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홍정기 목사_ 성남제일교회
나는 성남제일교회 부임 후 2년이 지난 2004년 9월에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2년간 뜸을 들인 후 시작한 훈련인지라 기대가 컸다. 인도자인 나는 물론 훈련을 받는 학생들도 긴장과 더불어 한번 해보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것은 고(故) 옥한흠 목사님이 부탁하신 ‘절대 서둘지 말고 무리하지 마라!’였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고수의 충고는 한번 해보겠다는 열의에 그만 묻혀 버렸다. 2년의 기다림 끝에 시작하는 제자훈련이기에 서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리하지 말라는 충고는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첫 단추부터 강행군
우리 교회는 장로와 안수집사가 통틀어 36명이었다. 교회 리더십 그룹이기에 같은 기수, 같은 팀으로 훈련받아야 단일한 방향성과 통일된 지도력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더십 그룹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혼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을 목요일, 토요일, 주일 세 반으로 나눠 훈련했다. 한 주에 3번의 제자훈련은 야곱의 얍복 강 씨름만큼이나 고통스런 전투였다. 또 제자훈련에서 다루는 내용이 한담(閑談)이 아니지 않은가? 30명이 넘는 훈련생들의 숙제를 점검하는 게 어찌 쉽겠는가?
그런 힘겨운 전투를 치르며 1기 훈련을 마쳤다. 그 후에는 사역훈련을 했다. 물론 한 반으로 모아 주일 오후에 실시했다. 하지만 3번의 주일 설교 후에 실시하는 훈련은 지난 1년간의 피로감을 줄여 줄 수 없었다. 그리고 마무리 코스로 시작한 DTS훈련, 16주 동안 토요일과 주일, 이틀간 오후 4시에 시작해 10시까지 한 훈련은 헐떡고개를 오르는 듯한 힘든 싸움이었다. 돌아보건대 서둘지는 않았지만 정말 ‘무리’가 많은 사역이었다. 그렇게 지난 11년이 지나갔다.
아는 것 같아도 모르고 있었던 말씀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이는 안식에 대해 흔히 읽고 아는 말씀이다. 안식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일을 손에 잡지 않는 것이 안식은 아니다. 나는 손은 쉬어도 머리는 계속 돌고 마음은 분주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안식을 몰랐다. 아니 외면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 6:31). 예수님은 음식 드실 겨를도 없이 바쁘셨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바쁜 때에 제자들을 한적한 곳으로 보내셔서 따로 쉬게 하신다. 여기에는 세 가지 뜻이 함축돼 있다.
자신을 일에서 떼어 내는 것, 한가한 장소로 찾아가는 것, 쉬는 것. 이것이 주님이 행하신 창세기 2장의 안식이다. 그러나 나는 일에서 나를 떼어 내지도, 한가한 곳으로 찾아가지도, 쉬지도 않았다. 성경 구절은 알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안식은 전혀 몰랐다. 부끄럽고 후회스런 일이다.
새벽형 인간이라는 만용!
한때 ‘새벽형 인간’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저녁 9시에 잠들고, 새벽 3시에 깨서 기도하고 독서하는 생활이다. 새벽기도를 해야 하는 목회자들의 특성과 잘 맞는 라이프스타일로 각광받았다. 나 역시 새벽형 인간의 삶을 살았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제자훈련, 순장반, 수·금요 집회로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저녁에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런 삶은 성도들에게 나의 자랑이 됐다. 하지만 실상 수면 부족과 체력 소진이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더구나 나는 10년이 넘도록 안식년을 갖지 않았다. 가시적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조급함 때문이었다. 10년 만에 겨우 2달을 쉬고 사역에 복귀했다. 내가 없으면 교회에 위기가 올 것 같았고, 목회는 헛바퀴만 돌 것 같아 불안했다. 한 주간의 휴가에 목말라하는 성도들 앞에서 목사의 안식년은 호사스런 욕망으로 간주했다. 돌아보건대 그건 분명히 나의 교만과 무지의 소치였다.
