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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복음이 확장되기 위한 필수 조건

2019년 03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마가복음 7장 1절~11장 33절

마가복음의 특징 중 하나는 사역 중심의 신속한 전개입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진행하신 복음 확장의 역사를 파격적으로 기술하며, 복음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립니다. 특히 복음 확장의 역사를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전달하는데, 여기서 복음의 확장을 위한 필수 조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확장을 위한 필수 조건은 무엇인지, 우리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7:1~8:26)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 간의 갈등은 복음 확장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7장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지적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전통을 파괴하는 자들로 규정하려는 종교지도자들의 완악한 마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사실 종교지도자들은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었다”라고 지적했지만, 이는 구약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이 지키던 율법을 음식을 먹는 데까지 확대 적용한 사항이었습니다(출 30:18~21).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29장 13절을 인용하시며 그들을 외식하는 자라 칭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보다 사람의 전통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르반’이란 전통에서도 드러나는데, 예수님께서는 물질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핑계로 부모 공경의 계명을 회피하려는 종교지도자들의 악한 모습을 책망하셨습니다(7:1~23).
또한 예수님께서는 모든 악한 행동의 원인이 마음 상태에 따라 판단된다고 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처음부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전통을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악한 생각들이 그들의 눈을 가렸고, 결국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믿음 없는 자의 전형이 됐습니다.
반면, 수로보니게 여인은 종교지도자들과 완전히 대비됩니다. 그녀는 당시 천대받던 이방 여인으로, 사람들의 눈에는 복음의 은혜를 누리기에 부적절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예수님을 ‘주’(퀴리에)라 부르며 자신의 낮음을 인정했고, 떨어진 부스러기만 먹어도 좋다는 놀라운 믿음을 고백해 그녀의 딸이 고침받습니다(7:24~30).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자에게도 은혜를 부어 주셨는데, 사람들이 행한 믿음이 환자의 병을 낫게 한 것입니다(막 7:31~37). 이들은 종교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칠병이어를 통해서도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셨지만,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했고, 제자들은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을 먹을 것이 없음을 지적하는 뜻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벳새다에서 예수님께 고침받은 맹인과 그를 인도한 사람들보다 연약했고, 여전히 영적으로 눈먼 상태였습니다(8:1~26).
우리는 복음의 확장을 위해 마음을 지키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복음 확장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라(8:27~9:29)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보고를 보면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주님은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여겼기에 예수님께서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는 말씀에 항변했습니다.
‘항변했다’는 말은 ‘비난하다, 책망하다’라는 뜻으로, 베드로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앞날을 용납하기 어려웠음을 강하게 드러낸 표현입니다(8:27~9:1). 그의 이런 생각은 변화산에서 예수님께 초막을 짓고 살자는 제안에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에서의 사건 자체를 자신의 죽음과 부활 때까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9:2~13).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남아 있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서기관들과 변론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귀신 들린 한 아이로부터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했지만 제자들이 이 일을 하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고, 귀신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권위에 굴복했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위와 사명을 인지하고 기도했다면 이 일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초막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안식하고 싶은 수준이었기에, 예수님의 권위와 사명을 담기에는 믿음의 용량이 부족했습니다(9:14~29). 결정적으로 그들의 영적 용량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담기에 부족했습니다.



제자의 길을 가라(9:30~10:5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죽음과 부활에 대해 두 번 더 말씀하시며(9:30~32, 10:32~34), ‘제자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수난 예고 때 사용한 동사(‘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가 미완료 시제인 것은 일회성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가르치셨음을 알게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깨닫기 원하셨던 바는 무엇일까요?
먼저 예수님의 제자라면 스스로 섬기는 자가 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예로 드셨습니다(10:13~16).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낮은 지위의 사람을 대접하기 위해 자신을 더 낮춰야 함을 뜻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자들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섬김의 자리보다, 누가 높은 자리에 있느냐에 집중돼 있었습니다(9:33~37, 10:35~45).
또한 예수님의 제자라면 타인을 실족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뜻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행위에 대해 ‘찍어 버리라’고 하실 정도로 엄중하게 다루셨습니다(9:38~50).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라면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모세를 통해 허용된 ‘이혼’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완악함을 탓하시면서, 약자 보호를 위해 규정된 이혼 증서를 남용하는 행위를 금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틀을 알려 주셨는데, 바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10:9)는 말씀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자라면, 가족 공동체의 파괴를 자신의 유익에 따라 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10:1~12).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제자라면 하나님만 붙드는 자가 돼야 합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를 많이 소유한(:붙들다)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많은 부를 붙들고 편의를 누리는 자가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인생으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고, 하나님만 붙드는 인생으로 삶의 정체성을 바로잡아야 합니다(10:17~31).
이처럼 제자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내 유익과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준을 두고,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바로 이 같은 삶의 전환이 가능할 때 제자도의 기본 정신인 자기 부인의 삶이 가능하게 되며, 복음의 확장도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라(11:1~33)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과 동시에 성전으로 향하셨습니다. 성전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환영하는 곳이어야 했지만, 당시 성전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저주를 통해 성전 파괴를 선언하셨고(11:12~14), 직접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이후(11:15~19), 제자들에게 ‘믿음’과 ‘기도’를 강조하시면서 이젠 제자들이 성전 역할을 대신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11:22~25).
이 같은 예수님의 선포는 종교지도자들과의 갈등을 부추기는 계기가 됩니다. 종교지도자들의 관심사는 예수님께 ‘하나님의 권위가 있느냐’에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기 싫었고, 자신들의 권위가 무너지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11:27~33).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길을 대적하게 됩니다. 결국 그 삶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저울질하기를 그치고,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복음 확장의 역사에 동참하게 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는 마가복음의 주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한다면 죽음과 부활에 대해 세 번이나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이 믿음의 눈을 뜨기 바라신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마가는 복음 확장을 위한 자기 희생과 섬김에만 관심을 둔 예수님을 조명하며 이 복음서를 기술했습니다. 마가복음 7~11장을 함께 묵상하는 우리도 복음 확장에 초점을 맞춘 인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에 관심을 두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Vol.170 201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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