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은동 목사 _ 달라스 성광교회
특집 - 옥한흠 목사 설교 분석 논문
A Rhetorical Analysis of the Use of a Main Idea in the Preaching of John Han Heum Oak
김은동 목사는 영남대학교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졸업을 졸업했다. 이후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에서 로이드 존스 목사와 빌 하이벨스 목사의 전도설교 비교연구로 신학석사(Th.M.)학위를 받았다. 이후 같은 학교에서 <옥한흠 목사의 설교에서 중심 사상이 어떻게 사용되어지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목회학박사학위(D.Min.)를 받았다. 현재 달라스 성광교회(www.dallassk.org) 담임목사로 시무중이다.
한국 교회 대표적인 명설교가로 손꼽히는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 그의 설교는 본문에 충실하면서도 청중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 진심어린 설교로 평가받으며, 지금까지 한국 교회 안에서 사랑받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옥한흠 목사의 설교는 강해설교, 전도설교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분석되고 있는데, 최근 옥한흠 목사의 설교를 다룬 논문이 국외에서도 나와 눈길을 모은다. 달라스 성광교회 김은동 목사가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옥한흠 목사의 설교에서 중심 사상이 어떻게 사용되어지고 있는가?>(A Rhetorical Analysis of the Use of a Main Idea in the Preaching of John Han Heum Oak)라는 주제로 목회학박사(D.Min.)학위를 받은 것이다. <디사이플>에서는 그 중 일부를 발췌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1. 서 론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설교를 많이 듣는데 비해 그들의 삶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곤 한다. 우리나라 성도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의 설교를 듣고 있다. 설교의 목적이 예수의 복음으로 사람들을 변화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것임을 생각해 보면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유들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목회자가 좀 더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목회자가 더 기도해서 영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목회자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경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청중들이 말씀에 대한 관심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시들해져서 설교를 들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진단들은 틀리지 않다.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진단들이 틀리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목회자가 기도를 더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목회자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지만, 이것도 말하기 나름이다. 정확한 해석, 바른 해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을 달리할 수 있다. 확실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 청중들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청중들은 이전보다 세속화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과 귀가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분명 청중들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상황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설교를 많이 들어도 잘 변하지 않는 청중들의 모습을 보면서 목회자들은 어떤 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인가? 쉽지 않은 숙제이다. 한 가지로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고 설교를 통하여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의 한 사람이었던 마틴 로이드 존스의 주장대로 기독 교회사에서 설교가 교회 생활의 가장 중추적이고 우선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와 설교』, 13p)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해결책 즉 기도, 성경 해석 같은 것은 목회자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와 재능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면, 설교를 통하여 청중들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을 제시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중심 사상(a main idea)을 가진 설교이다.
2. 중심 사상이 있는 설교의 중요성
중심 사상을 가진 설교가 왜 청중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데 효과적일 수 있는가? 중심 사상을 가진 설교의 가장 큰 특징은 청중들로 하여금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듣지 않고, 중심이 되는 사상 하나만 듣기 때문에 이해하고 기억하기 쉽다는 것이다. 설교가 분명하게 들리지 않고 기억되지 못하면 청중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어렵다. 설교가 존 스토트는 설교를 듣는 청중들이 설교의 세부 사항을 다 기억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John Stott, I believe in Preaching, 225p). 한 설교에 한 가지 중심 사상을 전해야 효과적으로 청중들의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존 스토트뿐 아니라, 역사 가운데 많은 설교자들이 외친 주장이기도 하다.