나는 제자훈련의 핵심은 주재권 세우기라고 생각한다. 무너진 인생의 주재권을 바로 세워서 내가 아닌 주님의 삶을 사는 것이 제자훈련이다. 그런데 나는 그 주재권마저 정립되지 않은 채 제자훈련을 실시했다. 주님의 교회라고 고백하지만 교회는 내 교회였고, 주님의 사역이라 말했지만 내 사역이었다. 그랬으니 그렇게 새벽형 인간을 부르짖고 요란을 떨지 않았겠는가. 돌아보면 우스운 어릿광대짓이었다.
암과 부딪히다!
부임 11년 차에 몸에 이상이 느껴졌다. 3년 동안 일주일에 3번씩 다니던 헬스장 출입이 고역스러웠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지만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체력은 좋아지지 않았고, 쉬는 시간엔 흠뻑 땀을 흘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때는 건강 검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몸에 이상을 느끼자 미뤘던 진료를 위해 3년 만에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이미 몸속에선 3기 림프종 암이 자라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정지되는 순간이었다! 곧바로 6개월의 긴 항암과 추적 치료가 이어졌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다. 감사하게도 내가 아파도 교회는 더 견고해졌다. 당회원들은 물론 온 성도가 치유를 위한 특별기도 주간을 선포하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나는 면회를 사절하고 독거의 시간에 돌입했다.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대면의 시간을 가졌다. 계속 ‘왜’라고 묻는 내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침묵은 부재가 아니다!’ 말씀이 가슴에 심어지자 질병을 보는 판도가 바뀌었다. 나는 응답했다. ‘주님, 제가 암을 통해 철이 들어가네요!’ 그러자 걱정이 물러가고, 죽음이 마주할 만한 과제나 넘을 수 있는 산으로 여겨졌다.
한편 교회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더 강건해졌다. 집회 숫자도 줄지 않았고 강단 사역을 공유하던 부교역자들은 풍성한 설교자로 세워지는 은혜를 누렸다. 한 사람, 담임목사가 아프니 역설적이게도 여럿이 견고해지고 풍성해졌다. 눈물이 회복되고 위기 앞에 성도들은 무엇이 옳은 삶인지 진지하게 물었다. 예기치 못한 은혜이자, 신비였다. 아비가 아프면 자식들이 더 성숙하고 견고해지지 않던가? 그런 은혜를 누리는 것이 목사와 성도에게 절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쓸데없는 고통을 주시지 않으신다. 교회와 성도는 모두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약을 먹듯이 산에 오르라!
예수님께서 습관을 좇아 오르시던 동산이 있었다. 겟세마네 동산이다. 거기서 하루 사역을 정리하시며 피로를 푸셨다. 제자들과 대화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동산은 정리와 회복의 자리이자, 동시에 창의적 공간이다. 주님께 이런 동산이 필요했다면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이 동산에서 붙잡혀 골고다 언덕에 오르셨다. 우리에게도 휴식의 겟세마네가 있어야 골고다로 건너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서 오르신 겟세마네 동산을 생략해 버린다면 골고다로 가는 길이 얼마나 무겁고 험난하겠는가! 나는 지금 거의 매일 산에 오른다. 건강상 피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약을 먹듯이 산에 오르며 얻는 유익은 참 많다.
첫째, 하나님과 많은 대화를 한다. 이런 적이 있다. 그날엔 비가 내렸다. 평소에는 평편하고 푹신한 곳을 디디고 걸었는데, 그날은 나도 모르게 물이 없고 볼록 솟아오른 돌머리를 디디며 걸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들아, 어제만 해도 돌들을 피해 가더니 오늘은 돌만 택해 밟는구나!” 내가 대답했다. “네, 그렇네요.” “인생의 선택이란 이렇게 수시로 변하는 거란다! 그렇다면 이제 네 선택을 고집하지 말거라!” 그날 울면서 빗속을 걸었다. “주님, 백번 옳으신 말씀이네요. 만약 제가 고집을 피운다면 그때도 비를 내려주세요.”
또 바람 불고 안개 낀 어떤 날에는 남한산성에 올랐다. 날씨가 뒤숭숭하니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참 외로운 길이었다. 그때 주님께서 내게 농담을 건네셨다. “아들아, 너만을 위해 남한산성을 통째로 비워 놨단다. 마음껏 즐겨라.” “네, 고마우신 예수님, 마음껏 즐기겠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밝아졌고, 나는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의 주인공이 됐다. 이런 멋진 대화를 어디서 캐낼 수 있겠는가? 바로 주님과 함께 걷는 동산이다.
