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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하나님께서 직접 언약을 성취하신다

2016년 04월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창세기 12장 1절~21장 34절

3월부터 이어진 창세기에서 모세는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뿌리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약속과 그들이 따라야 할 법도를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 이야기에서도 ‘하나님의 땅’에서 벌어지는 ‘뱀(속임), 여자, 후손’(3:15)의 문제가 계속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은 크게 이삭의 탄생(21:1~4)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이삭 이전 시기(12~20장)는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가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그 때문에 아들을 얻을 수 없게 될 뻔한 위기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12:11~20, 20:1~18).
여기서 ‘속임(뱀)’, ‘아내(여자)’, ‘모든 것 중 가장 핵심적인 존재(아들)’라는 주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아닌’ 조카 롯과 서자 이스마엘의 이야기가 대척점으로 제시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신다(12~14장)
아브람도 아담과 노아처럼 하나님께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사명은 아담이나 노아가 받은 것과 일맥상통하지만 다르게 표현돼 있습니다. 아담과 노아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해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지만(1:28, 9:1), 아브람에게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2:1~3). 이는 “네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하겠다”라는 뜻으로, 아브람은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브람이 순종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초반부터 아브람의 모습은 미덥지 않습니다.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간 아브람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였고,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깁니다. 아내를 빼앗기면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실현될 수가 없기에 언약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12:10~16).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 직접 바로를 치심으로, 아브람과 그 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십니다(12:17~20). 아브람은 언약을 파기시킬 위기를 자초했지만,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약속을 지켜나가십니다. 모세는 출애굽을 연상시키는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언약을 성취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언약 관계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아브람과 롯은 가축을 먹일 땅이 부족했기 때문에 갈라질 수밖에 없었는데(13:6), 이때 롯은 ‘애굽 땅 같은 곳’이었던 소돔을 ‘여호와의 동산’ 같다고 느끼며 거기로 이동합니다(13:10).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과 함께한 자였기에, 그가 거한 땅이 바로 ‘여호와의 동산’이었습니다.
사실 롯이 선택한 땅 소돔과 고모라는 전쟁터였습니다. 롯이 전쟁에 휘말려 포로로 끌려갔다는 소식에 아브람은 마치 아들을 구하는 아버지처럼 목숨을 걸고 전쟁에 뛰어들어 롯을 구출했고, 이때 살렘 왕 멜기세덱과 소돔 왕까지 아브람의 덕을 입습니다(14:14~24). 이는 아브람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얻으리라는 예언(12:3)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언약을 주도할 수 없다(15~16장)
그러나 큰 민족을 이룬다는 약속, 즉 아들에 대한 약속의 성취는 여전히 불가능해 보입니다. 전쟁에서 롯을 구출하지만 그가 아들은 아니기에, 아브람은 아들을 대체할 존재를 찾습니다(15:3).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몸에서 날 자가 후계자가 된다며, 그 자손이 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이 약속을 믿는 믿음 하나로 의인이 됩니다(15:5~6).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에는 당장의 아들뿐만 아니라 수백 년 후의 후손들이 겪을 일까지 포함돼 있습니다(15:13~16). 모세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을 설명하며,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이 조상 때부터 예정된 하나님의 섭리라고 가르칩니다. 이 언약식에서 하나님은 언약 당사자인 아브람과 함께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지 않으시고 홀로 지나가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섭리로 언약을 이루시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15:17).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자신의 힘으로 성취하려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마치 아담이 하와의 말을 듣고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려 했듯이(3:5~6),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듣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언약을 성취하려고 합니다(16:2). 그들의 생각대로 하갈이 임신해 언뜻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언약 성취에 걸림돌이 될 뿐이었습니다.
하갈의 임신과 그로 인한 불화(16:4~6)는 진정한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결국 아브람과 사래의 잘못된 판단과 하갈의 어리석은 처신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하나님께서 개입해 해결하십니다. 도망하는 하갈에게 하나님은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16:8)라고 물으신 뒤 주인인 사래에게 돌아가 복종하게 하시며, 그 아들에게 은총을 허락하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십니다(16:9~14). 이처럼 인간은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다 떠안고 언약을 끝까지 성취해 가십니다.

 

작은 믿음으로 동행하는 자(17~20장)
아브라함이 의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믿음뿐이었습니다. 사실 그다지 확고한 믿음도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반복해서 주어지는 아들에 대한 약속 앞에서 ‘웃음’을 보입니다(17:17, 18:12). 이는 허탈한 웃음으로,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왜냐하면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사라에게 임신의 징조는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돔 성으로 향하던 하나님과 천사 일행을 극진히 섬깁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시고, 할례로 상징되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십니다(17:5, 7). 또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숨기지 않고 알리셨으며, 소돔 성을 위한 간청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자손에 대한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태도를 믿음으로 인정하시고, 그를 의인으로 여기셨습니다(18:23~33).
이에 비해 소돔에 살고 있던 롯은 아브라함과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아 있었지만(18:1), 롯은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19:1). 이는 아브라함에 비해 롯이 세상에서 상당히 크게 성공했음을 의미합니다. 롯도 천사들을 알아보고 영접하지만, 그 음식은 아브라함에 비해 초라한 무교병이었습니다(19:3).
그리고 소돔 사람들의 무도한 행동 앞에서 자기 딸들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합니다(19:8). 그는 세상과 대결해야 할 순간에 비겁하게 타협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는 불 가운데서 ‘겨우’ 건짐을 받는(고전 3:15) 부끄러움 당할 자의 전형입니다.
롯이 죽지 않은 이유는 오직 아브라함을 염두에 두신 하나님의 전적 은혜 때문입니다. 롯은 지체했으며, 소돔으로부터 멀리 떠나지 못했습니다. 또한 두 딸의 어머니였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는데(19:26), 이는 아브라함이 비록 자녀를 낳지 못하지만 아내를 잃지 않는 모습과 크게 대조됩니다.
롯의 두 딸이 그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해 아이를 낳는 사건은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었던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9:21).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선택하지 않고 눈에 보기에 좋은 것, 세상적인 성공을 추구했던 롯은 불 심판에서 구원받았지만 아내를 잃고 자신의 딸을 통해 아들을 얻는 치욕의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세상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18:10)과 애굽에서의 경험(12:13)도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이기게 하지 못했고, 또다시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아브라함도 롯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두려워해 비겁한 행동을 보였지만, 그는 작은 믿음으로나마 하나님을 신뢰하며 동행했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근심을 아시는 하나님(21장)
이삭의 탄생은 아브라함의 여정에 있어서 절정이자, 인생 제2막이 열리는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사라로부터 아들을 얻고 그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짓습니다. 허탈한 웃음은 기쁨의 웃음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이삭에 대한 웃음(놀림)은 아브라함의 근심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21:9~11).
사실 이는 아브라함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허탈한 웃음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셨던 하나님께서 기쁨의 웃음이 놀림의 웃음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만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집에서 내보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눈을 밝히셔서 물을 찾게 하시고,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비록 언약 백성의 계보에 포함되지 못했으나, 여전히 하나님은 약한 자를 보호해 주십니다(21:14~21).
이어진 본문의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언약을 맺은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높이셨음을 드러내는 증거와도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21:22).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한 모습에서 그의 지위와 권세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21:25).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택하시고, 언약을 주시며 성취하실 뿐 아니라 그 백성의 잘못을 떠안으시고, 문제를 해결하시며, 궁극적으로는 세상 위에 높여 주시는 분입니다. 말씀 묵상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분을 섬기고 있는지 다시금 확인하고,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4월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Vol.135 20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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