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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성막이 머문 이스라엘의 중심지

2021년 05월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담임목사,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저자)

이스라엘의 휴식처, 실로
여호수아 때부터 수백 년 동안 성막이 있던 실로는, ‘휴식처’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하나님의 장막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을 누리던 곳이었다. 실로는 지리학자들이 ‘험한 실로 시스템’이라고 부를 정도로 에브라임산지에서 가장 험한 지역 중 하나이다. 성경은 실로가 세겜으로 올라가는 길의 동쪽, 르보나의 남쪽, 벧엘의 북쪽에 있으며, 포도원이 있는 지역이라고 기록한다(삿 21:19). 예루살렘의 북쪽으로 약 32km, 세겜의 남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실로가 있다.


실로, 열두 지파가 정복한 땅을 분배받음
현재 실로는 정착촌이 생기며 집중적으로 관리해, 잘 개발된 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공원 입구에는 열두 지파가 새겨진 에봇의 돌과 실로의 역사를 기록한 입체 게시판이 있다. 실로는 열두 지파가 정복한 땅을 분배받은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공원에는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깃발이 장식돼 있다. 실로성이 있던 인공 언덕인 텔을 향하는 300m 지점의 왼쪽에는 포도주 틀이 발견된 것을 기념하며, 포도주 짜는 과정을 그림으로 설명해 놓았다. 사사기 21장에는 매년 포도주 축제가 있었음을 기록할 정도로, 실로 주변에는 포도원이 많다(삿 21:21).
또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처였던 실로는 여호와의 성막 같은 성전이 있던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성막을 홀로그램으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다. 고대의 현장을 현대 기술로 구현해 낸 특별한 체험을 통해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유적에 대한 큰 관심과 애정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가면 비잔틴 시대의 교회 유적이 있다. 교회의 바닥 모자이크에는 다윗의 별 문양이 있다. 텔 바로 아래에는 고대 고아를 위한 회교 사원, 고아 모스크가 있는데, 사원 바닥에서 헬라어 글씨와 함께 뿔을 가진 이스라엘 제단 돌이 발견됐다. 같은 장소에서 이스라엘 시대, 헬라 시대, 이슬람 시대의 유적이 지속적으로 발견된 것을 통해 이곳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성막이 있던 실로, 한나의 기도처로 유명
실로는 B.C. 18~16세기에는 큰 성읍이었으나 이스라엘이 정착하던 B.C. 12세기까지는 작은 마을이었다. 텔로 오르는 길 곳곳에는 기름 짜는 틀과 물을 저장해 두는 지하 저수조 등 많은 주거지 유적이 있다.
성 중턱에는 지파 분배 과정을 알려 주는 여러 학습 도구가 전시돼 있고,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 탑에는 실로 역사 상영관이 있다. 실로성 북쪽 지역의 성막이 있던 곳에는 ‘한나의 기도 처소’가 있어, 현재도 많은 이들의 기도의 장소가 되고 있다.
실로성의 서쪽 성벽에는 항아리 유적이 있는데, 항아리에는 불에 탄 곡식들이 가득 들어 있다. 이는 사무엘상 4장의 이스라엘이 아벡 전투에서 패한 뒤 언약궤를 뺏기고, 엘리 제사장이 죽은 후(삼상 4:12~22), 블레셋이 올라와 실로성전을 파괴한 흔적으로 보인다. 이때 제자상이었던 엘리의 후손이 다윗 때 제사장인 아비아달이었고, 그는 솔로몬 때 추방돼 아나돗에 살았다(왕상 2:26~27).
예레미야는 바로 그 아나돗 출신의 선지자였다(렘 1:1). 실로의 역사를 너무 잘 알았던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실로의 전철을 밟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렘 7:12).


실로에서 자란 전혀 다른 모습의 두 자녀
실로는 여호수아 때부터 사사 시대까지 언약궤가 있던 이스라엘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엘리 제사장의 자녀와 한나의 자녀가 자랐다. 엘리는 하나님보다 자녀를 귀히 여겨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예배를 멸시하게 했다(삼상 2:29). 기도로 세운 한나의 자녀 사무엘은 하나님께 드려져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됐다. 실로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란 두 가문의 자녀들을 통해,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Vol.196 2021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