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06년 12월

제자훈련 안에 은혜와 진리를 담아라

발행인칼럼 김명호 목사_국제제자훈련원 대표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누구나 이때쯤은 한 해 동안의 사역을 평가하며 새해를 계획하는 시간을 갖는다. 제자훈련을 담당하는 사역자들은 한 해 동안 이끌어 왔던 사역을 접으면서 이런저런 기준을 가지고 평가를 한다. 훈련생 한 사람 한 사람과 맺어진 귀한 관계로 인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훈련생들을 좀더 잘 도울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상담학자인 헨리 클라우드(Henry Cloud) 박사는 우리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성숙해 가는 데에는 ‘은혜’와 ‘진리’, 이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제자훈련에서도 이 두 요소가 우리의 영적 성장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제자훈련을 살펴보면, 그 사역의 성패를 평가할 수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다(요 1:14). 은혜는 하나님께서 아무런 자격도 공로도 없는 사람들에게 거저 주시는 특권이다. 반면, 진리는 믿는 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를 구별하도록 돕는 확실한 경계선이다. 클라우드는 은혜가 하나님의 성품의 관계적 측면이라면, 진리는 하나님 성품의 구조적인 측면이라고 정의했다. 
제자훈련은 이 두 요소가 함께 있을 때 성공할 수 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절름발이 훈련이 되고 만다. 마치 부모가 각자 역할을 나눠 아이를 키우듯 은혜와 진리는 각기 다른 역할을 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 진리는 아버지와 같고, 은혜는 어머니와 같다. 진리는 말씀 앞에서 잘잘못을 드러낸다. 반면에 은혜는 우리가 부족해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납되고 인정받도록 만든다.
제자훈련을 하면서 은혜가 없는 진리를 경험하기도 한다. 은혜 없는 진리는 심판이다. 소위 율법주의에 빠진 제자훈련을 하게 된다. 이런 제자훈련을 하는 지도자는 훈련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여러분이 주어진 암송숙제를 잘 감당하고 매일 큐티를 해오고 바르게 살아간다면, 저는 여러분을 사랑할 것입니다.” 이런 형태의 제자훈련은 마치 유격훈련과 같다. 결국은 죄책감만 더하고 숙제에 허덕이다가 상처만 받고 포기하게 된다. 은혜 없이 진리만으로 이루어지는 제자훈련은 치명적이다.
반면, 진리가 없는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다. 진리 없는 은혜의 열매는 방종이다. 심지어 제자훈련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 변명만 늘어놓고, 변화되지 않는 것은 진리 없는 은혜 때문이다. 제자훈련을 인도하다 보면, 늘 엄살에 죽는 소리만 하는 훈련생들이 있다. 이들의 요구에 밀려 훈련의 기준이 무너지면, 그저 웃고 즐기다가 1년을 보낼 수 있다.
대개 남성 교역자들이 이끄는 제자훈련은 융통성도 있고 느슨한 편이다. 여성 교역자들이 인도하는 제자훈련은 깐깐하기가 그지없다. 그래서 남성 교역자가 인도하는 제자반에 들어가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제자훈련이 인기는 있을지 몰라도 1년이란 귀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탁월한 지도자는 은혜와 진리를 함께 경험하도록 제자훈련을 이끈다. 아버지의 리더십과 어머니의 리더십을 함께 구사한다. 제자훈련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같은 다정다감함을 보여주며, 은혜에 흠뻑 빠지도록 제자반을 이끈다.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코치와 같이 장점을 극대화하게 된다. 엄격하지만 사랑을 가지고 자녀를 돌보는 아버지의 리더십으로 변화한 것이다.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제자훈련을 마칠 때 지도자는 다시 어머니의 리더십을 구사하게 된다.
이런 지도자 밑에서 훈련받는 훈련생은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통해 건강한 자아상이 확립된다. 올 한 해의 제자훈련 사역을 마감하면서 나는 정말 은혜와 진리를 겸비한 지도자였는지 되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