로엘 L. 호위는 설교자가 많은 사상을 한꺼번에 전달하고자 시도하면 청중은 설교자가 그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하나의 중심 사상을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Reuel L. Howe, Partners in Preaching: Clergy and Laity in Dialogu, New York: Seabury, 1967, 26-27p). 그래디 데이비스는 좋은 설교는 하나의 중심 사상이 구체화되고, 발전되고 그리고 완전히 진술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의 중심 사상을 가진 설교가 청중들의 삶에 강한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Henry Grady Davis, Design for Preaching. Philadelphia: Muhlenberg, 1958, 20-21p)
중심 사상의 설교가 이렇게 끊임없이 주장되어 온 가운데 현대에 와서 해돈 로빈슨에 의하여 중심 사상 설교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해돈 로빈슨은 ‘중심 사상의 아버지’(the father of big idea preaching)라 불릴 정도로 중심 사상에 대하여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Keith Willhite and Scott M. Gibson, eds., The Big idea of Biblical Preaching,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8, 22p). 그는 설교의 중심 사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산탄(buckshot)과 총탄(bullet)을 가지고 설명한다. “설교는 산탄이 아니라, 총탄이 되어야 한다. 각 설교는 다른 사상들의 뒷받침을 받는 하나의 중심 사상에 대한 설명, 해석 또는 적용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상들은 성경의 하나 혹은 여러 구절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Haddon W. Robinson, Biblical Preaching: The Development and Delivery of Expository Messages. Grand Rapids: Baker Book, 1980, 35p).
해돈 로빈슨은 설교에서 중심 사상은 주제(subject)와 보어(complement)로 구성된다고 가르친다. 주제는 그 자체로 역할을 하지 않고, 반드시 보어를 필요로 하며 보어는 주제를 도와 의미를 완성한다. 중심 사상을 이루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설교에는 반드시 주제와 보어의 조합이 필요하다. 주제와 보어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로빈슨은 시편 117편을 가지고 설명한다.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지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이 시편 117편의 주제는 찬양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찬양이라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라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금방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로빈슨은 이 시편의 주제는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이 시편은 두 가지 보어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그의 사랑이 크기 때문에, 또 하나는 그의 진실함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보어를 하나로 묶은 중심 사상은 다음과 같다: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그의 사랑이 크기 때문이고, 둘째 그의 진실함이 영원하기 때문이다(Haddon Robinson, Biblical Preaching, 43p).
3. 옥한흠 목사 설교의 영향력
옥한흠 목사의 설교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교회 안에서 이의가 없다. 하나님은 옥한흠 목사를 통하여 그가 목회한 사랑의교회뿐 아니라, 한국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게 하셨다. 2004년에 <기독교 사상>에서는 한국에서 성공한 목사 16인 중의 한 사람으로 옥한흠 목사를 선정하였고, 2005년에 한국조직신학회에서는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9명의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선정하고 그의 설교를 평가하였다. 이 밖에도 한국 교회 안에서 많은 사람과 기관들이 옥한흠 목사의 설교가 한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평가들은 옥한흠 목사가 한국 사회에 설교자로서 큰 영향력을 끼쳐 온 것을 보여 주는 객관적인 증거들이다.
그럼 그의 설교가 사람들의 삶에 영향력을 끼친 이유가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인격을 이야기하고, 그의 영성을 이야기하고 그의 신학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 외에 또 한 가지를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그의 설교에 중심 사상이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설교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변화를 주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의 설교에 중심 사상이 분명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옥한흠 목사는 한 편의 설교에서 많은 사상을 전달하려고 하지 않고, 한 가지 중심 사상을 전달하려고 한다. 그의 설교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존재하지 않고, 한 가지 분명한 목적이 존재한다. 그의 설교 속에 중심 사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발견한다면 그의 설교가 청중들의 삶에 분명하게 전달되어 그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 옥한흠 목사의 설교에서 중심 사상의 사용
한 편의 설교에서 중심 사상은 설교의 각 부분에서 일정한 패턴으로 사용된다. 한 군데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의 전 영역에서 중심 사상이 배어 있다. 옥한흠 목사의 설교에서 중심 사상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설교의 각 부분 즉 제목, 서론, 본론, 결론을 통하여 살펴본다.
1) 제목에서의 중심 사상
브라운은 설교의 제목이 중심 사상과 연결이 되어 있을 때 청중은 설교를 명쾌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H.C. Brown, H. Gordon Clinard, and Jessie J. Northcut. Steps to the Sermon: A Plan for Sermon Preparation. Nashville: Broadman Press, 1963, 114p). 설교의 제목 역시 중심 사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브라운이 지적한 것이다. 옥한흠 목사의 설교에서 중심 사상이 제목에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옥 목사의 설교에서 어떤 식으로 중심 사상이 제목에 표현되는지를 살펴보자.
