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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국제제자훈련원 원장_ 오정현
모두가 부흥을 기대한다. 아니, 부흥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부흥이 아니라면 지금 한국 교회를 가로막고 있는 태산 같은 장애물을 무엇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적당한 신앙과 적당한 믿음, 적당한 예배로는 마귀가 틀어쥐고 있는 무신론적 문화, 반기독교적 정서, 물신(物神)의 고삐에 매여 있는 세속주의,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속삭이는 쾌락주의의 거대한 쓰나미를 이겨 낼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스멀스멀 시작된 “더 이상 한국 교회는 안 된다”, “앞으로 부정적인 상황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라는 패배 의식을 깨뜨리려면 지금은 ‘적당함’으로 코팅된 정면 돌파가 아니라, 은혜의 무한 격파가 필요한 때이다.
‘인무원려난성대업’(人無遠慮難成大業). 이는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에 사형당하기 직전에 남긴 글이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벼락처럼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문화재 지정 보물이기도 하다.
이 글은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인데, 사람이 설레지 않고 기대하지 않거나 꿈꾸지 않으면 일을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안중근 의사는 이제 곧 다가올 죽음을 예감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운명이 다가올 때 그것을 직감하는 영적인 감각이 있지 않은가! 임박한 죽음을 앞두면 인간은 대개 자신을 추스르고 정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는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조국을 사모하며 조국의 미래에 대한 꿈을 꿨고, 그 꿈을 민족에게 심기 위해 분초(分秒)의 생명을 남김없이 쏟았다.
지금 한국 교회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 위해서는 코로나 이후 위축된 신앙생활에서 다시 회복되는 것은 물론, 가슴에 부흥의 불길이 타올라야만 한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에도 안중근 의사의 ‘인무원려난성대업’의 마음이 절실하다.
부흥에 대한 열망, 부흥에 대한 간절함만으로는 부흥의 대로를 열 수 없다. 하나님의 꿈을 갖고, 누군가는 그 꿈을 위해 순교적인 간절함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얼마를 더 살고 싶은가? 당신과 내게는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가?
그렇다면 죽음을 앞두고서도 오직 민족의 열린 미래만을 꿈꾼 안중근 의사처럼, 한국 교회의 부흥과 거룩한 기개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부흥의 제단 위에 제물로 드리는 꿈과 비전이 우리에게도 있는가?
다시 2023년이 시작됐다. 목양하는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한국 교회의 부흥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빌립보서 2장 17절이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성경적인 대답일 것이다.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오직 예수님만 더 높이는 사도 바울의 절절한 마음과 희생의 기쁨이 한국 교회의 부흥을 꿈꾸는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부어져 새해에 영적인 ‘인무원려난성대업’(人無遠慮難成大業)을 이루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