이제 예수님처럼 동산에 올라보자. 임마누엘 칸트는 독일 밖으로 여행하지 않은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성과 경험을 통합한 드넓은 사유 체계를 세울 수 있었을까? 시계추처럼 정확하게 실천했던 산책과 그 길에서 건져낸 사유의 열매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이다.
둘째, 설교의 뼈대가 세워진다. 설교를 준비하다 보면 많은 자료, 정보, 본문 묵상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데 걷다 보면 그 많은 생각이 정리돼 줄을 서면서 설교의 골격이 세워진다.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해지면 반사적으로 일어나 산책 길에 오른다. 물론 갈 때와 올 때 머릿속은 전혀 다르다. 찡그리며 갔다 웃으며 돌아온다. 길에서 기도하고, 설교도 듣고, 찬양도 한다. 은혜의 성찬이다! 그래서 내게 동산의 산책 길은 또 다른 서재요 골방이다.
셋째, 건강에 루틴(routine)이 생긴다. 규칙성은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시간을 정해 놓고 운동을 하면 생체 리듬에 규칙성이 생겨 좋은 습관으로 이어진다. 몸이 게으름에 빠질 때에 걷고, 삶이 무질서해질 때에 질서를 세워야 한다. 건강한 루틴이 생길 때, 하나님과의 동행도 더 풍성해진다.
‘부지런한 목사’(?)라는 말에 속지 말라
나는 이 말에 속고 살았다.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고 싶다.’ 부지런한 열정을 촉구하는 말이다. 멋진 통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기계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병들고 나서야 하나님께서는 나를 일하는 기계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어릴 때 들었던 속담인 ‘죽으면 썩어질 몸, 아껴서 무엇하리!’라는 말은 건강할 때 열심히 일해 뭔가 이루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경구와 속담들이 나를 왜곡시키고 있었다. 뭔가 한번 이뤄 보겠다는 나의 열심을 정당화시켰고, 닳아 없어지려는 내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사실 죽으면 썩어질 텐데 왜 아끼려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부지런한 목사’라는 세상과 마귀의 찬사에 보기 좋게 속았다. 보기 좋게 병들어 하나님의 창조물인 내 몸 하나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게 어찌 나 혼자만의 일일까! 다시 되새기고 싶은 것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강철도 아니고 황소도 아니다. 따라서 기계나 황소처럼 일하다가 닳아 없어지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다. 세상이 촉구하는 무모한 열정과 영적으로 균형 잡힌 열심은 전혀 다르다! 절대 속으면 안 된다! 쉬엄쉬엄하되 지혜롭게 하라.
성소가 있는가?
다윗과 사울에겐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 다윗은 전쟁에 나갈 때 중요한 시기마다 하나님께 물었다. ‘주여 어찌하리이까.’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대상 10:14). 이는 성소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다윗의 심중엔 주의 보좌가 있었지만, 사울의 마음엔 미움과 시기가 들끓었다. 목사도 예배 인도자, 설교 제조기의 삶을 산다면 아무리 탁월한 열매가 있다 해도 성소 부재의 목사일 뿐이다.
정약용의 제자 황상은 강진에 유배를 온 스승에게 탁월한 학문을 배워 당대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 일속산방(쌀 한 톨만한 작은 집)을 짓고 칩거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한다. 1930년대 스콧 니어링도 1차 대전과 경제 공황으로 흉흉하던 세상을 등지고 버몬트 주에 오두막을 짓는다. 먹을 만큼 농사짓고 남으면 이웃과 나눴다. 결국 일속산방과 오두막엔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들의 작은 세계는 세상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성소가 있었다.
나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자신을 돌아본다. 내게도 성소가 있는가? 일속산방, 오두막이 아니라 다윗이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물었던 그 성소 말이다. 이 성소가 있는 사람은 사역에 갇히지 않는다. 벼슬길을 탐하지 않고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지었듯이 제자훈련 사역에 갇히지 않으며, 사역의 종도 되지 않는다. 사랑의교회를 사임할 때 옥한흠 목사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한다. “홍 목사, 가서 절대 서둘지 말고 무리하지 말게!” 지금도 사역의 좋은 지침으로 삼고 있다.
홍정기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사랑의교회에서 교육 담당 사역자로 섬겼다. 현재 성남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