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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하나님의 권세 앞에 항복하라

2016년 08월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창세기 43장 1절~50장 26절

창세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땅을 다스려야 할 사람이 뱀의 ‘악한 속임’에 넘어가 죄를 짓고 땅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로 시작됐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지나갔고, 이제 창세기는 의인 요셉의 ‘선한 속임’을 통해 그 가족이 하나 되며, 온 땅을 다스리는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창세기는 오직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자만이 땅을 다스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굴복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구할 때, 곧 하나님 앞에 항복할 때만이 그 죄의 고통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앞에 항복하다(43~45장)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야곱에게 “베냐민을 포기하라”라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이는 그 조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포기하라고 하셨던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22:1~2). 단,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심은 그의 믿음에 대한 시험이었지만, 야곱에게 베냐민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신 것은 자식들에 대한 편애를 버리고 가족을 하나가 되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양식이 다 떨어지도록 베냐민을 붙들고 있다가 결국 그 가족 전체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서야 두 손을 들고 맙니다(43:14).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이긴 자가 됐지만, ‘이스라엘’(하나님과 싸워 이겼다)이라는 이름을 받은(32:28) 야곱은 결국 그를 설득하는 아들 유다의 말을 통해 하나님 앞에 항복합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포함한 열한 명의 형제가 도착하자, 형제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43:16). 그런데 이 자리는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잠시였지만, 이들은 요셉이 노예로 팔릴 때 겪었을 두려움을 경험합니다(43:18). 그리고 잔치에서 베냐민이 다섯 배의 음식을 받는 것을 통해 요셉과 베냐민이 받은 특별대우가 재현됩니다(43:34). 잔치 자리에서 베냐민은 제2의 요셉이었지만, 그가 특별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화목한 형제들의 모습을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위기 앞에서도 그 화목함이 유지될 것인지의 시험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요셉의 형들은 베냐민 때문에 모두 위험에 빠집니다. 요셉의 은잔이 베냐민의 짐에서 발견된 것입니다(44:12). 그리고 형들은 베냐민만 포기하면 평안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유혹을 받습니다(44:10, 17). 그러나 열 명의 형들은 마치 그 아버지가 요셉을 잃었을 때처럼(37:34) 옷을 찢고, 베냐민과 함께 요셉에게로 돌아옵니다(44:13).
베냐민을 두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라는 요셉에게 유다가 한 말은 그가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긴 것에 대한 철저한 회개입니다. 그는 요셉의 은잔을 도둑질했다는 혐의를 인정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이 죄악을 찾아내셨다”(44:16)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44:33).
유다가 요셉을 노예로 판 이유는 요셉의 꿈, 곧 하나님의 계시에 저항하기 위해서였습니다(37:20).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동생을 노예로 파는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유다는 아버지를 위해 그 사실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합니다. 자신들을 차별대우하는 아버지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동생을 지켜 아버지를 보호하겠다는 말입니다. 이는 자신을 레아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 장자가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유다의 항복 선언입니다.
더 이상 형들을 시험할 이유가 없어진 요셉은 크게 울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하나님께서 형들의 악행까지도 사용하셔서 가족을 구원하셨다고 고백합니다(45:5, 8). 이는  요셉의 항복 선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와 형들의 악행으로 인해 억울한 노예 생활을 했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앙갚음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회복시키시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 요셉까지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45:25~28). 야곱의 아들들 역시 하나님 앞에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항복할 때 형제간의 화합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쥐고 있는 헛된 것들을 모두 내려놓게 하시고, 그 이후에 그보다 훨씬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애굽, 이스라엘 앞에 항복하다(46:1~47:27)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항복하면, 그 주변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항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가나안을 떠나도 좋다는 말씀을 들은 야곱은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애굽 고센에 내려가 요셉을 만납니다(46:2~4, 27~29). 요셉은 가족들이 고센에 거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데, 형식상으로는 바로에게 얻는 것이지만 바로는 요셉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허락할 상황이었습니다(47:5~6). 실권자는 바로가 아니라 요셉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애굽에서 거류민이 됐지만, 오히려 야곱의 가족은 애굽을 다스리는 형세가 됩니다. 야곱이 바로를 만난 자리에서 바로에게 축복하는 모습은 바로가 야곱의 영적 권위 앞에 압도당했음을 보여 줍니다(47:7~10).
