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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땅을 다스린다

2016년 07월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창세기 37장 1절~42장 38절

이제 ‘이스라엘(야곱)의 열두 아들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요셉이고, 그와 대립되는 인물로는 유다가, 주요 조연으로는 르우벤, 시므온, 베냐민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겪는 문제와 해결책은 곧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갖고 있던 문제와 해결책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창세기 전체의 주제가 결론으로 제시됩니다. 이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37~41, 42~47, 48~50장)으로 나뉘는데, 이번 달에는 첫 부분을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여기에 상징으로 사용된 ‘옷’과 숫자 ‘2’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그 의미가 더욱 풍성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채색옷을 벗긴 두 개의 꿈(37~38장)
야곱은 열두 아들 중 요셉을 편애했습니다. 야곱이 사랑했던 아내는 라헬이었고, 그녀가 낳은 첫아들 요셉은 야곱에게 마치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힌 것은 그를 장자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37: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요구하셨던 것처럼, 야곱이 요셉을 빼앗기도록 섭리하십니다. 이를 위해 요셉에게 두 개의 꿈을 주셨고(37:6~10), 요셉의 형들은 그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37:20). 형들에 의해 요셉의 채색옷은 벗겨지고, 아버지를 속이는 도구로 사용됩니다(37:23, 31~32). 형의 옷으로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은, 결국 동생의 옷으로 아버지를 속이는 아들들에 의해 기만당합니다(참조 27:15, 27).
이 가운데 유다가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첫째인 르우벤은 요셉을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 했지만, 그의 리더십은 인정되지 않습니다(37:22, 29~30). 오히려 넷째인 유다가 리더십을 갖는데, 그는 요셉을 동생이요 혈육이라고 하면서도 노예로 팔자는 모순된 결정을 이끌어 냅니다(37:27). 이는 살인에 버금가며, 무엇보다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는 죄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우벤을 제외한 형들은 유다의 주도 아래, 요셉을 노예로 팔고 아버지를 속여 ‘뱀의 후손’의 자리에 서고 말았습니다.
한편 유다가 며느리를 통해 아들을 낳는 이야기는 앞으로 진행될 요셉의 삶과 유다의 삶을 대조하기 위한 장치입니다(38장). 가나안 여인에게서 세 아들을 낳은 유다는, 첫째와 둘째 아들이 모두 악을 행해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자 며느리 다말을 속입니다. 그가 다말에게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고 한 말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38:11).
결국 유다도 며느리의 옷에 의해 속임을 당합니다(38:14, 19).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얼굴을 너울로 감싸 시아버지 유다가 자신을 창녀로 여기도록 속였고, 결국 그로 인해 임신합니다. 유다는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에 그녀를 불에 태워 죽이려고 했다가, 오히려 불명예를 입고 맙니다(38:24~26).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속이는 자가 결국 속게 하시고, 그 죄가 명백히 드러나게 섭리하십니다.

 

