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디사이플
내 인생의 교회, 사랑을 받고 전하는 곳이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시작된 교회를 향한 발걸음은 어느새 주님과 사람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득 쌓이게 된다. 동시에 교회는 지금도 예수의 제자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월간 <디사이플>에서는 창간 6주년을 맞아 ‘내 인생의 교회’라는 주제로 독자들에게서 교회와 관련된 추억을 들으며, 교회의 의미를 반추해 보았다. 그 중 세 명의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지면에 담았다.
<편집자 주>
내 인생의 교회 1 | 흑석동제일교회 김기연 목사
교회는 사람을 세우는 곳이다
‘내 인생의 교회’ 라는 제목을 보면서 상당히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지금 나는 부교역자의 입장이기에 실제적인 고민을 그리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나는 앞으로 어떤 목회를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CAL세미나 마지막 시간에 들었던 이사야 60장 22절 말씀이 자꾸만 마음에 되새겨지곤 했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를 통해 강국을 이루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청사진이라는 말씀을 듣고 굉장히 마음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전에 개척 교회 때 이사야 60장 22절 말씀대로 정말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고 싶어서 3명을 놓고 제자훈련을 했었다. 나름대로 씨름을 하고 몸부림을 쳐봤지만 솔직히 실패했다. 과정은 이수했지만 정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 하고 싶었지만 사람이 없었다. 개척 교회에 한 사람 전도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밥 먹고 밤이고 낮이고 오직 전도를 해봤지만, 전도에 한계를 많이 느꼈다. 겨우 얻은 남자 한 명으로 일대일로 양육 겸 훈련을 시작했다. 레커차 운전을 하는 사람인데 훈련을 받다가도 연락이 오면 가곤 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을 3시간 반 동안 기다린 적도 있다. 훈련을 받으러 오다가 갑자기 호출을 받고 갔기 때문이다.
솔직히 중간에 때려치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이사야 60장 22절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순종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이 사람 속에 말씀이 들어가니까 놀라운 변화를 주셨다. 난 솔직히 이 한 명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었는데, 얼마나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고 숙제를 하던지, 성경읽기 숙제를 하기 위해 밤에 레커차 일을 끝내고 성경을 읽다가 너무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밤을 꼬박 새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분의 집에 왔다가 자기의 변화된 간증, 주님을 만난 간증을 듣고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가더라는 말을 이분의 부인한테 듣고 난 정말 많이 울었다.
지금의 교회에 부목사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을 해서 서울에 올라온 지금, 많지 않은 교인만이 남은 그 교회가 건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미약하지만 조금씩 든든히 세워져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한 사람이 말씀으로 세워지니 그분을 중심으로 교역자를 도와 교회가 정말 아름답고 건강하게 자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내 인생에 있어 교회는 ‘사람을 세우는 곳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교회의 청사진을 마음에 담고 후회 없이 사람을 세우는 목회를 하고 싶다.
나는 지금 부교역자이기에 준비의 단계라 생각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준비할 것이다. 내 목회 인생을 제자훈련에 집중하고 모든 것을 걸고 싶다. 하나님이 나에게 교회를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주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고 싶다. 그리고 먼저 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
얼마 전 같은 지역에 10명의 교인이 있는 개척 교회 목사님을 만났는데 이분의 나이가 50대 중반이시다. 그런데 “난 큰 교회가 부럽지 않고 절대로 다른 교회와 비교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10명에 내 인생을 걸 것이다” 하는 그분의 말을 듣고 정말 큰 도전을 받았다.
예수님이 사람을 세우는 데 미치셨던 것처럼 나도 정말 미쳐 보고 싶다. 한 사람을 세우는 데 정말 미쳐보고 싶다. 후회 없이 미쳐보고 싶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주님,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나를 부르신 주님께서 맡겨준 일을 하다 왔습니다”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
내 인생의 교회 2 | 대구 중리교회 김경원 목사
교회는 또 하나의 소중한 가족이다
나는 강원도 태백 탄광촌에서 자랐다. 아니 실은 교회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교회는, 가족 이외에 또 하나의 의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언제쯤일까, 6살 때로 기억하는데, 서울 이태원동에 살다가 강원도 삼척시 고한읍 고한3리로 이사를 갔다.
지금은 고도가 높고 또 공기가 좋기도 해서 국가대표육상경기장이 들어서 있는 함백산의 중턱에 위치한 동네로 이사한 우리 가족은 당장 먹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사 후 3일인가 지났을 때다. 인근에 있는 교회 여전도회에서 누룽지와 국수를 가져와서 하는 말이 “교회에서 보니까 새로 이사 온 이집 굴뚝에 연기가 안 나서 먹을 것을 조금 가져왔으니 끓여서 아이들 먹이라”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어린 내 귀에도 너무나 고마웠다.