그뿐 아니라 애굽의 모든 사람은 요셉 앞에 종이 되겠다고 찾아옵니다. 억울하게 종으로 팔려 왔던 요셉이 애굽의 모든 사람을 종으로 삼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47:19~20). 그리고 요셉은 정의로운 법을 세우며, 자애로운 통치를 실행해 나갑니다. 비록 애굽 사람들 모두 바로의 종이라 불리게 됐지만, 그 덕분에 생명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그 가정을 이전과 같이 지킬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애굽은 요셉, 곧 이스라엘에게 항복함으로써 정의롭고 공평한 다스림, 풍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씨앗이 되다(47:28~50장)
애굽에서 17년을 보낸 야곱은 죽을 날이 가까웠음을 깨닫고, 아버지 이삭이 자신에게 축복했던 것처럼 아들들에게 언약의 축복을 전수합니다. 야곱의 축복은 자신의 시신을 조상의 묘지, 곧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고 끝납니다(47:28~30, 49:29~32). 이는 그가 약속의 땅에 묻힘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이 실현되기 위한 씨앗이 되고, 후손들에게 약속된 본향이 있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축복을 위해 먼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이라 선언합니다. 이는 요셉이 장자로서 다른 형제들의 갑절을 전수받는다는 의미입니다(48:5). 그런데 이때 야곱은 자신의 손을 엇바꿔 차남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장자 므낫세에게 왼손을 얹습니다. 요셉이 이를 바로잡고자 했지만 야곱은 이렇게 독특한 자세로 축복을 진행하는데, 이는 언약의 복은 세상의 질서대로 전수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형이 동생보다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이 세상의 질서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그런 질서에 좌우되지 않습니다(48:14~19). 사실 이는 지금까지 언약이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에게,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전수됐고, 이제는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 장자로 인정되는 역사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이어서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유언 같은 축복을 하는데, 이는 미래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침상에 오른 장남 르우벤, 세겜에서 폭력을 휘두른 시므온과 레위 대신, 넷째인 유다가 리더십을 가지리라고 축복합니다(49:1~8). 장자가 받을 갑절의 유산은 요셉이 받아 그 두 아들이 각각 하나의 지파를 이루겠지만, 전체 민족을 이끄는 리더십은 유다가 갖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그래서 유다에게 주어진 축복에는 힘과 권세를 상징하는 표현들이 많고, 요셉에게는 번성과 풍요, 강성함을 상징하는 표현들이 많이 쓰입니다(49:8~12, 22~26). 야곱은 이렇게 레아의 아들 유다와 라헬의 아들 요셉에게 장자권을 각각 나눠 줘 요셉과 베냐민만을 편애했던 자신의 과거 잘못을 바로잡고 있습니다.
야곱의 장례는 애굽의 국장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는데, 야곱의 장례행렬은 400년 후에 있을 이스라엘의 출애굽 행렬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스라엘)의 시신을 통해 그 후손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십니다(50:1~14). 즉 야곱의 시신은 출애굽의 씨앗이 됐습니다.
창세기는 아버지 야곱의 장례가 끝난 후 요셉의 형들이 두려워하며 요셉에게 용서를 구하고, 요셉은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위로하는 모습(50:15~21)과 요셉이 이후 출애굽 때 자신의 유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올라가라고 유언하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이는 창세기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조차 선으로 바꿔 많은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고백(50:20), 언약 백성은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번성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본향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기를 통해 말씀하시는 결론입니다.

 

인생의 의미(시편 90편)
시편 중에 유일하게 모세가 기록한 시편 90편의 주제는 창세기의 주제와 일맥상통합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살며 땅을 다스리지만 진정한 거처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티끌로 만들어져 티끌로 돌아갈 존재지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떠나지 않고 돌아오실 때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반년에 걸쳐 창세기를 묵상하면서,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루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께 돌아갈 그때를 바라보며, 본향을 향하는 순례자로 살기를 결단해야겠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걸었던 여정을 묵상하며 우리도 그 길을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Vol.139 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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