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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권위는 실추되지 않는다

2017년 01월 5주 (2017-01-29)

출처 : - 조너선 리먼, 『당신이 오해하는 하나님의 사랑』 중에서

 죄의 대가가 죽음인 이유는 단지 우리와 우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이 아니라, 죄가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거룩하고, 눈부신 위엄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죄의 대가가 죽음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장엄하고 무한하나 우리가 그 영광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의 대가가 죽음인 이유는 하나님은 모든 영광과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존중하지 않고 그분을 높이지 않을 때, 즉 우리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때, 우리는 법적으로 죄를 범한 것이며 형벌을 받아야 한다. 형벌이 필요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찮은 물건을 깨뜨리면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름답고 귀중한 물건을 깨뜨리면 형벌이 요구된다는 사실에서 부분적으로 그 가치가 입증된다. 자신의 영광과 이름을 위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스러운 위격과 성품에 도전한 허물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죄악된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정하셨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무가치함과 쓸모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죄는 깨어진 관계 이상을 의미하고, 구원은 관계의 회복 이상을 의미한다. 죄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고, 구원은 위엄에 대한 경배의 회복이다. 모세의 말을 빌리면 “다른 신이 없는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빌리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청교도들이 이렇게 기도한 이유이다. “우리가 범한 죄의 본성에서뿐만 아니라 그 죄를 범한 대상인 하나님의 위대하심에서도 죄의 가증스러움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게 하소서.”
개인주의적인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관계가 아니다. 심지어 서로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 관계도 아니다. 인간들에게는 오히려 그들을 감동시켜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경배하고 존중하고 찬양하게 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Vol.144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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