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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2016년 06월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창세기 29장 1절~36장 8절

창세기에서 야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벧엘부터 벧엘까지’(28:10~35:15)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 중 가장 파란만장했던 이 기간은 이후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번성해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집’(성막, ‘벧엘’)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임재, ‘브니엘’)과 함께 거하다가, 가나안으로 들어와 그 땅 거민들을 정벌하는 역사를 연상하게 합니다. 모세는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백성과 늘 함께하시고, 죄를 반드시 벌하시며, 약한 자와 억울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보응과 역전의 하나님(29~31장)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그가 행했던 악행을 자신도 그대로 겪게 하심으로 그를 훈련시키기 시작하십니다. 그는 이전에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배필을 찾아 떠났던 여정과 같이 밧단아람으로 자신의 배필을 얻기 위해 떠납니다(28:1~2, 참조 24:10).
하지만 그는 빈털터리였고, 거부 이삭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언약 계승자라는 지위는 전혀 인정받지 못합니다(29:7~8). 이전에는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종을 위해 낙타에게 물을 먹였지만, 이제는 야곱이 라헬을 위해 우물의 돌을 옮기고, 그 양에게 물을 먹이는 입장이 됐습니다(29:10, 참조 24:18~20).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라반의 집에서 일했지만(29:18~20), 그는 자신이 아버지와 형을 속였던 것과 같이 라반으로부터 되갚음을 당합니다. 라반은 약속했던 라헬 대신 레아를 야곱에게 주며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줄 수 없다”(29:26)는 말을 통해 그가 형의 것을 가로채려 했던 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결국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은 야곱은 두 아내의 불화를 통해 자신과 에서와의 불화 때문에 이삭과 리브가가 당했던 어려움까지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고통의 기간을 통해, 속인 사람이 아니라 속은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야곱은 자신이 처음 제안한 7년을 며칠같이 여겼지만(29:20), 두 번째 7년은 외삼촌에게 속아 어쩔 수 없이 종노릇해야 하는 고통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인고의 기간에 레아와 라헬의 불화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11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얻는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가장 큰 피해자였던 레아에게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게 하시고, 몸종 실바를 통해 아들 둘을 더 주십니다(29:31~35, 30:9~13, 17~21).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생육과 번성’을 야곱의 종살이와 죄에 대한 보응의 기간에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14년의 종살이를 시키신 후, 마지막 6년을 통해 그 기간을 보상받게 하십니다(30:25~43). 야곱을 속이던 라반은 결국 자신의 재산을 이용해 야곱이 거부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으며, 헤어질 때에는 딸 라헬에게 속아 우상까지 빼앗깁니다(31:34~35).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꿈에 나타나 야곱을 해하지 못하게 하시고(31:24), 그가 신으로 섬기던 우상(31:30)을 생리를 한다는 여인의 엉덩이 아래 두셔서 비웃으셨으며, 야곱의 입을 통해 악행을 꾸짖으시고, 야곱의 의로움을 드러내셨습니다(31:36~42).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뒤집어 적용하십니다. 야곱이건 라반이건 속이는 자가 결국 더 크게 속고, 종살이하는 기간은 번성하는 기간이 되며,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가 가장 많은 자녀를 낳고, 불리한 계약 조건 아래 있는 자가 부를 쌓게 하십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32~33장)
야곱은 이제 형 에서를 대면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 주십니다. 야곱은 가족과 종들, 그리고 가축으로 이뤄진 한 진영만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마하나임)까지 포함해 두 진영을 이끌게 됩니다(32:1~2).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에서가 400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에 자신의 무리를 도망가기 위한 ‘두 진영’으로 나눕니다(32:7~8). 그리고 에서에게 어마어마한 예물을 준비해 세 무리로 나눠 보냅니다(32:13~20). 속여 빼앗으려 했던 야곱이 도리어 속은 에서에게 빼앗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철저한 섭리입니다.
야곱이 이런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얍복 강가, 브니엘에서 만나 주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다가 결국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고 나서야,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룬 자’라는 이름으로 바뀝니다(32:24~32).
야곱은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후에야 ‘두 진영’의 선두에 서서 에서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33:3). 사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할 때부터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함께하셨습니다.
야곱은 비록 자신이 피땀 흘려 모은 재산 중 상당한 부분을 형에게 바쳐야 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인 언약의 계승자로서의 지위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이 처음 정착했던 땅 세겜에 들어가 제단을 쌓고,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33:18~20, 참조 12:6). 그러나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하며 그곳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던 야곱의 서원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습니다(28:20~22).

