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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어떤 기초 위에 집을 세울 것인가

2017년 05월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열왕기상 12장 1절~16장 34절

‘집’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베이트’는 ‘가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집’이란 다윗 가문, 곧 다윗 왕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곧 ‘하나님의 집’을 짓기 원했던 다윗에게 오히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삼하 7:11)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곧 다윗 왕조를 세워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솔로몬 초기에만 해도
‘다윗의 집’은 절대 망하지 않는 ‘반석 위에 세운 집’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말년에 우상을 숭배하자, 다윗의 집은 모래 위에 세워진 것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이후 이스라엘이 분열되고, 다윗 언약을 떠난
북이스라엘 왕조는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크게 허물어진 다윗의 집(12:1~24)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왕위 계승을 위해 세겜에서 백성을 만납니다. 그 장소가 예루살렘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왕위 계승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여로보암에게 주어진 아히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으므로(참조 11:40), 르호보암도 협상 주관자로 나선 여로보암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르호보암은 백성이 부담했던 세금과 부역을 경감해 주고 그들의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솔로몬을 섬겼던 나이 많은 신하들도 그렇게 간언합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자신과 함께 자라난 젊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백성을 힘으로 누르려 합니다. 이는 그가 왕이 누리는 풍요와 권세만을 알고 있을 뿐, 왕의 직무와 책임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르호보암과 그의 젊은 신하들은 오만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했습니다. 선지자 스마야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르호보암이 일으키려는 전쟁을 막지 않았다면 다윗의 집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르호보암이 스마야를 통해 주어진 말씀을 따라 군사를 거둬들였기에 다윗의 집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사실 선왕 솔로몬의 죄를 회개하고, 왕이 감당해야 할 본질적 직무와 책임에 집중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본질은 저버리고 그 껍데기에 불과한 영화에만 집중했기에 결국 열두 지파 중 열 지파를 빼앗기고 맙니다.

인기 위에 세운 집(12:25~13:34)
여로보암 왕조, 곧 ‘여로보암의 집’은 하나님께서 아히야를 통해 주신 말씀을 기반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만약 그가 다윗이 걸었던 길을 걸으면 그를 위해 ‘견고한 집’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참조 11:38).
그러나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위가 백성의 인기 위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집’(성전)에 절기마다 드나들게 되면 결국 그들의 마음을 돌려 다윗의 집을 섬길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이에 여로보암은 백성의 편리를 도모하고, 종교적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웁니다. 또 레위 지파가 아니어도 제사장이 될 수 있게 하고, 기존의 초막절 기간에는 추수가 끝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막절 기간도 한 달 늦추는 등 적절히 타협해 ‘편리하고 화려한 종교생활’을 제공합니다. 이는 분명 자신의 인기에 뜻을 둔 행위입니다.
여로보암이 벧엘에서 제사를 드릴 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 이야기는 여로보암이 행하는 혼합된 예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한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 제단은 이후 유다의 왕 요시야에 의해 무너진다는 말씀을 전하자, 금송아지 앞에 있던 제단은 갈라지고 그 재가 쏟아졌으며, 여로보암의 손이 마르는 이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곳 벧엘에서는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이후에 왔던 길과 다른 길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는 그들과 절대 교류하지 말며 이후에 그들이 찾아오지도 못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그 말씀에 따라 여로보암의 회유를 물리칩니다.
그러나 그는 그만 벧엘의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에 속아 결국 그의 집에서 먹고 마시는 죄를 범하고 맙니다. 비록 속아서 말씀을 어긴 것이지만, 그 때문에 길에서 사자에 의해 죽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어떠한 종류의 타협도 있을 수 없다는 엄숙한 선언입니다.
여로보암은 이 일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금송아지 숭배를 계속하고 결국 그의 집, 여로보암 왕조는 멸망하는 운명에 처합니다.

