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9년 10월

기획 3 - 시대의 인물을 만드는 제자들의 서재

기획 임종구 목사_ 대구 푸른초장교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글귀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세운 창업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서울 한복판 노른자위 땅에 경제성이 떨어지는 서점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것은 나라의 가장 비싼 땅에 서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옛날부터 해서는 안 될 일을 빗댈 때 ‘동헌 문전에 주막을 짓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국가의 정사를 보는 중앙청 문전에 호텔을 짓는다는 것은 나라 체면을 먹칠 하는 것인데, 그걸 아는 제가 어떻게 돈이 된다고 해서 호텔을 짓는다는 말입니까?”라는 말도 남겼다. 그는 이런 이유로 호텔을 짓자는 제안을 물리치고 서점을 차렸다고 한다. 

책과 학문은 한 나라는 물론, 한 시대의 명운을 결정한다. 그래서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와 대학은 그 명성을 도서관으로 말한다.

나는 뉴욕 공공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눈물을 흘렸다. 그곳에서 ‘지성의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사역하는 푸른초장교회는 국가로부터 공공 도서관을 인가받아 운영 중이다. 그리고 수십억을 들여 도서관 건물을 신축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일찍이 책과 도서관의 중요성에 눈을 떴고, 또 이런 콘텐츠가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효과적인 접촉점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예배당과 도서관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자라날 자녀들을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은가? 


책을 끼고 살았던 위인들과 교회

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명제는 사실이면서 너무도 당연하고, 이미 모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전쟁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오늘의 빌 게이츠를 만든 것은 그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라고 하지 않는가? 태종이 황희를 중용한 것은 그가 관직을 맡아 집을 떠날 때 한 수레의 책과 이부자리가 전부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진으로 유배 간 다산 정약용도 마찬가지였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한 평범한 탁발 수도사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천년의 암흑기를 깨고 종교개혁의 깃발을 든 것도 그가 에르푸르트 대학 도서관의 책벌레였다는 사실에 있다. 이 평범한 사실은 제자훈련을 통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꿈꾸셨던 제자를 세우는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설교에서 지적 깊이를 갈망하던 청교도들은 매사추세츠에 상륙한 지 불과 6년 만에 하버드대학교를 설립했다. 대학을 설립한 이유는 “목사들이 무식을 벗지 못해 무지몽매하게 교회를 섬길까”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영국에서도 학식 있고 여유 있는 목회 사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설립했다. 

한국 교회 130년의 역사를 회고해 볼 때 한국 교회는 ‘책의 교회’였다. 선교사들이 한국 땅을 밟기 전에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이 먼저 들어왔고, 성경이 들어간 도시에는 어김없이 교회가 생기고 초가집 예배당, 기와집 예배당이 생겨났다. 

초대 한국 교회의 원형은 사경회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일학교를 비롯해서, ‘성경구락부’와 수많은 미션 스쿨이 세워졌다. 그러나 가파른 부흥기를 만나면서 한국 교회는 기독교 지성주의의 전통에서 이탈해 신비주의와 은사주의, 열광주의로 옮겨 갔다. 

이런 물줄기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꿔 놓은 것이 바로 제자훈련이다. 왜냐하면 제자훈련은 은사운동이나 성령운동이 아닌 성경운동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인물을 만드는 데에는 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명제를 제자훈련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접목할 것인가? 나는 신앙과 성경, 신앙과 독서, 신앙과 기독교 고전, 신앙과 기독교 현대 작품이라는 순서로 논지를 전개하려고 한다. 


신앙과 성경, 기초가 튼튼해야

그리스도인들은 그 무엇보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게으른 게 사실이다. 무조건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다른 양서를 읽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살아 있는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성경을 읽는 튼튼한 기초 위에 서야 한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성경을 읽는 가운데 세워졌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도 성경과 무관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설령 다른 참고 도서나 양서를 읽더라도 그 책의 사상과 지식이 성경의 토대 위에 있어야 독서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신앙과 독서, 지성과 영성의 균형 잡기

중세 시대의 수도원 일과에서 독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다니엘은 모든 서적과 학문을 깨달아 통달한 지식인이었다. 그의 경건훈련에는 독서가 있다. 시편 1편은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하고, 신명기 6장은 일상의 현장에서도 성경을 제외하지 말 것을 교훈한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생들은 성경과 아울러 신앙의 양서를 늘 곁에 두고 읽으며 그것을 기도의 자리, 실천의 장으로 옮겨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지성과 영성의 균형을 갖춘 제자로 빚어지게 된다. 


