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17년 12월

자라지 못하면 들을 수 없다

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인생은 황홀한 기쁨이다.” “인생은 고통이며 공포다.” 전자는 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랄프 에머슨이 한 말이다. 후자는 19세기 러시아의 대표적인 문호였던 도스토옙스키가 남긴 말이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한 사람은 인생을 황홀한 기쁨으로, 한 사람은 고통으로 이야기했다.
누구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가? 에머슨의 말도, 도스토옙스키의 말도 맞다. 두 사람은 삶이라는 동전의 서로 다른 면을 봤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동전의 양면처럼 황홀한 기쁨이자 고통이다. 기대와 설렘을 갖고 걷는 것도 인생이고, 양파처럼 벗길 때마다 눈물이 나는 것도 인생이다. 빛과 그늘, 산과 골짜기가 끝없이 반복되는 여정이 인생이다. 이것을 시편의 시인은 ‘푸른 초장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표현했다. 
모든 사람은 푸른 초장의 삶을 소원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순간도 소중하다. 40년간 목회 사역을 하는 동안 확인하고 깨달은 것은, 성도의 신앙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성숙하고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하심을 기도 속에서, 생활 속에서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신앙이 성숙해지고, 깊어지며, 무르익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깨달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다.
제자훈련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출생한 아이가 부모의 음성을 듣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돌이 지날 때쯤 부모를 알아보지만, 그때에는 몇 마디 말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5세가 지나면 부모의 일상적인 말은 알아듣고, 10세가 지나면 제법 부모의 말귀를 이해하지만, 여전히 아이일 뿐이다. 20세가 되면 훨씬 부모의 말을 알아듣고, 30세가 되고 40세가 넘으면 이제는 부모가 말하지 않아도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자녀를 키우면서 50세가 되고 60세가 되면 부모가 예전에 했던 말이나 행동에서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의 깊은 의미까지도 비로소 헤아리게 된다.
자라면 듣게 되고, 자라면 깊이 깨닫게 된다. 반대로 나이가 들어도 자라지 못하면 듣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어쩌면 이것은 한국 교회의 문제요, 목회자의 고민일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이 중요함에도 얕은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며 자라고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 이것이 제자훈련의 목적이다. 성숙은 균형 있는 성장을 의미한다. 제자훈련은 사람들을 자라게 하되, 균형 있게 자라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을 수가 있다.
목회는 성도들을 자라게 해야 한다. 성도로 하여금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닫도록 돕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목회자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제자훈련은 무엇보다 성도들이 ‘온전히’, ‘균형 있게’ 자라도록 하는 일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