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0년 07월

제자훈련이 나아가야 할 방향 _ 제자훈련이 전인격적 영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

특집 윤난영 사모 _ 사랑의교회

한국 교회에 제자훈련이 접목되기 시작한 지 3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교회 사역의 본질은 재차 확인될 필요가 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더라도 교회가 세상 끝 날까지 준행하고 전수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대계명과 대사명이다. 대계명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대사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가르쳐주시고 모범을 보여주신 대로 제자를 삼는 것이다.
대사명과 대계명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제자도 안에서 서로 연합되어 있다. 제자도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대계명으로 집약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사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오늘날 시행되는 제자훈련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제자도의 개념과 다르게 변형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제자훈련을 단순히 지도자 이수 과정으로 인식하면서 영적 엘리트 그룹을 형성하여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고, 율법적인 종교 지도자를 양산하여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의 제자훈련이 지식과 행동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전인적 차원에서의 변화에는 약하다는 도전을 받기도 한다.
제자훈련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가정교회와 같은 다른 대안을 찾는 교회들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자훈련 후의 방향에 대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자훈련을 받았느냐보다는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전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교회와 사회에서 아름답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1. 새 언약에 근거한 대계명
제자훈련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새 언약에 근거한 대계명을 지키는 제자로 훈련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즉,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제자들을 키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이 땅 위에 임하고 확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훈련의 중심주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나라’라는 개념은 삶의 모든 영역, 즉 마음, 가정, 직장, 사회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이 예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의미한다.1) 일상의 삶 전체가 제자도의 현장이 되는 것을 말한다. 제자도는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므로 훈련을 통해 제자에게 허락된 시간, 장소, 가족, 이웃, 재능, 기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2)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제자도라고 말하였다(엡 4:12). 또한 제자훈련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훈련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엡 4:13).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믿음과 인격이 성장하여 영적으로 건강해지도록 세워주는 것을 말한다. 성도들이 제자훈련으로 온전하게 성숙되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교회와 사회를 섬기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이기적인 영성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최대의 관심사였던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구약과 신약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중심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 이후로 특히 현대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상이 희박하다.
그것은 “개혁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교회의 자각에 재초점을 맞추지 않고 개인주의적 영성의 중세적 모델을 단순히 드러내는 데 그쳤던 이유이다.”3)
제자훈련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초점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눅 4:43). 하나님의 나라는 현세적으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육신적인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있는 영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이 땅 위에 임할 수 있는 근거는 새 언약에 있다. 언약관계는 “생명을 주고 생명을 유지하는 관계”인데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옛 계명이 연약하고 무익해졌으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을 이루어주시고 성령께서 새 언약을 인쳐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의한 새 언약은 구원과 회복이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성육신을 통한 전적인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임을 확증한다.4)

 

1) 그레그 옥던, 박규태 옮김, 『세상을 잃은 제자도 세상을 얻은 제자도』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07), 43-44.
2) Dallas Willard, The Divine Conspiracy(New York: Harper Collins Pub. 1998), 284.
3) 리처드 러브레이스, 김진선 옮김, 『온전한 영성』 (서울: 아가페, 2008), 73.
4)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Zondervan, 1994), 530.

 

예레미야 31장 31~34절에 약속하신 새 언약의 특징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고 그 마음에 기록하여”라는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하여 마음에 새겨진 사랑의 법에 근거한다(33절). 이것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외적인 율법의 옛 계명과는 차별됨을 보여준다. 둘째, 옛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정되었으나, 하나님 나라의 새 언약은 모든 민족에게 차별이 없이 전파되는 복음의 보편성에 있다(34절). 셋째, 율법은 어기면 정죄되고 저주 아래 두었지만, 새 언약은 죄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로 인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온전함에 이르도록 한다(34절). 그러므로 제자훈련의 기초가 새 언약 위에 세워질 때 온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는 새 언약의 죄 용서함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영성 형성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언약은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롬 7:6).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옛 생활의 길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과 친밀하고 가까이 나아가 더 좋은 소망의 새로운 영적인 삶으로 변화되는 것이 영성 형성이다.
영성 형성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인의 영혼 속에 역사하셔서 예수님의 인격과 천국의 실체를 형성해 주시는 것이다. 성령은 제자의 내면의 성품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형성하신다. 멀홀랜드는 영성 형성이 ‘헌신한 제자들’만을 위한 훈련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근본 실체이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사건은 하나의 영성 형성의 경험이라 주장하였다.5)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주신 새 언약에 근거한 영성 형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자훈련이 영성 형성으로 성장되고 확장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있어서 영적 성장이란 하나님에 대한 거짓 형상을 버려가는 과정이며,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해 점점 자신을 열어가는 과정이다. 제자훈련은 이전의 우리의 마음에 있던 하나님에 대한 거짓 형상을 떨쳐버리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뜻대로 조정하려는 모든 환상과 기대를 버리고, 인간의 모든 생각과 사고와 기대를 훨씬 넘어서 초월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정한 영성 형성의 시작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인식과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제자들을 핍박하였다(요 16:2). 율법에 매여 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였다”(빌 3:18). 그러므로 제자훈련이 율법적이거나 권위적이 되어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갈 3:3).

