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2년 10월

특집 * 故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 2주기 추모학술대회 결산

특집 박시온 기자


은보의 제자훈련 목회, 선교적 교회론 바탕 위에 서다
- 은보의 신학은 한스 큉 이전 개혁주의 신학의 영향 논찬

 

지난 9월 3일,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오후 2시부터 제1회 故 은보 옥한흠 목사 추모학술대회가 개최됐다. 故 은보 옥한흠 목사 추모 2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열린 이번 추모학술대회는 한국 교회가 그를 그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하나님의 일꾼의 삶과 사역을 역사적, 신학적으로 추적하여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적 유산으로 전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추모학술대회는 국제제자훈련원과 CAL-NET이 주최하고, 사랑의교회와 옥한흠 목사 기념사업회 후원으로 개최됐으며, 특히 CAL-NET의 앞장선 섬김으로 앞으로도 매년 개최하여 제자도와 교회론, 실천적인 리더십 등 학술적인 연구를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번 추모학술대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옥한흠 목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영적 유산을 점검하고, 제자훈련을 비롯해 그의 사역을 이끌었던 신학적 맥을 찾고 계승하기 위한 첫 발걸음으로써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박응규 교수가 발제를,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오덕교 교수와 서울신학대학교 박명수 교수가 논찬을 맡았다. 

옥한흠 목사의 신학적 뿌리에 대한 역사적 고찰 
박응규 교수는 ‘은보 옥한흠 목사의 선교적 교회론과 제자훈련 목회’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현재 옥한흠 목사의 평전을 집필 중이기도 한 그는 “이번 연구는 은보의 신학적 바탕이 무엇인지, 특히 선교적 교회론이 어떻게 정립되고 제자훈련 목회로 연결되었는지 그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먼저 증조부로부터 시작되어 옥한흠 목사에게로 이어진 신앙계보를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의 감성적 기억이 옥한흠 목사 인생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논했으며, 그가 회심하여 학생신앙운동을 했던 청소년 시절부터 그의 마음속에 교회론에 대한 질문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이어 박 교수는 총신의 황금기로 불리는 시절에 그가 신학공부를 하면서 박형룡, 박윤선, 간하배 등의 교수들로부터 육화(肉化)된 학문, 인격과 삶이 배어 있는 신학을 배우고 영향 받았으며, 영어 원서로 공부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수많은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원서를 번역하는 작업을 통해 기독교 변증에 관심을 갖게 되고, 평생 강해설교를 선호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평했다.
또한 끊임없이 질문하는 신학도요 목회자였던 그가 유학을 결심, 칼빈신학교에 가서 성령론과 교회론을 균형 있게 정립하고, 지상 교회의 선교적 소명을 확실히 깨달음으로써 선교적 교회론을 확고하게 정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웨스터민스터신학교에서 한스 큉의 『교회론』을 만남으로써 제자훈련의 신학적 해답을 발견하는 해갈의 기쁨을 맛보았는데, 박 교수는 “이때 옥한흠 목사가 한스 큉의 저서에서 발견한 사도성은 새로운 혁신적인 가르침이 아닌 ‘재발견’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 후 그가 한국에 돌아와 선교적 교회론 바탕 위에 시작한 제자훈련 목회에 대해서는 교회 개혁을 전제로 한 제자훈련이었고, 교회 일꾼 양성 이상의 교회 연합과 개혁을 위한 사역이었다고 평했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그가 실천적 개혁주의자로서 한평생 제자훈련의 광인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그에게 한국 교회 역사에 대한 고찰과 한국 교회 안에 교회론적 회심의 역사가 필요하다는 철저한 시대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발제에 대한 두 관점에서의 논찬
박응규 교수의 발제에 대한 첫 번째 논찬은 오덕교 교수가 맡았다. 칼뱅주의자 입장에서 그는 “발제자가 은보를 개혁주의자로 간주하려고 노력하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면서 “한스 큉이 은보에게 준 것은 신학의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다. 은보가 한스 큉을 지나칠 정도로 부각시킴으로써 개혁신학을 비하하는 인상을 주고, 이로 인해 신학적 혼란을 일으켰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은보는 철두철미한 칼뱅주의자였다. 그러나 은보의 제자훈련 사상에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라며, “장로교회 전통에 충실하여 교회 나누기 운동을 전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논찬을 마무리했다.
두 번째 논찬을 맡은 박명수 교수 역시 “발제자는 궁극적으로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 목회가 개혁주의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은보의 신학은 한스 큉의 영향 이전에 이미 개혁주의 신학에서 배운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반면 그는 “만일 옥한흠 목사가 자신의 개혁주의 전통에만 충실했다면 그가 주장하는 제자훈련 목회가 가능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본다”라며, 발제자의 연구에서 복음주의적 요소, 즉 부흥운동과 체험 신앙, 선교단체의 영향, 에큐메니컬 요소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논했다. 

발제와 논찬, 질문과 답변 시간을 모두 마친 후 오덕교 교수는 “옥한흠 목사님이 평소 신학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 것과 한스 큉을 강조한 것은 사변주의를 경계하고자 하신 말씀이므로 잘못 해석하지 않도록 그분의 심중을 깊이 이해하여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라고 짚었다. 박명수 교수는 “3년 동안 예수님이 하신 제자훈련의 결론은 마가의 오순절 다락방에서 완성됐다. 제자훈련과 성령운동이 함께 갈 때 힘을 얻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박응규 교수는 “마음에 와 닿는 옥한흠 목사님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균형과 절제이다. 신학과 사역에 있어 그는 자기 입장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다른 입장도 수용했다. 그렇기에 제자훈련이 문화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확산되었다”라고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평전 작업에 논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전했다.  <박시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