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김명호 목사 _ 국제제자훈련원 대표
가끔은 요트나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꿈을 꾼다. 하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뱃사람이 되기는 틀린 사람이다. 정박해 있는 배를 보기만 해도 멀미를 하는 터라, 그 꿈은 아예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다만 항해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애로우 리더십 미니스트리의 회장인 카슨 퓨는 『핵심 리더를 세우는 실전 멘토링』(국제제자훈련원)이란 책에서 일주일 동안 항해에 대해 훈련 받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능숙한 뱃사람인 항해 강사가 지도를 펼쳐놓았다. 지도에는 목적지로 설정한 섬과 육지가 보였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항해 경로에 대한 엄청난 양의 정보가 빼곡히 실려 있었다. 그때 강사가 이렇게 질문했다. “항해할 때 꼭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강의를 듣던 사람들이 이런저런 추측을 내놓았다. 조수 간만의 차? 아니면 배가 가야 할 목적지? 이들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강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 항해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모른다면 지도에 나와 있는 모든 정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점은 리더로 부름받은 모든 사역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만약 현재의 위치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목적지까지 이끌 수 없다. 좋은 리더일수록 자신과 공동체의 현재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사람이다. 자기감정에 매이지 않고, 깊은 통찰력으로 자기 인식을 바로 하는 사람이 공동체를 제대로 인도할 수 있다.
리더가 자기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애물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피드백의 결핍이다. 개인적으로는 성공의 사다리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그에게 제공되는 피드백은 점점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공동체나 조직에 있어서는 조직이 점점 커지고 바빠지고 할 일이 많아질수록 조직 자체가 만들어내는 홍보물만 믿게 된다. 조직 내에서만 오가는 말만 믿고 외부에서 제시하는 피드백이나 비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세습, 세금, 목회자의 사치, 재정 투명성, 가짜 학위 등의 문제를 가지고 태클을 걸어온다. 다른 종교나 다른 사회적인 문제에 비하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집요하고 악의적인 비판인 면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과 비판을 통해 한국 교회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자기 인식을 바로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어쩌면 한국 교회의 영향력이 커지고 거대해졌기 때문에 자정 능력이 약화되고, 외부의 피드백을 거부해왔기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안에서 사랑하는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공동체를 향하여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열린 대화가 없기 때문에, 이제는 외부에서 인정사정없이 비정하게 칼을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북방의 군사적 위협을 막아내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세워졌다. 아무리 대단한 군사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성을 기어오를 수는 없을 정도의, 말 그대로 금성철벽이었다. 그런데 만리장성이 세워진 첫 백 년 동안 중국은 세 번의 외침을 받았고, 세 번 모두 만리장성이 뚫렸다. 물론 만리장성이 무너지거나 그 벽을 넘어서 들어온 나라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세 번 모두 문지기가 매수 당해 외적들은 마치 자기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처럼 행진하며 쳐들어왔다. 돌로 만든 장벽에 의존하다가 그 성을 지켜야 할 백성들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쩌면 그 수나 영향력에 있어서 만리장성에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천만이 넘는 그리스도인을 자랑하고 밤하늘에 수도 없이 켜져 있는 십자가의 네온사인은 대단한 위용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 속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자신을 인식하는 통찰력이 요구되고 있다. 그저 긍정적으로만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평안하다고 가르쳤던 거짓선지자의 말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표피적이고 어설픈 교회의 모습으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똑같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 우리가 만난 위기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때에만 험한 파도를 넘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