가난의 서러움과 함께 교회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로 먹었던 누룽지 생각이 난다. 우리 가족이 이사했던 곳은 탄광촌이다. 사는 것이 다들 힘든 곳에서 교회는 의지할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그 두문동 대성교회에서 주일이면 예배를 드렸고, 교회 창고에서 시커먼 무연탄 먼지와 함께한 분반공부조차도 너무나 좋았다. 교회는 어린 시절에 나의 놀이터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가정형편이 좋아져서 함백산 너머에 있는 태백으로 이사했다. 태백시(당시는 삼척군 장성읍)라고 해도 사실은 외부와 거의 단절된 산촌 고립지역이기에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하다. 시장 물가는 높고, 조그마한 일에도 쉽사리 싸움이 나고, 어린 내 귀에도 야반도주 이야기가 자주 들릴 정도로 인심이 좋지 않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우리 가족은 이사한 후에 교회를 먼저 찾았고, 그래서 장성제일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는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아무도 의지할 이 없는 강원도 산골 탄광촌에서 교회는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가끔은 학교에 가기 전에 교회에 들러서 새벽기도를 하고, 끝나면 첫차 타고 학교 가고, 학교 끝나면 교회에 들러서 기도하고 집에 오곤 했다. 교회에 들르는 것은 내 생활이었다.
토요일이면 학생회 예배가 있었는데, 예배 후에 이어지는 2부 순서로 월례회와 친교회 등의 순서가 너무 좋았다. 특별하지 않은 별것 없는 단순한 모임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접할 수 있는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사회적 교육기반이 학교 외에는 없는 산골에서 교회는 내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다. 또한 구원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하고 서로 친교하는 것 이외에 전도를 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주일 낮 예배 후에 저녁예배 전까지 오후시간에는 노방전도를 했다. 점심은 교회에서 다같이 모여서 밥을 먹고는 지역을 나누어서 지역별로 전도를 하러 간다. 노방전도라고 해서 뭐 특별한 것은 없고, 전도지를 들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도를 하면서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교회생활을 하면서 신앙이 성장해 갔고, 미래에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라는 꿈을 꾸면서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해 갔다. 교회는 나의 꿈을 키워준 곳이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면서부터 나는 고향 교회의 추억을 내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또 내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가까운 교회에 다닐 것을 권한다. 세상에 꼭 있어야 할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가족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단순한 혈연관계를 뛰어넘는 또 하나의 가족이 있는데, 그것이 교회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또 하나의 가족이고 우리네 삶이 있는 곳이다. 교회는 어릴 적 내게 좋은 놀이터였고, 성장기에는 큰 꿈을 키워준 곳이다. 장성한 지금도 교회는 내게 또 하나의 소중한 가족이다.
내 인생의 교회 3 | 수원 물댄동산교회 김현웅 목사
내 십자가로 교회를 주시다
내게 있어서 교회라는 곳은 친구 같은 곳이었다. 신앙이나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는 곳, 그래서 놀기 위해서 갔었던 곳이었다. 동네친구들이 곧 학교 친구들이었고, 그들이 주일에도 교회에서 함께 어울렸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는 한 지역에서 같은 친구들과 같은 교회를 다녔기에 내 청소년기는 친구들과 함께 지낸 시기였고, 곧 교회에서 보낸 시절이었다. 비록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전부였을 정도로 신앙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교회에서 푸근함을 느꼈고 덕분에 빗겨나는 삶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청년의 시기에는 잠시 교회를 떠나 있었다. 세상의 친구들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시간마저도 아까워하며 그렇게 나름의 자유를 만끽하며 지냈다. 그런데 문득문득 어머니와 동생들, 그전까지만 해도 교회 생활에 그리 열심내지 않았던 가족들이 은혜를 받고 교회에서 많이 봉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군대에 있을때도 교회에 대한 소식은 내 주변에서 맴돌았고, 기도에 매진하시던 어머니를 통해서, 그리고 나보다 먼저 주의 종의 길을 걷기로 소명을 받은 막내 동생을 통해서도, 교회는 내게 간간히 소식들을 전해주며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하고 나서 인생에 대해 천천히 고민할 무렵, 막막한 나에게 교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어릴 적과 같이 부담 없이 다니던 내게 주님은 큰 은혜를 부어주셔서 나와 만나주시고, 세상에서의 직업보다 주님께 헌신하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시작된 교회에서의 생활은 이전에는 몰랐던 교회의 일들을 경험케 했다.
신학을 준비한다고 교회에서 7~8년간을 먹고 자고 하면서, 사찰청년으로서 행정 간사로서 준교역자로서 여러 일들을 배워가며 또 다른 리얼한 교회의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걱정도 많이 했다.
남들은 먼저 신학교에 들어가서 실제 사역을 통해 빨리 경험도 쌓고 전문적으로 준비되어 가는데, 나는 청소하고 교회 문을 열고 닫으며 시간에 쫓겨가며 신대원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너무 오래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교역자가 아니면서도 교역자들의 불필요한 모습들까지 보게 되었고, 남들 출퇴근할 시간에 교회에 남아 뒷정리도 하고, 또 새벽에는 성도를 맞을 준비도 하면서 참 많은 시간을 교회 안에서 보내게 되었다. 청년시절에 잠깐 떠났던 그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제는 주님께 교회라는 곳이 어떤 의미인지,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해 가르치고 설교하면서 주님께로 인도해야하는 교역자의 길을 걷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알다가도 모를 곳이 교회이며,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좋은 모습의 교회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추억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교회의 한 지체로 섬기고 더 나은 교회의 모습을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게 된다.
교회가 나와는 아무 연관이 없었던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교회의 한 부분으로 자라고 있음을 깨닫는다. 잘 짜여진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는 못했기에, 너무도 문제가 많은 교회들을 보아왔지만, 또한 이런 교회의 모습이 살갑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교회를 섬겨야 하고,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거룩하고도 무거운 부담감이 가시지 않는다.
자격은 없고 아직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는 내 십자가로 교회를 주신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서,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