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임종구 목사_ 대구 푸른초장교회
지금 한국 사회는 팽창 시대에서 성장한 소위 부흥 세대가 기성세대가 돼 각 분야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기저에는 성장 논리가 깔려 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가령 새롭게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교회들을 살펴보면 기성세대가 주체가 돼 담임목사를 청빙한다.
이들은 목회자 청빙을 통해 제2의 부흥기를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좋은 목사님을 모셔서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그들의 과거 성장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전후 복구 시대를 거치고 각종 분야에서 기록을 갈아치우며 고도 성장을 이뤄왔다. 그 가운데서도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는 폭발적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잘 살아보세’는 한국 사회의 표어였다. 인구 성장이 너무 빨라 저출산 정책을 펼칠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가 교회에도 있었다. 오죽하면 교회성장학이 있겠는가?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은 번영 신학의 교과서가 됐다. 후에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도 노먼 빈센트 필의 매우 세련된 버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역의 미니멀리즘, 설레는 것에 집중하라
그러나 축제는 끝났다. 맥시멈(maximum)의 시대에서 미니멈(minimum)의 시대로 돌아섰다. 더 이상 10인용 밥솥은 없다. 한국은 출산율 0.98명의 나라가 됐다. 수도 서울의 출산률은 0.68명을 기록했다. 수도권 인구 유입이 없다는 가정하에서 교회가 맞게 될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미 인구 유출을 경험하고 있는 비수도권 지역의 교회들은 교회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2020년의 목회를 준비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지도자는 신앙의 망원경과 현미경을 갖고 있어야 한다. 유대에서 땅끝을 바라봐야 하고, 땅끝을 꿈꾸면서도 사마리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면에 대해서 자크 엘륄은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아무리 위대한 비전을 가졌어도 구름 속에서 살 수는 없다.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하며, 소처럼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한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세밀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모든 목회자는 세밀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역에도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필요하다. 거품과 과대 포장을 걷어 내고 본질이 뚜렷이 부각되게 해야 한다. 사역이 선명하고 명료해지는 것이 사역의 미니멀리즘인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라이프 스타일로 삼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버리는 것과 가지는 것의 기준은 ‘설레는 것’에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역의 미니멀리즘은 교회 공동체와 성도들의 삶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경화돼 가는 신앙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목회 현장에서 어떻게 사역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목회와 사역을 신선하게 할 것인지 푸른초장교회의 사례를 중심으로 나누겠다.
많이 버려야 살아난다
버리는 것은 선택을 선명하게 한다. 지도자의 사역이 20가지, 30가지가 되고, 구호가 10개가 넘어간다면 따르는 자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알 수 없다. 사역은 종합상사가 되면 안 된다.
물론 교회나 신자의 삶은 전 방면, 전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에 교회가 신자들의 삶에 관여하기로 하면 신앙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건강, 재무 관리까지 챙겨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을 맞을 수 있고, 몸과 마음은 사역에 지쳐 가는데 달라진 것은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지도자는 버리는 것이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을 의미함을 알아야 한다. 신자의 삶과 신앙, 그리고 교회 공동체와 사역은 유기적이다. 그래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회복되고 그 기능을 발휘하면 상승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선택하라
사역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사역의 가장 중심에 무엇을 둘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은 사역자들에게 사람들을 맡기셨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사람들의 어떤 필요에 반응할 것인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정’이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세우신 공동체이자, 가장 기초 단위의 공동체이면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공동체다.
가정은 남성과 여성,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노년, 중년, 청년, 청소년, 어린이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공동체다. 가정은 곧 교회이면서 하나님 나라다. 그래서 나는 교회의 10년 표어를 ‘신자, 가족, 시민’(엡 2:19)으로 삼았다. 통상 신자만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가족, 가정이라는 주제로 집중했다. 그래서 주일에 대한 표어를 ‘하나님과 함께, 가족과 함께’로 정하고, 주일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가치 기준에 따라 많은 것이 변했다. 일단 주일은 여타의 교회 행사를 줄이고, 금지시켰다. 주일예배를 중심에 두고, 나머지는 모두 가정을 향하도록 했다. 단순히 집에서 쉬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유도하고, 그 정점에 가정예배를 위치시켰다.
나는 가정예배를 제자훈련의 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개혁신학과 청교도 신앙과도 맥을 같이한다. 한국 교회의 성속이원론과 역동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개인주의적 신앙에서 원인을 찾는다면 가정은 가장 위기에 처해 있는 공동체이면서 가장 먼저 회복돼야 할 대상이다. 물론 많은 교회가 한국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신앙과 관련한 역할에서 결코 교회가 모든 사역의 주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로 가정의 역할,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모든 신앙의 책임을 맡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동력을 잃었고, 실제로 교회가 모든 것을 할 수도 없다. 나라를 잃은 민족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그것은 바로 가정이다. 지금 교회가 자녀 세대의 신앙 교육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은 결코 성경적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영국의 산업혁명의 산물일 뿐이다. 나는 교회의 각 교육 기관의 역할과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가정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앙 교육마저도 아웃소싱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
먼저 철학이 정립되고, 전략이 나와야 하며,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한 자세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푸른초장교회는 ‘사람’과 ‘가정’이라는 가치에 집중하기 위해서 교회가 할 일과, 가정이 할 일을 정리했다. 도식화하자면 교회는 제자훈련, 가정은 가정예배다. 교회는 가정을 지원하고, 교역자는 평신도를 지원하는 체계다.
