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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하나님의 집’은 어떻게 세워 가야 하는가?

2018년 01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느헤미야 1장 1절~11장 36절

새해를 시작하며 무너져 있던 신앙생활의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포로 귀환 당시의 지도자와 이스라엘 백성은 큰 도움을 줍니다. 스룹바벨과 에스라에 이어 느헤미야가 행한 사역들은 죄로 인해 무너졌던 ‘하나님의 집’을 회복해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느헤미야 말씀을 통해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해 무너진 ‘하나님의 집’을 어떻게 바로 세워 갔는지 그 재건 과정을 보며, 우리 안에 무너진 것들을 세워 가는 은혜를 누리기 바랍니다.


현실 앞에 직면하다(1~2장)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을 이해하려면, ‘능욕’(, 헤르파)이라는 단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이 능욕으로 가득 찼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로 애통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립니다(1:2~11). 느헤미야가 한 번도 밟아 본 적이 없는 고국의 소식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며 회개의 기도를 드린 이유는 ‘예루살렘에 대한 능욕’을 ‘하나님에 대한 능욕’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탔다”(1:3, 2:3, 13, 17)라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왕의 신뢰를 받던 술 관원이었는데, 그 위치에 있던 그도 성벽 재건의 재가를 받는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2:1~3). 하지만 그는 믿음으로 문제에 직면해(1:9),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과 성벽 복구를 위한 물자 지원을 허락받습니다(2:7~8).
이후 성벽 복구의 방해와 위협의 벽에 직면하게 되지만, 그는 ‘하나님의 선한 손’(2:18)을 언급하며 예루살렘 공동체 재건을 위한 디딤돌을 놓습니다. 이처럼 능욕을 이겨 내기 위해 문제에 직면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며, 믿음으로 사는 자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해를 방어하다(3~4장)
‘예루살렘에 대한 능욕’은 ‘성벽 건축자들과 성벽에 대한 능욕’으로 옮겨집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중수하다’(, 하자크)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이 단어는 3장 앞부분에서는 성벽을 ‘중수했다’라는 의미로, 4장 말미에서는 병기를 ‘잡다’(4:17, 21)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성벽을 중수했다’라는 것은 단순히 성벽을 중수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 개념의 확장’을 뜻하며, 성벽 중수까지 이뤄져야 ‘하나님의 집’이 온전히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집’ 확장 공사에 참여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성벽 중수는 물론, 대적들의 방해에 대한 방비도 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직책에 상관없이 모두가 동참했으며, 수고한 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기록해 모두의 노력으로 이 일이 진행됐음을 보여 줍니다(3:1~32). 성벽 재건은 예루살렘 성전 확장 및 복원이라는 외형적인 특징과 함께,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재건과 회복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을 행하는 과정에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요소가 늘 존재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성벽 건축자와 성벽을 능욕함(4:1~3)으로 백성에게 불안 요소를 주입했던 것입니다(4:10). 이런 위협 앞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대적들의 방해를 해결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4:7~9).
특히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4:15)라는 구절을 통해 느헤미야가 생각하는 모든 일을 행하시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대적들의 공격 계획은 무산됐고, 느헤미야도 ‘하나님의 집’ 중수를 차질 없이 진행합니다. 이처럼 방해자들에 의한 능욕은 계속됐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행해 갔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세상의 공격을 받을 때, 이 일을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민에 대한 정답도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기억하고, 기도의 자리에서 최선의 방비를 갖춰야 합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완공하다(5~7장)
‘성벽 건축자들과 성벽에 대한 능욕’이 ‘느헤미야에 대한 능욕’으로 이어집니다. 느헤미야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는 성벽 중수 과정에서 발생한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귀족들과 민장들은 백성으로부터 이자를 취하고, 심지어 가난한 자들의 자녀를 종으로 팔아넘기는 일들을 행합니다(5:1~5). 이는 율법에서 금한 일로(레 25:35~37), 동족 안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행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귀족들과 민장들에게 백성으로부터 이자받는 것을 금지하고, 토지와 가옥을 반환할 것을 지시합니다(5:10~12). 왜냐하면 이는 이방 사람에게 ‘능욕’당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5:9).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 같은 행위들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먼저 총독으로서 받을 녹을 받지 않는 모범을 보입니다(5:14, 18). 이처럼 그는 자기희생을 통해 백성을 긍휼히 여겼으며,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대적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성벽 중수가 무산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들은 이제 느헤미야를 해하기 위한 간계를 부립니다(6:1~2). 그 첫 번째는 느헤미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 한다는 유언비어였습니다. 대적들은 느헤미야에게 두려움(, 야레)을 일으켜, 손을 피곤하게 해 하나님을 경외(, 야레)하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내 손을 중수하여(, 하자크)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이 상황을 극복합니다(6:6~9).
두 번째는 스마야의 거짓 예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느헤미야를 범죄하게 하려 했지만, 느헤미야는 지도자로서의 책임과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이 범죄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 또한 이겨 냅니다(6:10~13). 마지막은 유다 귀족들과 관계된 것으로 도비야의 행적을 통해 발견되는데, 그는 마지막까지 성벽 공사를 방해했습니다(6:17~19). 그러나 이것도 성벽 재건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대적들이 성벽 재건을 막으려고 썼던 방법이 ‘두려움’이었는데,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행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성벽까지 확장된 성전 개념을 실현했으며(7:1, 3), 포로 귀환 명단(7:5~73)을 작성해 ‘하나님의 집’ 완공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일일이 기록에 남깁니다.



