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08년 10월

비전 백년을 위한 인재 양성

발행인칼럼 오정현 목사 _ 사랑의교회 담임

사람을 키우는 것이 교회의 숙명인 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유진 피터슨은 이것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은 사역의 9할을 열두 명의 유대인에게 집중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모든 미국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몇 사람을 제대로 훈련시킨 것이 바로 모든 미국인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피터슨의 말은 씹을수록 맛이 나고, 제자훈련의 핵심을 드러내는 명문이다. 이런 뜻이다. 목회자가 지방의 소도시에서 이름 없는 몇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시키는 것이 바로 그 지역을 넘어 국가를 초월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외국 땅의 어떤 민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독특한 인재관이 담겨 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컨설팅으로 유명한 맥킨지가 <인재 전쟁>이라는 리포트를 낸 적이 있다. 27개 초일류 기업과의 5년에 걸친 공동 연구와 2백 개 기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밀레니엄 시대에 국가와 기업의 승패는 인재 확보에 달려있으며, 그에 따른 승자 독식과 패자 몰락의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무서운 보고서였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처럼 세계 경제의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도 인재 양성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심에 한국 교회가 서 있었다. 1907년의 평양대부흥 전후로 800개의 학교가 세워졌다. 배재고나 이화여고 같은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고등학교가 30여 개에 달하는데 이중 절대다수가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들 학교는 개화기와 일제 식민지의 암흑기, 6·25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인재 양성을 통해 민족을 살리는 데 앞장섰다. 예를 들면, 남강 이승훈 장로가 세웠던 오산학교에서는 고당 조만식, 단재 신채호의 가르침 속에서 주기철 목사, 함석헌 선생, 이중섭 화가 등이 배출되었다.
얼마 전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조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신학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인사들이 참석하여 남북통일과 국민통합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학적으로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문제에 마음을 같이 하였다. 즉, 한국 교회가 다시 부흥의 길로 들어서고 다시 이 민족의 견인차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의 사라진 야성과 전투력을 회복하고, 한국 교회의 자원과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인재 양성이 가장 필요한 최우선 과제임을 확인하였다.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21세기에 교회의 인재 양성은 개인과 지역을 넘어 대담한 네트워킹을 통해서 보다 집중적이고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추구하는 인재 양성은 세상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세상은 소수의 엘리트를 목표로 하는데 반해, 교회는 각 분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일꾼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세상은 특정 지식이나 능력을 소유한 유능한 사람을 찾지만, 교회는 기독교적인 영성과 성품을 가지고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비전을 실천할 사람을 찾는다. 세상은 이 땅에서의 성공을 주장하지만, 교회는 새하늘과 새땅의 가치를 이 땅에서 열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각개전투를 지양하고 통전적인 시각으로 100년 비전의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RND센터를 세울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서 동아시아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고, 위협적인 모슬렘의 확산을 대비하며, 한국 통일을 위한 제반 프로젝트를 선제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인재 양성은 유년기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세상 지식은 벼락치기로 확보될 수 있을지 모르나 성품은 어릴 때부터 뿌리를 내려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신앙의 자양분을 무한대로 빨아들일 수 있는 어릴 때부터 기독교의 가치관으로 교육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물론 이들은 소위 제도권적인 온실 속에서만 키워져서는 안 된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을 보라. 대개는 광야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모세, 다윗, 다니엘, 바울 등이 그러하였다. 온실 속의 인삼(人蔘)과 같은 생명력으로는, 갈수록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세상을 추종하는 세속주의의 질풍을 거스르고 역전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 교회는 20세기 초에 교회가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에 불을 지피고, 민족중흥의 발판을 마련한 것처럼, 다시 비전 100년을 위한 인재 양성에 눈을 떠서 하늘의 이슬과 풍상을 겪은 영적 야성을 가진 산삼(山蔘)과 같은 인물들을 기르는 데 모든 화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네트워킹을 통해서 키우는 인재는 더 이상 한 지역이나 교회에만 속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라면 전방위적으로, 범지구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