제목에서 중심 사상이 발견되는 설교의 좋은 예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설교이다. 이 설교는 이사야 41:8-16절을 본문으로 한 것으로, 주제(subject)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 주제에 대한 보어는 ‘첫째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한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둘째 자신의 믿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셋째 함께 하심의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에’이다. 이 설교의 목적은 청중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은 설교의 중심 사상과 연관이 있는 제목임을 알 수 있다.
설교 제목에서 중심 사상이 보이는 또 다른 설교는 “주 안에서의 기쁨”이다. 이 설교의 주제는 ‘신자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 주제에 대한 보어는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셋째 자기 형편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넷째 소중한 예수님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이다.
이 주제와 보어를 이해하게 될 때 “주 안에서의 기쁨”이라는 제목은 중심 사상을 연상케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옥 목사는 그의 설교의 제목까지도 설교의 중심 사상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모든 설교의 제목이 모두 중심 사상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그의 많은 설교에서 제목과 중심 사상이 연관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2) 서론에서 중심 사상
데이비스는 설교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서론에서 중심 사상이 소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Henry Grady Davis, Design for Preaching,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58, 187p) 분명한 중심 사상을 가진 옥 목사의 설교 속에서 서론 역시 중심 사상이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옥 목사는 그의 설교의 서론에서 중심 사상의 한 부분인 주제를 도입함으로, 청중들로 하여금 설교에 흥미를 갖게 하여 설교에 계속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도우신다”는 제목의 설교는 서론에서 주제가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서론에서 주제를 명확하게 언급한 후에, 본론에서 보어를 통하여 설교의 중심 사상을 완전하게 드러낸다. 이 설교의 주제는 ‘환란 날에 하나님은 어떤 자를 도우시는가’이다. 그는 유다의 왕인 히스기야가 가진 문제를 서론에서 소개한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가진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 청중을 향한다. 청중들은 서론을 통하여 이 설교를 잘 들을 때, 성경을 통하여 그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어떤 식으로 중심 사상이 서론에서 표현되는지 이 설교의 서론 한 부분을 들어 보자.
“신앙생활을 잘 해도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위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나라, 지도자 때문에 가정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예외가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전해 줍니다. 예수 잘 믿어도 곤고한 날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그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는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 하는데, 생각지 않던 일이 터져서 어려운 일이 생긴 경험이 없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하면 주님의 뜻대로 살기만 하면 환란에서 건져 주실 것이라고 믿었는데 어려운 일이 터졌다면, 마음속에 어떤 불만이 생기지 않습니까? 히스기야를 주목하십시오. 히스기야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세 가지를 통하여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서론에서 중심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설교는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다. 이 설교의 서론에서 옥 목사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역사의 중심임을 설명하며 신자들은 십자가의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고 전한다. 그는 서론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신자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제시한다. 이 주제를 통하여 그는 청중들이 설교를 들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십자가에 죽으신 어린 양 그리스도는 구원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양이라는 단어가 27번이나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예수님의 존재는 계시록 전체를 받들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우리 신앙의 중심입니다.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바로 깨달을 때 주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체험할 때 주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주목하세요. 공부하세요. 그럴 때에 예수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채명이라고 하는 분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모든 것이 십자가로 통한다. 어떤 길도 십자가의 길이 아니면 되돌아와야 한다. 십자가가 아니면 맛을 잃는다. 십자가의 터널을 지나 십자가의 터널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우리의 하루하루도 십자가에서 시작하여 십자가로 마쳐야 한다.’ 이제 우리가 십자가를 우리 신앙의 중심으로 인정하고, 십자가의 주님을 항상 주목하고 바라보고 따르려고 하면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옥 목사는 서론에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설교의 목적을 밝히고, 그 목적을 좇아서 설교를 발전시킨다. 그의 서론에서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 서론에서 그는 그가 전할 설교의 주제만을 언급함으로 청중들로 하여금 설교에 기대감을 갖게 하고 설교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3) 본론에서 중심 사상의 사용
(1)보어를 통하여
본론은 하나의 완전한 중심 사상을 만들기 위하여 서론에서 제기된 주제에 대한 보어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청중들은 본론을 들은 후에야 설교의 중심 사상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옥 목사는 서론에서 주제를 제기한 후에 본론에서 보어를 통하여 하나의 중심 사상을 완전하게 만들어 청중을 설득한다. 그의 설교 ‘최고의 인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 서론에서 제기한 주제를 본론에서 보어를 통하여 하나의 중심 사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설교이다.