말씀·회개로 언약의 토대를 세우다(8~10장)
성벽 완공 이후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수문 앞 광장으로 집결합니다. 놀라운 일은 모든 백성이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한 장면입니다(8:1). 이는 언약 갱신에 백성의 의지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에스라와 레위인들에 의해 율법 해석을 듣고 깨닫게 되는데, 이를 통해 언약 갱신의 토대를 마련하게 됐습니다(8:8~9). 이튿날에는 족장들과 제사장들, 레위인들이 모여 율법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들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지내야 하는 율법을 듣고, 초막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진심으로 기뻐합니다(8:13~18).
그런데 그달 스무나흗날 모임은 이전과 성격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조상들의 죄에 대해 자복하며 회개하는 자리를 가집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조상들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잘못들을 스스로 돌아보게 됐다는 것입니다(9:6~36). 비록 지금은 약속의 땅에서 죄로 인해 종으로 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과 다시 세운 언약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집을 세워 가는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며, 느헤미야와 시드기야를 포함한 84명과 남은 백성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반드시 지킬 것을 다짐합니다(10:1~28).
이는 ‘하나님의 집’을 세운 사람들답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고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성전을 돌보는 일에도 성실히 임할 것을 결단합니다(10:32~39).
이처럼 말씀과 회개로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새로운 언약의 토대를 마련합니다. 성벽 재건이라는 외형적인 사역과 더불어, 그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가치관과 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해 오직 말씀과 회개로 새 시대를 준비해 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살아가다(11장)
성벽은 완성됐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사실 성벽 재건도 중요했지만, 이를 지키고 보수하는 일은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백성의 지도자들이 먼저 예루살렘에 거주했으며, 남은 백성이 제비를 뽑아 예루살렘에 남기로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거주를 자원하는 자들을 위해 백성은 복을 빕니다(11:1~2). 지도자들은 자원해 성을 지키기로 결의했고, 그곳에 남기로 한 자들을 축복하는 백성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집’을 온전히 세우는 성도들의 바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끝부분에 예루살렘 외곽에 터전을 잡은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레위 사람의 거주지가 제시되는데(11:25~36), ‘하나님의 집’을 구성하는 거주민들의 지역을 제시하며, 기존 성전 개념이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와 백성은 성벽 재건 공사가 끝난 후에도 말씀이 뼈대가 되는 온전한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해 ‘회개’라는 기초 공사를 튼튼히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집’을 바르게 세우려면, 하나님의 뜻을 품은 사람이 말씀과 회개를 통해 생명력 넘치는 공동체를 꿈꾸며 끊임없이 갱신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018년 새해, 나와 공동체에 무너져 내린 성벽은 없는지 확인해 보고, 말씀과 회개의 토대 위에서 날로 변화해 가는 주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Vol.156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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