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14년 02월

갈등의 DNA를 화해의 DNA로

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국제제자훈련원

지구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곳들이 있다. 남극과 같은 극지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이번 2월이면 남극에 장보고 과학기지가 세워진다. 이런 기지에 한번 들어가면 일 년간은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한다. 식량이 모자라도, 뼈가 부러져도 어떻게든 그곳에서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남극 기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보고에 의하면, 이곳에 칼날 같은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원 간의 갈등이라고 한다.
남극의 겨울이 시작되면 몇 개월간 햇볕이 사라지는데, 이 기간은 대원들의 체중이 6~8kg이나 줄어들 만큼 극한의 상황이 계속되는 시기다. 더구나 남극 기지처럼 폐쇄된 공간일수록 조그만 불씨 같았던 사소한 갈등조차 공동체를 깨뜨리는 대폭발로 비화할 수 있다. 남극 기지에서 삶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추위도 식량도 아닌 인간관계의 갈등이라는 사실은 오늘날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지역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나는 가장 큰 소리는 갈등에서 오는 파열음이다. 이것은 현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천여 년 전 교회가 세워질 때부터 시작된 원초적인 것이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관계의 갈등은 예수님께서 주목하신 주제이기도 했다. 마태복음 5장 22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갈등의 대상이 우리의 형제라고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이 다름 아닌 믿음의 공동체를 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교회는 남극 기지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남극 기지는 단순한 추위 속에 있지만, 한국 교회는 이보다 더 지독한 세상의 적대적인 환경 속에 있다. 남극의 대원들은 동일한 목적을 가진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이 그룹을 이루고 있지만, 교인들은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것은 물론이요, 믿음의 연수나 신앙의 색깔도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는 지난 어떤 때보다도 훨씬 더 갈등에 노출되는 위험에 처해 있다.
갈등의 문제는 한국적인 정서도 한몫하는 것 같다. 진영(陣營)에 갇힌 흑백논리가 교회에 들어와 그대로 자리 잡고 있다. 공산주의는 소련에서 시작됐지만 지금까지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은 북한이고, 이념 때문에 목숨을 걸고 피비린내 나는 동족 전쟁을 한 나라 역시 한국이다. 또 유교는 중국에서 출발했지만 주자학과 조의제문, 장례절차 때문에 삼족을 멸한 경우도 우리나라밖에 없다. 사탄이 이런 흑백논리의 극단적 정서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이런 망국적 현상이 교회 내에까지 파고들어 공동체를 어렵게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먼저 나 자신이 지난 일 년 동안 예전에 없던 갈등구조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뼛속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교회가 튼실히 서고 갈등의 중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제자훈련의 초점이 조금 달라져야 한다는 확신이었다. 가르치고 배우는 제자훈련을 넘어, 갈등을 치유하는 화해의 중재자가 되는 제자훈련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갈등을 치료하고 화해를 이끌어내는 길은 사람의 생각에 있지 않다. 바울이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갈등에 대한 경고를 한 직후, 첫 명령으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한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갈등의 치유자와 화해의 중재자가 되는 길은 주님을 생각하는 것에 있다.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마다, ‘순장’이라고 쓰지만 마음으로는 ‘화해의 중재자’라고 읽을 때가 속히 오기를 바란다. 작금의 제자훈련이 성공적이냐 그렇지 못하냐를 판별하는 한 가지 시금석은, 순장 사역을 오래한 사람의 삶 속에서 화해 중재자의 이력이 얼마나 큰 글씨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제자훈련은 예수님의 화목의 피에 근거하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갖는 갈등의 DNA를 화해와 치유의 DNA로 바꾸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경우에도 지치지 말고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