 

회개의 장소로 부르시는 하나님(34장~35:15)
아브라함은 그 땅 거주민들이 두려워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였다가 아내를 빼앗겼는데(12:13~15, 20:2), 야곱은 그 땅 거주민을 두려워하지 않다가 추장 세겜에게 딸 디나를 빼앗깁니다(34:1~2). 디나를 강간한 세겜이나 그 아버지 하몰의 말에서는 죄책감이나 사과의 표현을 찾을 수 없습니다(34:8~12). 게다가 그들이 야곱의 아들들에게 속아 그 성읍 사람들에게 한 말에서도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고, 거부인 야곱과 교류하면 큰 이익이 있으리라는 것뿐입니다(34:23). 이 역시 속임수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행위 역시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속이는 자’였던 아버지처럼 그 아들들도 ‘속이는 자들’이 됐습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징하는 할례를 속임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심각한 죄입니다. 어찌됐든 할례라는 언약 백성의 징표를 받은 자를 죽였기 때문입니다(34:14~17, 25). 게다가 시므온과 레위를 필두로 한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의 악행에 대한 복수만 한 것이 아니라, 세겜 사람들 전체를 죽이고 노략질까지 합니다(34:27~29). 그들의 아버지 야곱의 권위는 땅에 떨어집니다(34:30~31).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벧엘로 부르십니다(35:1). 야곱이 에서를 피해 도망하다가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이는 회개로의 부르심입니다. 야곱과 그 가족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들어와 평안히 살다가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상 숭배와 가나안 족속의 문화에 젖어들었던 것입니다(35:2, 4).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그 가족을 하나님의 집, 벧엘로 부르십니다. 그들이 벧엘에 도착하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셨고(35:10), 그 조상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스리라 하셨던 사명도 재차 알려 주십니다(35:11~12).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 하더라도 세상의 악한 문화 가운데 살다 보면 우상 숭배와 거짓된 문화의 영향력에 들어가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그 지점으로 돌아가 회개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거룩함을 회복시키시고 받은 사명을 확인하게 하십니다.

 

장자는 누구인가?(35:16~36장)
창세기 기자 모세는 열두 아들이 갖고 있던 문제를 제시하고, 에서의 계보를 설명하며 ‘누가 언약의 계승자(장자)인가?’의 문제를 다룹니다. 야곱은 벧엘을 떠나며 주인공의 자리를 아들들에게 물려줍니다(35:16). 언약의 계승자에게는 반드시 배필이 필요한데, 야곱의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음으로써(35:16~20), 야곱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의 죽음으로 더 이상 ‘이삭의 아들’이 아닌 ‘열두 아들들의 아버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35:27~29). 
네 명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열두 명의 형제라는 상황 자체가 그들 가운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를 금방 알 수 있게 합니다. 바로 리더십의 문제, ‘누가 장자인가?’의 문제였습니다. 큰 아들 르우벤은 야곱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데, 이는 자신이 장자이며 계승자임을 주장하는 세상적인 방법입니다(35:22). 그러나 모세는 이삭의 죽음에 대한 서술(35:27~29) 후에 에서의 계보를 설명함으로써(36장), 르우벤의 행동이 그가 장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됐음을 암시합니다.
에서는 분명히 야곱보다 먼저 난 자였지만 그는 언약의 계승자가 되지 못하고 마치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듯이 약속의 땅을 떠났습니다(36:6~7). 그리고 에서의 후손 에돔 족속도 큰 민족을 이뤘지만, 세상의 방법대로 여러 아내를 얻고 족장과 왕을 배출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언약 백성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벧엘에서 부름받은 야곱이 다시 벧엘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그 후손 이스라엘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창세기를 비롯한 성경의 수많은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보여 주는 귀중한 모범입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을 통해 말씀의 모범을 따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과 동행하기를 기도합니다.

 

Vol.137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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