신앙과 기독교 고전, 기독교 독서력 갖추기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 것인가? 나는 기독교 고전에서 출발점을 삼으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 경건 서적들은 이미 18세기 이후 발생한 계몽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고전에서 현대 작품으로 넘어오는 것이 좋다고 본다. 

가장 먼저 존 번연의 《천로역정》으로 시작하라고 추천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훈련생들과 아예 챕터별로 읽고 나누는 것도 좋다. 또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리차드 백스터의 《참 목자상》를 읽을 것을 권한다. 

아울러 이렇게 어느 정도 독서력을 갖추면 장 칼뱅의 《기독교강요》도 추천한다. 단 1541년 제2판을 권한다. 왜냐하면 최종판(1559)은 너무 방대하고 스콜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판은 단권에 변증법적으로 기술돼 읽고 토론하기 좋다. 이런 굵직한 고전을 읽었다면 이제 기독교 표준 문서들로 옮겨가야 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요리문답 정도를 읽을 필요가 있다. 요즘은 해설서들이 많이 나와 있어 혼자서도 소화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이렇게 기독교 고전의 기본서들을 읽고 난 후에 교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교회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필립 샤프의 《교회사전집》시리즈를 권한다. 

신앙과 기독교 현대 작품, 필독서 10선

현대 작가들 중에서 C.S. 루이스,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 존 파이퍼, 존 맥아더, A.W. 토저, 마르바 던, 프란시스 쉐퍼의 책들은 많이 읽을수록 좋다. 현대 작품들 가운데서 굳이 필독서 10선을 뽑자면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E.M. 바운즈의 《기도》,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헨리 나우웬 《상처 입은 치유자》, 고든 맥도날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리차드 포스터 《돈, 섹스, 권력》, 오스왈드 스미스의 《구령의 열정》, 마르바 던 《안식》, 존 맥스웰 《열매 맺는 지도자》, 유진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들고 싶다.     


책 내용을 모티브로 한 시리즈 설교

나는 매년 7~8월이면 조금 특별한 시리즈 설교를 준비한다. 가령, 동화와 함께 읽는 복음 시리즈가 있다. 어릴 때 모두가 읽었을 법한 동화를 모티브로 설교를 하는 것이다. 

또 기억하는 것은 《천로역정》 시리즈 설교, 미우라 아야코의 《설령》 설교 등이 있다. 단순히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성도가 다 같이 책을 구입해 읽으면서 설교를 진행하는 것이다. 《설령》과 같은 경우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설교하기도 했다. 

《기독교강요》 같은 경우는 40일 동안 전 성도와 함께 집중적으로 강의하면서 읽어 가기도 했다. 또 교회 도서관에서 강독회를 열어 진행하기도 했다. 인상 깊은 강독회는 미우라 아야코 강독회였는데, 이때 일본에서 전문 강사를 초청하기도 했다. 커피와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읽고 나누는 시간은 참 낭만적이면서도 마음을 풍성하게 살찌운다. 심령부흥성회와 찬양집회만 있는 한국 교회에 기독교 고전 강독회는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런 모습은 제자훈련 하는 교회만이 가지는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제자반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 상반기 종강 모임을 서점에서 갖는다. 

훈련생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택하게 하고 구입해 준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끝난 후 가을에 자신이 읽었던 책을 나누자고 한다. 

이제 가을이다. 가을은 얼마나 운치 있는가? 산하가 물들어 갈 때 두꺼운 책을 가슴에 안고 가까운 카페라도 찾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세상을 잊고 차를 마시면서 진리와 인생을 탐구하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 아니면 지하철과 기차를 타고 가면서 한 권의 책을 손에 들면 좋겠다. 교회와 책 읽는 풍경은 가볍고 경박하지 않은 깊이 있는 제자들이 만들어져 가는 풍경이다. 



임종구 목사는 대구 푸른초장교회를 개척해 제자훈련 목회 철학으로 섬기고 있다. 대신대학교를 거쳐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전국 CAL-NET 이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