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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국제제자훈련원 원장 오정현
목회를 한 지 40여 년이 지나고 있다. 목회자로서 해를 더할수록 깊은 갈증이 쌓이고, 조급함으로 애가 타는 것이 있다. 성도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예수님을 나누고 싶은 열망이 그것이다. 물론 매시간의 설교가 궁극적으로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알게 하며, 닮도록 해야 하지만, 더욱 예수님만을 설교의 주제로 삼고, 시간을 떼어서 폭발적으로 함께하고 싶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 예수님은 기독교의 근원이요,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다. 고대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성경의 모든 길은 예수님을 통해야 한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신앙의 동력이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신앙 상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나아가 인생길에서 예수님이 삶의 전환점으로 작동하는 것을 목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신자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예수님을 제대로, 깊이 있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직결돼 있다. 신자가 삶의 고비마다 흔들리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새해부터 사랑의교회 강단에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주제로 시리즈 강해설교를 하려고 한다.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설렘으로 가슴 뛰지만, 마음 한켠에는 거룩한 긴장감이 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선하시며, 우리의 전부이신 예수님을 성도들의 가슴에서 요동치게 하고, 사도 요한의 선포처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 지금 경험되는 ‘태초 진행형 생명’으로,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가 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아는 것이 신학적 지식을 넘어, 그 어떤 삶도 녹이고 빚어 하나님께로 정렬하는 능력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 가슴에 육화(肉化)돼 마음의 소욕이 곧 성령님의 생각이 되고, 예수님의 소원이 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예수님을 아는 것이 삶으로 온전히 작동하려면 예수님으로 옷 입어야 한다(롬 13:14). 옷이 추위와 수치를 막아 주듯, 예수님으로 옷 입으면 세상의 거친 비바람도, 적대적이고도 신랄한 세상의 냉소도 능히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생각만 해도 우리 가슴에 불꽃이 튀는 스파크가 일어나야 한다. 매 주일 한국 교회의 강단이 말씀의 씨줄과 날줄로 세상은 감히 직조(織造)하지 못하는 ‘예수님으로 빛나는 옷을 입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 교회 강단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강해설교가 쌓여 갈수록 예수님께서 “나는 …이다(ἐγώ εἰμι)”라고 요한복음에서 선언하신 것처럼, “나는 예수님의 기쁨이다”, “나는 예수님의 자랑이다”, “나는 예수님의 친구다”, “나는 예수님의 증인이다”, “나는 예수님의 신부다”, “나는 예수님의 작품이다”, “나는 예수님의 성전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성도들로 교회 안팎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