제자훈련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규율을 절대화하는 율법주의이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율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인간의 교만에 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율법에 매이기 쉬운 인간의 본성을 경고하였다(갈 2:16).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깊이 알아감으로써 하나님을 갈망하며 사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수의 제자가 행동의 안내자로 삼고 도덕적인 행위의 본을 삼아야 할 규범이나 기준은 율법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롬 8:2). “성령의 법”은 예수께서 주신 “새 계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새 언약은 새 계명을 주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성령의 법인 새 계명은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대계명은 첫째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다(막 12:28~31).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 된 제자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교회 내에서 그들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규정짓는 언어가 되도록 해야 한다.6)
그렇다면 제자훈련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사랑은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향하지만 제자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제자의 표시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을 지배하고 강요하려는 모든 통제에서 상대를 놓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에서 훈련이라는 명분으로 훈련생을 자신의 책임과 성령의 인도하심에서 끌어내어 담당 교역자의 통제 아래 두려는 것은 성경적인 제자도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5) 로버트 멀홀랜드, 최대형 옮김, 『영성 형성을 위한 거룩한 독서』 (서울: 은성, 2004), 32-33.
6) T. Wiarda, “Peter as Peter in the Gospel of Mark.” New Testament Studies. 45(1). 22.

             
2. 내면의 변화
제자훈련이 새 언약에 근거하여 대계명을 행하려 할 때 내면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제자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중심에 있는 내면의 마음과 성품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토저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내면에 관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면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7)
사람의 내면을 키우는 일은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신앙생활이 습관화될수록 우리의 내면은 의무감으로 인한 율법주의와 과잉의욕에서 오는 분주함으로 인해 죽어간다. 그리스도께서 제자에게 원하시는 것은 죽은 지식이나 인간적인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친밀한 관계이다. 영혼과 몸을 포괄하는 온전한 전인으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뜻이며 첫째 계명이다(막 12:30).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순종하는 제자에게 하나님의 선하심, 영원하심, 무한하심, 진리, 사랑, 영광 등을 나타내 보여주신다(요 14:21).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큰 기쁨을 가져오는 내적인 생명에 속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사물을 아는 방편인 외적 감각의 지식과는 구별된다.8) 내면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지각과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은 거짓된 영성이다(요 5:42; 요일 4:1). 전인격적 영성 형성이 없는 제자훈련이 형식적이고 종교적 지식으로 머무르는 것처럼, 제자도가 없는 영성 형성은 뿌리 없는 꽃과 같이 생명력이 없는 거짓 영성이 되기 쉽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유대인들에게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며 “사람의 전통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종교인들의 외식을 꾸짖으셨다(막 7:6). 만일 제자훈련을 외적인 행위와 경건의 모양에만 강조점을 둔다면 제자훈련 과정이 생명 없는 율법주의 및 외형주의로 빠질 위험성이 크다.
훈련을 하다 보면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성경 지식을 익히고 겉으로만 종교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에 대해 달라스 윌라드는 일반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믿음이 형성되고 내면생활과 외부 행동이 개발될 줄로 생각했던 과거의 전략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영성 형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9)
제자훈련의 외적인 신앙생활만을 강조한다면 율법주의나 영적 교만을 증가시킬 뿐이고, 성경적인 제자도를 실행할 수 없다고 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을 이수했다고 반드시 영성 형성이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제자훈련 과정을 이수하고서도 진정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지식으로만 머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과 같은 더러운 것들을 자동적으로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막 7:21,22).

 

7) 에이든 토저, 강귀봉 옮김, 『경건 생활의 기초』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2), 26. 
8) 제임스 패커, 서문강 옮김, 『성령을 아는 지식』 (서울: 새순출판사, 1988), 93.
9) 달라스 윌라드, 윤종석 옮김, 『잊혀진 제자도』 (서울: 복있는 사람, 2007), 106.