이 설교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이다. 옥 목사는 서론에서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바울의 관심사를 부각시킨다. 그는 바울의 관심사를 드러낸 후에 본론에서 중심 사상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하여 두 개의 보어를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 옥 목사는 이런 식으로 보어를 통하여 자신이 서론에서 제기한 주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설교의 목적이기도 한 주제는 본론에서 보어를 통하여 그 방향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2)예화를 통하여
옥 목사는 본론에서 설교의 중심 사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예화를 적절하게 사용한다. 옥 목사는 설교에서 예화를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제시한 중심 사상을 드러내는 보어를 더 명확하고 쉽게 드러내기 위하여 예화를 적절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보어를 명쾌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예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그의 설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에서 볼 수 있다.
이 설교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가’이다. 옥 목사는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신 다윗 왕을 통하여 설교를 전개해 나간다. 서론에서 주제를 언급하고 난 후, 본론에서 세 개의 보어를 발전시킨다. 세 번째 보어로 ‘헌신의 목표를 세우라’를 제시하면서 예화를 사용한다. 헌신의 목표를 세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남가주 사랑의교회 이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저는 평소 우리 교회만큼 좋은 교회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도전받는 일들이 많습니다. 좋은 교회들이 많습니다. 남가주 사랑의교회는 자매 교회입니다. 똑같은 제자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남가주 사랑의교회는 14년이 된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그 교회는 가장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어른이 3,500명입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특별헌금을 했습니다. 이민 2세들을 믿음으로 키울 교육 센터를 세울 목적으로 헌금을 했습니다. 예산을 700만 불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로 헌금이 1,000만 불보다 더 나왔습니다. … 그 교회는 3년 전에 1,000만 불을 들여서 교회를 지었습니다. 불과 3년도 안되었는데, 교인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 모든 교인들이 배운 것을 실천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옥 목사는 이 예화를 통해 그리스도께 헌신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목표를 세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알려 준다. 예화를 제시함으로 더욱 분명하게 그가 제시하는 보어가 청중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한 것이다.
또 다른 설교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서 예화를 통하여 보어를 더욱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설교의 서론에서 제시되는 주제는 ‘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의 말씀이 능력의 사건이 되지 못하는가’이다. 그는 성경 본문을 통하여 유다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황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로 있을지라도 그들과 함께 하실 것임을 약속하신다. 이것을 설명한 후에 그는 청중을 향하여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 능력 있게 경험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는 본론에서 세 가지 보어를 통하여 주제를 보완하며 중심 사상을 완전하게 만든다.
옥 목사는 두 번째 보어에서 예화를 통하여 자신이 제시하는 보어를 더욱 분명히 한다. 그는 본론에서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라고 두 번째 보어를 제시한 후 빌리 그래함의 친한 친구였고, 한때는 유명하고 효과적인 전도자였지만, 한 장의 사진을 본 후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렸던 찰스 템플턴에 관한 이야기를 예화로 했다. 이 예화를 통하여 옥 목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약속이 강한 능력으로 경험되어지기 위해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청중들에게 권면한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1950년대에 처음으로 전도 활동을 할 때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그에게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전도할 때도 같이 하고 유럽으로도 같이 갔습니다. 그는 찰스 템플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템플턴이 더 유능하다고 했습니다. 그가 개척을 했습니다. 순식간에 1,200석이 찼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이 사람이 믿음이 없다면 누가 믿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템플턴이 사진 한 장 때문에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어떤 여인이 자기 아이를 안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원망하는 눈초리, 품에 있는 아이는 굶어 죽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그는 의심을 가졌습니다. 비를 주지 않는 하나님, 인자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원망스러운 여인을 그냥 두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돌아섰습니다.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템플턴은 불가지론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절박한 상황에서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때, 우리의 믿음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어야 합니다.”
