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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

2016년 03월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창세기 1장 1절~11장 32절

모세오경은 모세가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을 위해 쓴 책입니다. 모세는 이 다섯 권의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에 사용되는 도구로서, 하나님의 소유이며 제사장 나라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으려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원리에 의해 세워졌고, 통치되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서론이자 모세오경의 서론인 창세기 1~11장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주권과 백성, 영토를 조감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깨닫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존귀함(1~2장)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주권자이십니다. 모세는 천지만물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됐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1:4)라고 선포함으로써 책을 시작합니다. 애굽을 비롯한 이방 족속들은 세상을 ‘빛의 신’과 ‘흑암의 신’의 전쟁터이며, 선과 악이 영원히 공존하는 곳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며, 그분과 경쟁하거나 갈등할 만한 존재는 전혀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의 신들은 모두 거짓이라는 선포이며, 그 거짓 신들로부터의 해방을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거짓 신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거짓 신은 사람을 압제합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통치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형상(우상)을 만들어 백성에게 그 신을 섬기게 하고, 그 신의 권위로 백성을 압제하며, 그 신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선언합니다(1:27).
또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신 후 안식하셨는데(2:1~3), 이는 참된 정복과 통치는 전쟁이 아니라 안식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은 안식을 위함이며, 참된 풍요와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한 분 참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인간의 존엄성이 핵심 가치인 나라입니다. 모세는 에덴동산 이야기를 통해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을 주셔서 그곳을 경작하게 하시는 모습을 통해(2:8, 15),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가나안 땅이 주어지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덴의 모든 나무의 열매 중 선악과만은 금지됐고, 또 아담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돕는 배필이 없었기에 ‘좋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는 가르침을 통해(2:16~18) 그 나라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율법의 상징으로, 그 열매를 범하는 것은 곧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백성(3~5장)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를 저버리면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인간의 범죄 이야기는 이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그리고 여기서 창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뱀의 후손(속이고 빼앗는 자)과 여자의 후손(속고 빼앗기는 자)의 대립이 시작됩니다.
모세의 가르침에 의하면 말씀에 대한 무지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여자는(3:2~3), 결국 자신이 선악의 기준이 되는 데까지 이릅니다(3:6, 22). 여자는 마치 하나님처럼 “보기에 좋다”(3:6)고 판단하고, 남편과 함께 금지된 선악과를 먹습니다. 이는 곧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삿 17:6, 21:25)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게 되고, 갈등과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영원한 절망에 두시지 않습니다. 비록 아담은 에덴을 잃었지만 ‘돕는 배필’은 잃지 않았고, 그녀와 여전히 동거했기에 새 소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뱀의 후손’을 대적할 ‘여자의 후손’이 그녀를 통해 이어질 것이기에, 여자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돼 새로운 소망의 씨앗이 됩니다(3:15, 20). 그리고 비록 에덴에서는 쫓겨났지만, 가죽옷을 입혀 주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여전히 그 근원인 땅을 경작할 수 있었습니다(3:21~23).
동시에 ‘뱀의 후손’ 즉, 속여 빼앗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자의 영향력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아벨을 죽입니다(4:6~8). 아담과 하와는 땅을 경작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죽인 가인은 완전히 땅에서 쫓겨납니다(4:11~12).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마련해 주십니다(4:14~15). 이는 복수가 더 큰 복수를 낳는 비극을 방지하기 위한 도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표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직접 성을 쌓아 자기 아들 에녹의 이름을 붙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합니다(4:17). 이 성에서는 각종 문명이 발달했지만(4:20~22), 동시에 폭력이 미화되고, 살인을 자랑하며, 더 큰 복수를 찬양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4:23~24).
한편 ‘여자의 후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인의 아들 에녹과 달리, 셋의 후손이자 므두셀라의 아버지 에녹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상징하는 이름이 됐습니다(5:24). 또한 가인의 후손 라멕과 달리,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은 아들인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안위하심을 바라봤습니다(5:28~29). 이처럼 성벽과 무기와 음악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문화를 배격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참된 안식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는 이후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여러 성들을 무너뜨리고 정복할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사명(6:1~9:17)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이 이 땅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그 가운데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 즉 세상의 기준을 따르던 자들을 아름답게 여기며 아내로 삼는, 즉 여자의 후손들이 뱀의 후손과 혼합되는 일이 벌어집니다(6:1~2). 이는 이후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통혼하며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따를 때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경고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 그 정체성을 잃고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멸망밖에 없습니다. 노아 때의 홍수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심으로 유예기간을 두시기도 하고(6:3), 의인 노아의 가족들이나 그 백성 중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왕상 19:18), 거룩한 그루터기(사 6:13)와 같은 사람들을 남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 안에서 보냈던 기간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1:2) 시절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시절, 그리고 광야에서 방황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거룩한 씨앗은 남겠지만, 그 기간은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며,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경고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주어진 말씀은 아담에게 주어진 명령(1:28)과 거의 동일합니다(9:1, 7).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의 모든 나무 열매를 허락하시면서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금하셨듯이, 노아에게는 육식을 허락하시면서도 그 피를 먹는 것만은 금하셨습니다(9:4). 그리고 생명나무 대신 무지개를 하늘에 두심으로써 언약의 징표를 삼으셨습니다(9:13).
이렇게 노아로부터 새롭게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생명을 존중하라”는 핵심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반복되는 현실, 새로운 소망(9:18~11:32)
안타깝게도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뱀의 후손’은 다시 나타납니다. 노아의 벌거벗음(9:21)은 아담의 벌거벗음(3:10)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노아의 아들 함은 가인과 같은 자리에 섭니다. 그래서 함의 후손들에게서는 강력한 군사력과 큰 성읍으로 이뤄진 국가의 이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10:6~20). 이는 야벳이나 셈의 후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입니다(10:2~5, 21~31).
바벨탑 사건(11:1~9)은 함의 후손들이 어떤 일을 행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함의 손자 니므롯의 땅 시날 평지(10:10)에 모인 사람들은 도시와 탑을 건설하고, 사람의 이름을 내고, 거기 모여 살자고 합니다. 에녹 성을 쌓았던 가인과 그 안에서 문명을 건설하려 했던 그 후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수많은 사람을 동원해 거대한 건축물과 성벽을 만드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지으며 고통당했던 것처럼(출 1:11), 바벨탑 공사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두고 보지 않으시고 언어를 혼잡하게 해 그들을 세상에 흩어 수많은 민족을 만드신 후에 거기서 새로운 소망을 찾으십니다. 갈대아의 성읍 우르를 떠나 이동하는 데라의 아들 아브람(아브라함)이 새로운 노아가 됐습니다(11:31). 그에 의해 나무로 만들어진 배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 곧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을 구원할 방주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창세기의 서론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떤 배경에서 등장하는지를 밝히며 마무리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를 붙잡고 세상과 혼합되지 않은 거룩함을 지켜가는 그분의 백성들을 찾으십니다. ‘여자의 후손’인 교회로 하여금 ‘뱀의 후손’에 의해 절망에 빠져가는 세상을 구원할 방주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3월, 창세기를 묵상하고,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지키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잊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Vol.134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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