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14년 03월

복음의 순전한 기쁨을 회복하는 제자훈련

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국제제자훈련원

얼마 전 편지가 왔다.
“더 이상 인간적으로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신앙으로 산다고 하지만 되는 일이 없고, 환경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이런 고통이나 질문에 대해서 목회자는, 교회는 어떤 말을 할 수 있는가? 기독교가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대답을 다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기독교는 신자들에게 살아갈 힘을 줘야 하고 또한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복음의 순전한 기쁨’에서 이 고단한 인생을 살아갈 힘을 발견할 수 있으며, 제자훈련이야말로 이 힘의 원천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 사회는 개인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상처가 많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것도 개인적인 상처의 시위라고 할 수 있고, 문화가 점점 더 세속화되면서 반기독교가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은 것 또한 일종의 문화적인 상처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회에는 분노가 일상화돼 있다. 이런 상처를 치유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오는 진정한 영적 치유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인이나 교회가 복음의 기쁨을 누릴 것인가? 어떻게 세속에 찌들고 허약해진 심령의 체질을 영적 강골로 바꿀 수 있는가? 바로 제자훈련을 통해서 할 수 있다. 제자훈련을 통해서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말씀으로 기경(起耕)하여 옥토로 바꾸는 것이다. 길가는 천국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밭이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는 밭이다. 길가의 마음 밭은 불신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 중에서도 적지 않다. 여기에 대해서 유진 피터슨은 “성경을 읽지만 신문의 스포츠면이나 구인광고를 읽는 방식으로 읽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말씀의 씨앗이 깊이 뿌려질 리가 없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화된 삶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 이래로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 밭을 길가로 만드는 일을 쉬지 않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짓밟고 지나가는 세속의 발자국으로 사람들의 마음 밭은 돌처럼 굳어진 길가가 되고 있다. 이것을 갈아엎어 옥토로 만드는 일은 예수님처럼 집중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제자훈련을 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제자훈련을 통해서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이 기경돼 옥토가 될 때 무엇보다 풍성한 열매가 맺힌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맺히는 전천후 열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복음의 기쁨이 있다. 환경은 여전할 수 있지만, 복음의 기쁨 때문에 우리의 체질이 바뀌는 것이다. 삶의 체질을 바꾸는 것, 이것이 제자훈련의 역할이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 이는 일평생 누구보다도 불같은 환경 속에서도 한결같이 복음의 기쁨을 누렸던 바울 사도의 가슴 뜨거운 고백이다. 이처럼 제자훈련은 우리 속에서 복음의 순전한 기쁨을 회복하는 통로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편지 속에 나타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상황은 물론이요, 이 사회의 집단적 상처를 치유하고 돌파할 전투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8월이면 교황이 방한한다는 뉴스를 듣고, 어쩌면 힐링에 굶주린 이 사회가 요동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씀으로 무장된 의식 있는 많은 목회자들은 이 일로 인해 관용의 미명하에 세상적 가치관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이 범람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진리에 적대적인 세상 속에서 고단한 삶을 건너는 신자들이 어떻게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세속의 공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복음의 순전한 기쁨을 누리는 제자훈련의 능력과 은혜가 해답이다! 이것이 힘들어도 어떻게 하든지 제자훈련을 사명처럼 교인들 속에 뿌리내려야 할 분명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