이 예화는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믿음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이유를 제공한다. 예화 없이 믿음의 문제를 이야기할지라도 청중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할 수 있겠지만, 실제 믿음에서 떨어진 한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줌으로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믿음에 경종을 울리는 기회를 주는 효과가 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예화를 흥밋거리나 아니면 청중으로 하여금 잠시 편안한 시간을 주는 기회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보어를 더욱 강화하고 명쾌하게 함으로 하나의 중심 사상이 더욱 효과적으로 청중들에게 느껴지도록 돕는다.
(3) 설명을 통하여
만약에 설교자가 주제를 지지하기 위하여 보어를 제시한다면 그는 보어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옥 목사는 그의 설교의 본론에서 보어를 명확하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설명을 적실하게 하고 있다. 그의 설교 “불안은 극복할 수 있다”에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서론에서 언급한다. 그리고 본론에서 이 주제에 대한 세 번째 보어로 ‘우리는 완전한 순종을 해야 한다’라는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는 이 보어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으로부터 평안을 소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은 그의 전부였고 그의 삶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는 것이 예수님의 확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편에 설 때에 하나님은 나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확신으로 예수님은 평강 가운데 그의 삶을 사셨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불안해집니다. 우리가 불안해한다면 우리는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 없습니다. …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가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옥 목사는 청중들에게 불안이 아닌 평안을 소유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가진 평안을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떻게 평안을 가지게 되셨는지를 설명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평안을 소유하게 됨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청중으로 하여금 ‘우리는 완전한 순종을 해야 한다’는 보어의 의미를 잘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또 하나의 설교를 더 보자. 그의 설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에서 보어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설교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가’이다. 그는 본론에서 이 주제에 관하여 세 가지 보어를 발전시킨다. 첫 번째 보어는 변화의 목표를 세우라는 것이다. 옥 목사는 청중들에게 그 보어로 제시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변화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
“첫째, 변화의 목표를 세우십시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믿은 이후로 변화되지 못하는 몇 가지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비록 믿음이 약하여도 그 속에서 성령님이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의 목소리에 매우 민감합니다. 믿음의 양심이 그들 속에서 작동합니다. 그들은 ‘나는 이것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것을 바꿔야 한다. 만약에 이것을 바꾸지 않으면 나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생각은 성령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변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는 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하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변화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변화에 대한 설명 없이 청중들은 옥 목사가 제시하는 보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변화에 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임으로서 청중들로 하여금 변화로 나아가도록 설득하고 있다. 변화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통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변화의 목표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다.
(4) 적용을 통하여
해돈 로빈슨은 설교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성경의 진리를 삶으로 연결시켜야 하며 가장 효과적인 설교는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Robinson, Biblical Preaching, 36p). 옥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적용을 적절히 사용하여 중심 사상을 삶으로 연결하도록 요구한다. 그래서 그의 적용점은 그가 제시한 보어를 청중들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의 설교 ‘주 안에서의 기쁨’은 보어를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설교의 주제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네 가지 조건이다. 옥 목사는 바울이 감옥에서 기뻐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의 청중들로 하여금 바울의 기쁨에 주목하게 한다. 그는 주제를 제시한 후 네 가지 보어를 발전시킨다. 첫 번째 보어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이다. 그는 본론에서 보어를 설명한 후, 왜 바울이 기뻐하는지를 로마서 5장 5절을 가지고 설명한다. 설명 후에 그는 질문을 던져 청중들에게 구체적인 적용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가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아들을 포기할 정도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이 폭포수와 같이 우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슬플 때 조용히 하나님의 사랑받고 있는가를 묵상해 보세요. 마음이 아플 때, 묵상해 보세요. 우리도 바울처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기쁨을 자아냅니다. 창조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면 기쁨이 옵니다.”
또 다른 설교를 보자. 그의 설교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에서 옥 목사는 효과적으로 청중들에게 보어를 행동으로 옮기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 설교의 주제는 “십자가의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서론에서 이 주제를 언급한 후, 그는 보어들을 가지고 중심 사상을 완성하고 있다. 첫 번째 보어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를 제시한 후에 그는 이렇게 적용하고 있다.