가정 총무의 옷과 두 관원의 꿈(39~40장)
요셉은 창세기의 모든 등장인물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상황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드러난 사람이기도 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노예였지만, 그의 모든 소유를 다스리는 실질적인 통치자가 됐습니다(39:4). 보디발의 온 집을 다스리며 오직 아내만이 금지된 요셉의 상황은, 에덴을 다스리며 오직 선악과만 금지됐던 아담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39:8). 그리고 요셉의 벗겨진 옷은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 거짓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39:12~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가운데에도 그와 함께하셔서, 그곳에서도 모든 것을 관장하는 역할을 하게 하십니다(39:22). 이처럼 요셉은 꿈도 ‘두 번’ 꾸고, 옷이 벗겨지는 억울한 일도 ‘두 번’ 당하며,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통치하는 지위도 ‘두 번’이나 경험합니다. 그리고 옥에서 ‘두 명’의 관원이 꾼 ‘두 개’의 꿈을 해몽합니다(40:9~19).
이 기간에 요셉이 당한 일은 절망과 좌절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이 절망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시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요셉에게 세마포 옷을 입힌 바로의 꿈(41장)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고 있었던 기간도 ‘2년’이며,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주신 꿈 역시 ‘두 개’였습니다(41:1~13).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된 요셉은 바로의 두 꿈은 결국 하나이며, 같은 뜻의 꿈을 두 번 꾼 이유는 하나님께서 확정하셨다는 의미라고 말합니다(41:25, 32).
이 일로 인해 요셉은 죄수에서 총리가 되는 놀라운 반전을 이룹니다(41:40). 요셉은 억울하게 두 번이나 옷을 벗었지만, 이는 결국 애굽 총리가 입는 세마포 옷을 입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41:42). 그의 인생에서 반복된 ‘2’의 의미도 밝혀진 것입니다.
이처럼 보디발의 집에서 자신에게 ‘금지된 하나’를 범하지 않았던 요셉은 ‘땅을 다스리는’ 자가 됩니다(41:45~46).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던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1:28)는 사명이 어떤 사람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요셉이 아내, 즉 돕는 배필을 얻었다는 사실은 이제 그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통치자가 됐음을 보여 줍니다(41:45). 그리고 요셉은 7년의 풍년 기간에 ‘두 명’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얻었을 뿐 아니라, 두 아들의 이름을 지으며 다음 세대에 분명한 신앙적 정체성을 전수합니다(41:50~52).
요셉은 애굽만이 아니라, 7년의 풍년 후에 닥친 7년의 흉년을 통해 애굽 주변의 모든 땅을 다스리는 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집을 구원하고, 그 집안의 해묵은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문제의 핵심이 드러나다(42장)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끝나고(37~41장), 이제 창세기의 관심은 가나안에 남아 있던 야곱과 열한 명의 아들에게로 넘어갑니다. 대기근 앞에서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보이는 모습은 결코 화목해 보이지 않습니다(42:1).
요셉을 향했던 야곱의 편애는 막내 베냐민에게로 향했고, 이는 여전한 불화의 근원이었습니다. 열 명의 아들은 애굽으로 보내면서 베냐민만은 놓지 못하는 야곱의 모습은 이 가정의 해묵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42:4).
지금까지 속고 당하기만 했던 요셉은 이제 창세기의 마지막 ‘속이는 자’로 등장하는데, 이는 이전의 속임과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는 속임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온 형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정탐꾼의 누명을 씌워 형들을 시험합니다(42:9, 12).
이때 형들은 누명을 벗기 위해 자신들이 ‘열두 형제’라고 고백하는데(42:13), 이 말은 이후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됩니다. 비록 이들이 요셉을 노예로 파는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을 형제 중 한 명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지파별로 분리되지 않고,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할 의도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의 근본 원인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에 있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요구하는데(42:16), 이는 사실 아버지 야곱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징벌이라 생각하며 후회하는 형들의 모습은 그들이 지난 세월 동안 동생에게 행한 일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음을 보여 줍니다(42:21~22). 그리고 그 대화를 듣고 눈물 흘리는 요셉의 모습은 이미 형들을 용서했음을 알게 합니다(42:24).
그러나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아버지 야곱이 변화돼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열두 아들 중에서 야곱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 아들 시므온을 인질로 잡습니다(42:24). 이는 아버지 야곱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 시므온을 구원하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내놓으실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형들의 짐에 그들이 가져왔던 돈뭉치를 도로 집어넣어 야곱과 형들로 하여금 큰 두려움에 직면하게 만듭니다. 만약 야곱의 아들들이 다시 애굽으로 간다면 정탐꾼일 뿐만 아니라, 도둑으로 몰려 결국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던 것처럼, 야곱에게 “네가 가장 사랑하는 베냐민을 포기함으로써 네 아들들을 모두 사랑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각자의 짐에서 도로 나온 돈뭉치 앞에서 나눈 르우벤과 야곱의 대화는 이들 가정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 르우벤은 시므온을 다시 데려오겠다는 맹세를 하며, 자신의 두 아들의 목숨을 겁니다(42:37). 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아들로 자기 아들들을 손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야곱은 마치 요셉과 베냐민만 아들인 것으로 여기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42:38). 르우벤을 비롯한 열 명의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아들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고, 야곱은 이를 실토한 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요셉을 통해 야곱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시고, 결국 그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실 발판을 만드십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과 역경을 당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노예와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자신이 선 곳을 다스렸던 요셉의 모습을 통해 주님께서 내게 어떤 사명을 주셨는지를 확인해 봅시다. 그리고 야곱 가정의 문제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죄와 허물을 발견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Vol.138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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