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탐구

2013년 06월

에베소(EPHesus)와 바울

성경인물탐구 주영관 목사 (일산화평교회)

에베소(EPHesus)와 바울

 

Ephesus 에베소 
현재 터키 이즈미르 남서쪽 50Km 지점에 위치한 ‘에베소’의 기원은 B.C. 1,500~2,000여년 경에 아마존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그 후 아테네 이오니아인의 식민 도시였다가 리디아, 페르시아에게 정복당했고 다시 알렉산더 대왕의 손에 넘어가면서 로마 제국의 도시가 되었다. 에베소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 제국의 4대 도시 중 하나였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B.C. 1세기 경 에베소의 인구는 25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의 서울, 경기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 도시 인구(2012년 기준)가 30만 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볼 때, 당시 에베소의 인구는 상당히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로마 제국의 아시아 수도가 페르가뭄(버가모)에서 에베소로 옮겨지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 대지진 발생, 말라리아 전염병의 확산으로 사람들은 에베소를 떠났으며 아름다웠던 에베소는 폐허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그 유적지만 남아 터키의 관광지 기능만 하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했던 에베소는 큰 항구 도시로써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리아, 인도, 아라비아, 이집트 등지에서 몰려 온 상인들이 식료품과 향료, 고급 옷감과 보석, 노예까지 사고파는 동양 최대의 시장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은행업자, 운수업자, 법률가, 예술가, 철학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에베소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강의 범람으로 항구에 토사가 밀려드는 일이 잦았다. 사도 바울 당시, 약 10Km 정도가 진흙에 뒤덮이면서 항구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이로 인해 결국 에베소는 무역 중심지의 위치를 상실하고 만다.
이때부터 에베소의 주요한 생존 수단은 아르테미스(아데미) 신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전은 B.C. 8세기에 지어졌는데 신전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 꼽힌다. 이 신전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 정도 크다. 아르테미스 신상(神像)에는 24개의 젖가슴이 달려 있다. 이는 성적(性的) 풍요의 상징이다. 에베소는 매년 아르테미스 신전에 참배하기 위해 몰려든 순례객들로 붐볐다. 특히 5월 아르테미스 여신의 축제일이 되면 24명의 여사제들이 행진을 하고, 그 뒤로는 자신의 고환을 여신에게 바친 남사제들이 따른다. 행렬이 항구에 다다르면 24마리 황소의 고환을 여신에게 바치고 황소를 제물로 하는 제사 의식이 치러진다. 해마다 아르테미스 신전 순례객들로 붐비는 에베소는 자연스럽게 숙박 시설이 늘어났고, 이들을 위한 위락 시설과 마술이 성행하게 된다. 에베소 사람들, 특히 은 세공업자들(은장색, silversmith)은 금과 은으로 만든 여신상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A.D. 64년 사도 바울의 순교 후, 사도 요한은 바울을 대신해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도미티안 황제 때 요한 역시 로마로 끌려가 파트모스(밧모, Patmos)섬에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썼다. 도미티안 황제가 죽은 후 요한은 에베소로 돌아와서 ‘요한복음’을 썼다.


Paul 바울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성도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이후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바울은 총 세 번에 걸친 전도 여행 중 2차, 3차 여행 때 에베소에서 전도를 했다. 바울은 2차 여행 때 고린도에서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함께 에베소로 가게 되었는데,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 남고 바울만 에베소를 떠났다. 방문한 기간은 짧았지만 에베소는 바울의 다음 선교 여행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3차 여행 때 바울은 다시 에베소를 방문했고, 3년 가까운 시간을 체류하는 동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바울이 몸에 지니고 있는 손수건만 얹어도 사람들의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났다. 예수님을 믿게 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일어났던 놀라운 일들을 간증했다. 많은 마술사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들은 자신이 보던 책을 불사르고 직업도 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처럼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르테미스 신상을 만들어 파는 은 세공업자 중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문제를 일으켰다. 자신들은 아르테미스 여신 때문에 먹고 사는데, 바울이 아르테미스와 신전을 무시하고 있다고 선동한 것이다. 폭동이 될 뻔했던 집회가 무산되긴 했지만,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복음으로 인한 파장은 매우 컸다. 이런 기억을 갖고 있는 에베소에 사도 바울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자신의 상황이 누구보다 어렵지만 눈물로 전도하고 목회를 했던 곳이었고, 앞으로 에베소 교회에 닥칠 환난과 박해를 생각하면서 큰 사랑으로 편지를 쓴 것이다.


Homily 가르침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두기고에게 편지를 맡겼다. 에베소서는 성도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려 하기보다, 교회에 용기를 북돋워 주고자 쓰여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선택되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죄를 사하시고, 많은 축복과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전에는 자신의 뜻대로 살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자신의 자아와 욕망을 죽인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도 함께 부활했다. 하나님에 대해서 살아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고, 성령이 구원의 보증이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도로서의 본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의 작품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선한 삶을 살도록 만드신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함께 성숙해가야 한다. 성숙하려면 속사람이 변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이기에 인종과 계급, 문화를 초월해 서로 섬기고 함께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사단의 거짓 속임수일 뿐이다. 이제 옛날 생활 방식을 버려야 한다. 모든 관계에서 서로 존중해야 한다. Q

 

사도바울의 삶과 편지

전도자 바울에게 감옥 밖의 생활이나 감옥 안의 생활이나 쉬운 것은 없었다. 독사에 물리고 죽기 직전까지 매를 맞고 풍랑을 헤쳐 온 삶이었으니 어쩌면 감옥 생활이 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로마 시민이라 사자와 싸우지는 않아도 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도 될까. 그러나 어차피 감옥이다. 맹수보다 더 지독하게 괴롭히는 사람들과 환경을 사도 바울은 홀로 견뎌내고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가득한 것은 그런 환경과 고통이 아니었다. 오로지 복음! 복음의 사람들이었다. 그가 가장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은 도리어 자신이 전도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뜨거운 사랑을 담아 편지를 보내고 있다.


에베소 시의 유적
대광장, 아르테메스(아데미) 신전,
셀수스 도서관(두란노 서원),
사도 요한 기념교회,
사도요한의 무덤,
누가의 무덤
사도 바울의 상황 

감옥에 갇힘
사도 바울의 에베소 방문
2차, 3차 전도여행
관련 성경 구절
사도행전 18~21장,
디모데전서 1:3,
디모데후서 1:18, 4:12,
요한계시록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