“믿어야 합니다. 안 믿어집니까? 무릎을 꿇으세요. 많이 배웠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고, 나의 영안을 열어서 골고다의 예수를 보게 합니다. 그때 나도 모르게 믿어집니다. 무릎을 꿇고 주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기도하실 때 이렇게 해야 합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 은혜를 베푸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해 주세요.’하나님은 그를 믿을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는 체하지 마십시오.”
옥 목사는 청중들에게 강력한 권면으로 보어를 적용하고 있다. 그는 만약에 그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삶은 실패할 것이라고 청중들에게 보어를 확신 있게 제시하고 있다.
4) 결론에서의 중심 사상
옥 목사는 결론을 통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설교에 제시된 중심 사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기억하도록 한다. 그는 결론에서 전체 설교를 요약하고, 그의 청중들에게 중심 사상을 재확인해 준다. “탐욕을 조심하라”는 그의 설교에서 이런 결론의 패턴을 볼 수 있다. 이 설교의 서론에서 그는 ‘왜 우리가 탐욕을 조심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제시한다. 본론에서 보어로 세 가지를 설명한다. 첫째 탐욕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둘째 탐욕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셋째 탐욕은 악한 자들의 충동에 넘어가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는 결론에서 이것을 다시 재반복한다. “오늘 세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첫째로 은혜를 망각하고 욕심내는 것은 탐욕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욕심내는 것은 탐욕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소리에 충동되어 욕심을 내는 것은 탐욕입니다.”
중심 사상을 결론에 다시 반복함으로 설교를 마무리하는 설교의 또 다른 예는 “불안은 극복할 수 있다”이다. 이 설교에서 그는 서론과 본론에서 중심 사상을 밝힌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소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고, 전적으로 순종해야 하고, 그리고 헌신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서론과 본론을 마친 후, 그는 결론에서 다시 중심 사상을 반복해서 말한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평안에는 세 가지 조건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같이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세요. 하나님이 아버지로 느껴질 때까지 말씀을 묵상하세요. 그러면 평안이 내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순종하세요. 이 평안이 내 것이 됩니다. 간절히 기도하세요. 자주 기도하세요. 그러면 이 평안이 내 안에 머물 것입니다.”
옥 목사의 설교의 결론은 비교적으로 짧지만 그러나 명쾌하다. 그는 결론에서 중심 사상을 다시 반복함으로 청중들이 삶 속에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다. 중심 사상을 오래 기억하여 청중들의 삶이 변화도록 이끌고 있다.
5. 결론
설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불러내시고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의 하나이다. 목회자에게 설교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사역 중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현실의 목회에서 설교가 그 강력한 영향력을 드러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설교를 좀 더 능력 있고 효과적이 되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설교에 중심 사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중심 사상이 있는 설교는 청중으로 하여금 분명하게 이해하게 하고, 기억하게 함으로 삶에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중심 사상이 분명한 설교가 청중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것은 옥한흠 목사의 설교 속에서 드러난다.
옥한흠 목사의 설교에 중심 사상이 분명하다는 것은 그의 설교의 각 부분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 제목에 설교의 중심 사상이 들어 있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사상이 제목에 들어 있다. 또한 서론에서 그는 중심 사상을 구성하는 주제를 제기함으로 설교의 방향을 하나로 만든다. 본론에서 그는 서론에서 제기한 주제에 대한 보어를 구성함으로 중심 사상을 완전하게 만든다. 그리고 보어를 명쾌하게 하기 위하여 설명을 적실하게 하고, 예화를 사용하며 적용을 구체적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 옥 목사는 중심 사상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 번 진술함으로 청중들이 서론과 본론에서 들은 중심 사상을 다시 정리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그의 설교는 서론에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 중심 사상을 가지고 설교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청중들이 무엇을 듣는지 분명하게 이해하며, 이해한 것을 기억하여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다. 기억된 말씀은 일상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설교는 사람이 전달하여 사람이 듣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전달하는가에 따라서 그 영향과 능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교를 좀 더 효과적으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중들에게 들리는 설교가 필요하며 그런 설교를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전달하기보다는 한 가지를 담아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전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설교자가 많은 것을 전달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한 가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청중들에게 이렇게 목적이 분명한, 한 가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설교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어 청중들의 삶을 흔들어 놓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