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17년 09월

목회자의 가슴에 새겨질 마지막 설교

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목회 인생에서 마지막 강단에 서게 된다면 무슨 설교를 할 것인가?”
최근 일평생 영향력을 미치는 사역을 하시던 목사님이 갑자기 뇌중풍으로 인해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글을 읽었다. 이 일로 목회 사역에서 내가 전해야 할 마지막 메시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지난 목회 인생은 한마디로 ‘은혜’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그리고 남은 목회 사역도 은혜로 귀결될 것이다. 은혜는 사랑하는 자에게 거저 주는 것이다(엡 1:6). 자격 없는 자가 조건 없이 받는 은혜는 원인과 결과라는 과학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과는 맞지 않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은혜를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다. 소위 똑똑하고 잘난 사람, 억척같이 노력해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자수성가형 사람들이 은혜의 문으로 들어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부와 명예와 권력이 하나님 나라와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인과법칙이 심신에 밴 자에게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체질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교인들 중에는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됐다고 고백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변형된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십자가상에서 구원받은 강도,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것은 전적인 은혜임을 믿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보다 한참 모자라는 이들에게 예외적으로 적용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이는 복음의 옷은 입고 있지만, 생각의 밑바닥에는 율법주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한국 교회가 힘을 잃고 있다고 염려한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교회가 힘을 잃고, 선한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가 세상 법칙에 물들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맘몬의 법칙, 무신론적 인과의 법칙, 종말론적 쾌락의 법칙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실상은 세상 법칙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 있으며, 이들이 교회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를 깨뜨리는 율법주의나 공로주의, 자기 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은혜의 부재’다.
교회 내에서 값싼 은혜를 말하면서 은혜의 남용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값싼 은혜는 없다. 단지 값싼 신앙이 있을 뿐이다. 한 번이라도 은혜에 감격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본 자라면, 은혜만큼 가슴을 젖게 하고, 자신을 겸비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진정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은혜의 일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만이 교회 안에 스며들어 온 세상 법칙들을 깨뜨리는 유일한 힘이다. 은혜가 신자의 심장을 고동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내게는 바다를 먹물로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아도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설교의 마지막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