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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이 말한 웃음과 희망의 가치 <모던 타임즈>(1936)

2019년 05월 장다나(영화 평론가)

하루 종일 공장에서 기계처럼 일하다가 신경 쇠약에 걸린 한 공장 노동자(찰리 채플린)는 파업 시위의 주동자라는 오해를 받아 수감됐다가 모범수로 풀려난다. 그러나 그는 자본가들의 모욕과 생활고에 지쳐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궁리를 한다. 그러던 중 부모를 잃고 굶주린 소녀(파울레트 고다드)를 만나면서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찰리 채플린의 1936년 영화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는 알아도, 그가 산업화가 시작된 미국의 자화상을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담아낸 영화감독이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다. 그만큼 그는 영화 역사상 그 어떤 캐릭터와도 바꿀 수 없는 괴짜 이미지로 강렬함을 지닌 배우다. 하지만 막강한 외적 이미지에 가려 그가 감독으로서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가치들이 활발하게 논의되지 못한 점은 퍽이나 유감이다.
몇몇 학자들은 채플린을 ‘유치함의 거품을 업은 광대’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과 그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매우 영화적인 방식으로 녹아 있다. 특히 흥행 및 작품성으로 가장 인정받고 있는 <모던 타임즈>는 미국의 실업률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에 수직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발생한 빈곤과 소득 불균형의 문제를 집 없는 노동자와 부모 잃은 아이가 겪는 숱한 고난의 문제로 대치시켜 보여 줬다.
영화 속 공장 노동자들은 거대한 기계 문명 앞에서 각자의 개성을 잃은 채 모두 같은 모습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이 모습은 산업화가 가져온 우울증과도 같다. 신경 쇠약에 힘들어하는 인물들의 모습,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거대한 자본의 눈, 상실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들은 회색빛 도시와 거대한 기계 공장 안에 작고 작은 먼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영화를 통해 보여 준 삶에 대한 통찰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가끔 채플린이 남긴 이 말이 생각날 때마다 웃음과 희망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이 말은 엔딩 장면에서 “살려고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에요!”라며 모든 것을 잃고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에게, 혹은 이 소녀처럼 희망을 잃은 누군가에게 채플린이 건네고자 했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Vol.172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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