 

그렇기 때문에 제자훈련 기간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지속적인 영성 형성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보내시고, 그의 사랑을 마음속에 쏟아부으셔서 참된 구원을 발견하게 하시는 복음은 내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제자훈련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내면적인 실제보다 외적인 경험에 보다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외적인 행동의 훈련과 습관으로 내면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내면을 변화시켜서 예수의 제자로서 성품이 변화되는 것이어야 한다.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갈 4:19)의 핵심은 “너희 속”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변화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영혼의 변화이다. 내면이 ‘디카이오수네’(dikaiosune), 즉 진정 선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면 행동은 자연스럽고 쉽게 따라온다. 선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제자훈련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선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 어떤 것보다도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선한 일들은 선한 마음의 열매이며 결과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에 의한 영성 형성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새로운 원리는 밖에서 안으로가 아니라 안으로부터 밖으로 근본적으로 변혁되는 것이다.
제자훈련이 내면으로부터의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훈련생들이 심령과 내면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성령께 마음을 열고 순종해야 한다(갈 2:20). 성령은 새 언약적인 사역을 통해서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시각으로 바꾸어주신다. 제자훈련은 육(인간 중심)을 따르지 말고 성령을 따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야 한다(갈 4:19, 29~31).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는 말씀대로 제자훈련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제자훈련은 병이 들고 상처 입은 영혼의 내면을 온전하게 회복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을 통한 영성 형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인 성령의 역사와 인간의 책임은 동시에 필수적이다. 내면의 깊은 변화는 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일어난다.
동시에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순종이 필수적이다. 인간의 죄의 본성인 육에 대해서는 자기 부인이 있어야 진정한 내면의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을 통한 영성 형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 위탁과 절대 순종으로 내면에 성령의 열매를 맺는 온전한 성품이 형성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의는 단순히 구약의 문자적인 법보다 더 깊은 사랑의 법임을 마음에 새겨 주셨다. 산상수훈은 율법과 대조를 이루며 돌에 새겨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10)


10) A. Edersheim, The Life and Times of Jesus the Messiah, Part 2. (Grand Rapids: Eerdmans, 1986), 529.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였다.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다”(막 16:11, 12).
믿음이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은 서로 연결된다. 믿음이 없는 것은 완악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마음은 돌보지 않고 방치하면 세상의 풍조나 가치관으로 완악해진다.
이런 점에서 제자훈련은 말씀이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는 마음으로 기경하는 훈련이어야 한다(마 13:8; 막 4:8).
생명체는 반드시 자라는 것이 정상인데,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을 듣고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막혀있는 마음의 문제이다(히 4:12). 그러므로 제자훈련의 핵심은 마음 밭을 좋은 땅으로 기경하여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며 하나님께 합한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에 있다.
내면의 변화가 중요한데도 우리가 내면을 잘 알 수 없는 첫째 이유는 사람의 영혼이 지성, 감정, 의지로 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면에는 지적, 감정적, 의지적 기능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받고 연결되어 있다. 둘째 이유는 영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이었던 내면이 타락되고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즉 내면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주인을 반역하고, 인간이 제 마음대로 살기 때문에 마음의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성경에서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하나님만이 인간의 마음을 아시며 드러내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렘 17:9, 10).
또한 로마서 1장 하반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 모든 죄의 원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죄로 인하여 마음의 질서가 파괴가 되었고, 많은 상처로 인하여 마음에 병이 들게 되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이 나아가야 할 길은 지성적으로, 감성적으로, 의지적으로 상하고 병든 마음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
진정한 제자도는 성령의 권능으로 사역하고,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내재적 관계에서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본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자훈련을 단순히 교리나 성경 지식을 전달하거나, 외형적인 규칙과 훈련과 자기 억제의 종교적 성품 등에 맞추어 만들어 나가려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적인 제자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진정한 삶의 본을 따라 우리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여 삶의 태도와 행위 면에서 예수님의 모범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제자훈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 근거한 대계명을 지키는 제자를 삼아 내면의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전인격적 영성 형성을 이루는 것이다. 영성 형성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제자의 지성, 감성, 의지, 사회성, 몸을 주관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제자의 인격에 형성한다(고후 3:18; 골 1:15).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 성령님이 지성의 주인이 되시도록 하고, 감성이 성령의 감동과 은혜로 치유되어 건강해지고, 의지가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의탁하여 온전히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사회성이 형성되고, 몸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한 행실로 거룩하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이 이 땅 위에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 이 논문은 사랑의교회 윤난영 사모의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기독교교육학 박사학위 논문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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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난영 사모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사모로 이화여대 영어교육과와 Biola University 기독교교육학(B.A.), Talbot Theological Seminary 기독교교육학(M.A.), 백석대학 전문대학원 기독교교육학(Ph. D.)을 공부했다. 번역서로 『내 영혼은 이런 대화를 원한다』(사랑플러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