서술하며,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정확히 밝힙니다.
세례 요한에 관한 내용도 중요합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요 1:6)으로,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빛에 대한 증언하는 자로(요 1:8, 23),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자로 철저하게 자신을 낮췄습니다(요 1:29~34).
요한이 예수님을 묘사한 표현 가운데 중요한 구절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36)라는 부분입니다. 이는 사망 권세를 해결할 자가 예수님이심을 보여 주는 표현으로, 자신의 두 제자에게도 이를 설명하고 예수님을 따르게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역은 세례 요한의 도움으로 시작해, 베드로, 안드레, 빌립, 나다나엘과 같은 제자를 통해 확장됩니다.


혼인잔치와 성전 청결에 담긴 의미(요 2장)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을 통해 새 시대가 열립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께서 초청받아 가셨는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당시 잔칫집에서 포도주를 제공하지 못하는 일은 심각한 문제였기에, 마리아는 예수님을 통해 이 위기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때가 아니라며 거절하셨다가 이후 곧바로 반응하신 예수님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이신 이적은, 잔칫집에 떨어진 포도주를 공급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 성전 체제, 즉 옛 질서를 상징하는 돌 항아리(요 2:6)에 물을 채워 포도주로 변하게 함으로, 예수님만이 새 질서를 세우시는 분임을 알리셨습니다. 다시 말해, 유대교는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과 같아서 기쁨이 흐를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잔칫집에 새 질서를 부여하심으로 기쁨이 끊이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요 2:1~12).
이후 예수님께서는 유대교 성전은 파괴되고, 새 성전을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요 2:19). 여기서 새 성전은 예수님의 몸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전 기능이 완성됨을 뜻합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하고 교제하는 곳으로써 온전히 기능하려면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돼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온전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장)
유대교의 질서가 옛 질서라고 기록한 사도 요한은 3장에서 유대교의 지도자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만남을 통해 앞서 밝힌 내용을 이어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이라는 단어를 설명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을 가르치십니다.
‘거듭남’이란 ‘위로부터 나야 한다’라는 뜻으로,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나기 위해서는 인자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이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만남을 기록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가 예수님이심을 증명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밝힙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면, 자연스럽게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게 됨을 알려 줍니다. 니고데모도 예수님과의 교제 덕분에 어둠의 터널을 종식시키고 참된 빛이 무엇이지를 알게 됩니다(요 3:1~21).
3장은 다시 예수님의 존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세례 요한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한 구절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입니다. 그의 말처럼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숨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지라(요 4장)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자신들이 시내산 언약의 정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주장하는 논쟁 자체의 무의미함을 지적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참되게 드려야 할 예배의 핵심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여인의 증언은 사마리아인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믿게 하는 씨앗이 됐고, 예수님의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세상의 구주로 고백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요 4:21~42).
예수님의 메시아이심과 믿음의 중요성은 죽어 가는 아들을 둔 왕의 신하와 예수님의 만남에서도 확인됩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직접 오셔서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들이 이미 나았다고 선언하십니다. 왕의 신하는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해 아들이 완쾌됨을 보고, 가족 모두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게 됩니다(요 4:43~53). 이처럼 예수님은 종교와 이념, 시공간을 초월해 구원의 능력을 베푸는 구원자로 은혜의 통로가 되셨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5장)
삼십팔 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의 핵심은, 안식일에 병 고친 일이 ‘안식일을 범한 행위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과 논쟁을 일으키신 이유는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하며,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요 5:9~18).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완전한 창조를 이루고 기뻐하신 날인데, 창조 세계의 타락으로 더 이상 기쁨이 존재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생명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는데, 이는 안식일의 주인인 자신의 권한을 사용하셨기에 전혀 문제될 소지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이 땅에 구원 사역과 심판 사역을 하시기 위해 오셨기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성경 연구를 통해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요 5:30~47).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사는 법(시 111~112편)
요한복음과 함께 묵상할 시편 111편과 112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방법을 확인하게 합니다. 111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뻐하는 자라면, 그가 하신 일을 연구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112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복을 언급하는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강성하게 하시며, 모든 난관을 극복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세상의 모략에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은혜 안에서 온전히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은혜입니다. 또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앞으로 펼쳐질 새 시대에 대한 예고편처럼 펼치신 신적 권능을 보면서도 흥분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한을 통해 전해진 메시지는 내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된 영원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복음을 통한 뜨거운 마음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매일 주어진 말씀을 묵상하기 바랍니다. 복음은 살아 있어서 지금도 우리를 뜨겁게 하며, 앞으로도 생명의 역사를 계속해서 열어 가게 합니다.


Vol.181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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