그래서 많은 조직과 사역을 여기에 맞게 정리했다. 남녀 전도회를 조직하지 않고, 제직회에도 별도의 부서는 재정부 하나만 뒀다. 몇 개의 위원회가 있지만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 할 교육과 선교위원회만을 남겼다. 한마디로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결코 교회가 모든 것을 하는 구조가 아니라, 교회와 가정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다시 교회, 가정, 사회로 균형을 잡아 갈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신자들을 수단화하는 것이 아닌 신자들을 섬기고, 돌보기 위한 철학이다. 한마디로 ‘타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과 아내의 비유로 설명했다. 목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가 고도화되면서 하나의 직업적인 속성이 나타나게 됐고, 효율성과 생산성이 목회의 지형도를 결정하게 됐다.
내가 꿈꾸는 목회, 가정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는 사무실에서 종종 중국요리를 배달시켜 먹는다. 모진 비가 내리던 날 면 요리를 먹으리라 다짐한 후, 중국집 홍화루에 전화를 했다. 홍화루는 첨단 전화 시스템으로 이내 고객의 정보를 알아냈다. 그리고 “태풍이 와도 홍화루는 달린다”란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주문을 했다. 그런데 “아 고객님, 이번 달부터는 2인분 이상만 배달하게 됐어요”라고 한다.
나는 낙심하고 곧 국빈원으로 전화를 돌렸다. 늘 한결같은 홀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국삔원입니다.” 그리고 30분 즈음에 국빈원 배달 아저씨가 도착했다. 빗길에 달려오신 것이다. 몇 번이고 비오는 날 주문해서 미안하다고 말씀드렸다. 국빈원 아저씨는 늘 “면은 넉넉히 넣었슈”라고 하신다. 참 따뜻한 말이다. 1인분 볶음우동도 기꺼이 배달해 주시는 마음, 거기다가 면까지 넉넉히 넣어 주신 세심함, 볶음우동을 먹으며 생각했다.
‘나는 국빈원 목사가 되리라, 홍화루처럼 목회하지 말자, 국빈원처럼 목회하자. 면을 넉넉히 넣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1인분 주문에도 비옷을 입고 달려오는 국빈원처럼 목회하자’ 그런 결심을 했다.
오늘날 교회는 커뮤니티가 아닌 소사이어티가 됐다. 목회자도 전문인이 됐고, 실적에 목을 매고, 규모와 외형에 매달리게 됐다. 그러나 목회자는 사람이다. 목회자의 시야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건물과 조직과 행사, 그리고 인쇄물들과 시설, 영상물이 눈에 들어오면 안 된다. 사역의 미니멀리즘이란 사람에게, 한 영혼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역의 진정한 디테일은 따뜻함이다. 우정과 인간미다. 한 사람에 대한 이해, 한 영혼에 대한 간절함이다. 그래서 심방은 결코 과거의 목회 방식이나, 구식 목회 스타일이 아니다. 과거의 대심방과 같은 것을 오늘날 목회에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신과 원리는 중요하다. 심방이란 현장을 찾아가서 손을 잡고, 눈을 맞추는 것이다. 연탄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방에 불은 따뜻하게 들어오는지, 쌀독에 쌀은 떨어지지 않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는 노력이 모여서 가정이 건강하게 세워지는 것이다. 목회자는 한 사람을 보면서 동시에 한 가정을 봐야 한다. 그 한 사람에게 그 한 가정은 사역의 결과이자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故) 옥한흠 목사로부터 한 사람 철학을 배웠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약 20년) ‘가정’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대해 눈을 떴다. 내가 가르치는 한 사람은 신자이자, 제자이지만 동시에 아버지거나 어머니 그리고 남편이거나 아내 그리고 부모이자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장 본질적인 직분이요, 소명이면서 은사이고 사명이다. 나는 이 가치에 사역의 미니멀리즘을 적용했다. 교회의 모든 구조가 가정을 살리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신자의 역할, 교회의 역할, 기독교의 역할은 소리 높여 주장하지만, 가정의 역할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교회가 위기라고 말하면서도 가정의 위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나는 가정에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적용함으로 개인과 교회를 살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선택했다고 확신한다.
** 임종구 목사는 대구 푸른초장교회를 개척해 제자훈련 목회철학으로 섬기고 있다. 대신대학교를 거쳐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전국 CAL-NET 이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