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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을 묵상하며

2018년 03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누가복음 1장 1절~4장 30절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고난 이후의 죽음까지를 저자의 시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두면서,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입은 창조주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합니다. 한편 고난주간 동안 묵상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마가만의 단순 명료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게 됩니다. 누가와 마가의 눈을 통해 그들이 전하고자 한 예수님은 누구신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출생과 탄생, 언약을 성취하다(눅 1~2장)
누가는 의사이자, 역사가였으며, 시인의 감성을 가진 자였습니다. 누가의 글을 보면 생생하게 현장을 직면하는 느낌을 받는데, 이는 글을 쓴 목적에서부터 확실히 드러납니다. 그는 ‘데오빌로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확실하게 하려고 ‘차례대로’ 글을 쓴다고 기술합니다. 이는 누가가 데오빌로의 믿음을 확실케 하는 동시에, 인간의 형상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구원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차례대로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1:1~4).
누가는 세례 요한의 출생과 예수님의 탄생을 먼저 기술합니다. 주목할 부분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에게서 어떻게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예언에 따라 사가랴는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하지 못하는 징계를 받습니다(1:20). 하지만 마리아는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1:30~31),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1:37)는 천사 가브리엘의 선포에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1:38)라고 고백합니다.
천사의 말과 마리아의 고백을 통해 성령께서 일하시면 이성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 일어나며, 성령께서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시면 피조물인 우리는 믿음으로 반응해야 함을 배웁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한 마리아는 이 기쁜 소식을 엘리사벳에게 전했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벳은 성령 충만함을 경험했으며, 태중의 아이는 그 누구보다도 기쁨으로 이 소식을 즐거워합니다(1:39~44).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은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아낌없이 찬양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모습과 이스라엘의 모습을 동일시하며, 비천한 자신들을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돌보신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마리아의 노래에서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셨다’(1:54)라는 부분입니다. 이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1:55), 결국 ‘능하신 이’(1:49)께서 약속을 기억하시고 미천한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에 예언된 언약의 성취이자, 미천하고 비천한 자들을 위한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1:46~55).
세례 요한이 출생한 후 사가랴의 혀도 풀리게 돼(1:64)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됩니다(1:68~79). 사가랴의 예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어는 ‘속량’(1:68)과 ‘돋는 해’(1:78)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한 속량, 즉 새로운 출애굽이 일어날 것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임하셔서 참된 평안의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고백입니다.
사가랴의 찬양 뒤에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그려집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시기에 인구 조사가 있었음을 기록합니다(2:1~3).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집 족속으로,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셨습니다(2:4). 그러나 왕의 가문을 통해 인간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예수님의 처소는 구유였으며(2:7), 이 큰 기쁨의 소식을 처음 듣고 전한 사람들은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습니다(2:8~11).
목자들은 구유에 누인 예수님을 만났고, 천사가 예수님에 대해 알려 준 이야기를 마리아에게 전합니다. 이에 마리아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생각합니다(2:15~19). 마리아의 머릿속에는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의 여정과 수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녀는 생각의 조각들을 맞추며,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긴 것입니다.
이후 아기 예수님의 정결 예식 장면이 나오는데, 누가는 “모세의 법대로”(2:22), “주의 율법에 쓴 바”(2:23),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2:24), “율법의 관례대로”(2:27)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기술합니다. 그뿐 아니라 여기서 등장하는 시므온을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칭하는데, 이는 율법을 잘 준수한다는 것을 뜻합니다(2:25).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율법을 폐하러 왔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철저히 율법을 지키셨고, 시므온은 이런 예수님을 만나자 이스라엘에 심판과 참된 구원이 있을 것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이스라엘의 참된 회복이며, 율법의 완성임을 고백합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열두 살 시절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모두가 깨달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셨습니다(2:40, 52). 이처럼 누가는 세례 요한의 출생과 예수님의 탄생이 언약의 성취임을 증명하면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자 이스라엘의 정통 왕위 계승자로 점점 더 부각시켜 나갑니다.


예언과 족보, 예수님은 누구신가(눅 3장)
세례 요한의 사역은 회개를 선포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3:3). 이 또한 이사야의 책에 예언된 말씀이 성취되는 일인데, 메시아를 맞이하려면 죄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3:8). 그러나 일반적인 유대인들은 그들 자신이 혈통적으로 정통성을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행동의 변화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신분이 아니라 회개의 열매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요한의 이 같은 선포는 많은 백성에게 기쁨이 됐지만, 헤롯에게는 찔림이 돼 세례 요한은 옥에 갇히게 됩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점점 드러내십니다(3:21~22). 누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족보를 통해 증명하는데(3:23~38), 마태복음의 족보(마 1:1~16)와 달리 아담과 하나님까지 기록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메시아로 제한하지 않고, 그분이 모든 인류의 메시아라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의 죄인들을 위해 오신 구원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다(눅 4:1~30)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사역이 뚜렷이 드러나자 마귀의 공격도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 충만한 상태로 광야에서 금식하셨는데, 마귀의 질문은 바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4:3, 9)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말씀으로 대응하시며, 마귀를 향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선포하십니다(4:4, 8, 12). 결국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겨 내시며,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하지만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났다’(4:13)라는 누가의 서술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마귀의 공격이 잠시 중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나사렛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통해 다시 제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십니다(4:16~19). 하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요셉의 아들’(4:22)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엘리야 시대의 사렙다 과부와 엘리사 시대의 나아만의 이야기를 전하시며,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음을 선포하십니다(4:25~27).


이방인들의 고백(막 14:66~15:41)
고난주간에는 마가의 눈을 통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묵상하게 되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이방인들이 바로 빌라도와 백부장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질문했고(15:2), 이후에는 예수님을 가리킬 때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물었던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한 후로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취 효과가 있는 몰약을 탄 포도주를 받지 않으신 상태에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는 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욕을 묵묵히 견디셨습니다(15:30~32).
놀라운 고백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숨지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백부장의 입에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는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15:39). 한 이방인의 질문에 ‘유대인의 왕’으로 불리게 된 주님은 유대인들의 조롱을 묵묵히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또 다른 이방인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셨음을 증명하셨습니다. 


누가라는 이방인의 눈을 통해 낮은 자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이 논리 정연하게 묘사됐다면, 마가의 시선으로 그려진 예수님의 죽음은 간단명료합니다. 두 저자는 색깔은 다르지만, 논리 정연하면서도 명료하며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생명의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을 묵상하고, 그분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Vol.158 201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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