갈림길 : 개혁이냐, 혁명이냐?(14~15장)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영적 파산 상태였습니다. 멸망의 길로 들어선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상을 파괴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운명은 바로 이것에 의해 갈립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아들 아비야의 병이 어떻게 될지를 묻기 위해 아내를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아히야에게 자신의 존재를 감추게 한 것은 스스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져 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실낱같은 희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비야의 죽음과 그 집의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남색하는 자가 나타날 정도로 영적으로 부패했고, 솔로몬의 금 방패는 애굽 왕 시삭에게 모두 빼앗깁니다. 그럼에도 르호보암은 회개하지 않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아버지가 누렸던 영광을 누리는 데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 아들 아비얌도 아버지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했고 멸망당해 마땅한 상황에 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기억하셔서 유다를 영적으로 개혁할 왕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열왕기는 아비얌의 아들 아사를 ‘다윗 왕조를 위한 등불’이라 표현합니다(15:4). 아사는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는데, 무엇보다 솔로몬 말기로부터 유다에 가득했던 수많은 우상들을 모두 철폐했습니다. 어머니가 우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태후의 위에서 폐위시킬 정도로 성역 없이 단호했습니다.
비록 북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의 압박을 막기 위해 다메섹의 벤하닷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의 잘못을 저질렀지만, 아사는 유다를 우상 숭배로부터 돌이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한 유다의 구원자였습니다.
이에 비해 북이스라엘에는 종교 개혁은 없었고, 칼을 통한 혁명만이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은 그 신하 바아사에 의해 죽어 여로보암의 집은 단 2대만에 멸망하고 맙니다. 선대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유다를 돌려놓은 아사와 달리, 나답은 아버지의 죄를 답습하다가 결국 칼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가 다스리던 이스라엘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칼 위에 세워진 집(16장)
대부분의 이방 나라들처럼 북이스라엘의 왕조들은 칼, 곧 폭력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칼 위에 세워진 집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바아사는 나답을 죽이고 여로보암의 집을 멸망시켰으나, 그 역시 여로보암의 죄를 답습해 결국 그 아들 엘라는 즉위 2년 만에 군대 장관 시므리에게 죽임을 당하고, 바아사의 집안사람들도 모두 멸절당합니다.
바아사의 집을 멸망시킨 시므리는 집을 세우는 데에도 실패합니다. 그의 왕위는 단 7일밖에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터에 있어야 할 군대 장관이 왕궁에 있으면서 왕을 지키기는커녕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을 인정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하던 군대는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고 있던 오므리를 왕으로 추대하고, 시므리가 머무는 디르사 궁으로 진격합니다. 결국 시므리는 디르사의 왕궁을 불태우고 그 안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잔혹한 살육자였던 시므리는 단 7일 동안에 여로보암의 집과 바아사의 집이 세워졌던 디르사를 완전히 파괴하는 역할만을 감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폭력에 의해 왕이 세워지면 결국 칼로 흥한 자가 칼로 망하는 시대가 반복되게 마련입니다. 시므리가 죽자, 북이스라엘은 오므리 파와 디브니 파의 내전에 휘말립니다. 그리고 승자 오므리는 폭력으로 왕이 된 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불타버린 디르사의 왕궁 대신 사마리아를 세운 오므리는 세속 역사가들이 보기에는 매우 큰 업적을 남긴 강력한 왕이었지만, 여전히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칼 위에 세워진 오므리의 집은 하나님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길을 향해 갑니다. 오므리는 이전의 모든 왕보다 더 악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그 아들 아합은 그 아버지보다 더한 악행을 저지릅니다. 지금까지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때부터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기는 했지만,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아예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전을 지었으며, 바알과 아세라를 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중에 없습니다.
히엘이라는 사람은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그의 맏아들과 막내아들을 잃으리라”는 여호수아의 저주에도 불구하고(참조 수 6:26),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장자와 차자를 잃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함으로 인해 재앙을 당하면서도 그 멸망의 길을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가정의 달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집’은 무엇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가정이 반석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져 있는지, 모래와 같은 세상적인 인기나 힘 위에 세워져 있는지 점검하는 5월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Vol.148 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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