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18년 07월

사역의 숨결이 된 기억들

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몇 주 전에 제천기도동산에서 사역자들과 함께 지난 사역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던 중 내 사역을 한 단계 올려놓은 사건들을 되새기면서 그 경험을 나누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그 단편들을 함께하고자 한다.
2000년 초에 옥한흠 목사님 내외분과 오리건주를 2주간 여행했다. 어느 날인가 옥 목사님과 함께 오리건 연안의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파도치는 생생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다가 옥 목사님도 나도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다. 극도로 위험한 순간을 함께 경험하면서 우리는 마음의 포장이 벗겨지고, 투명한 상태가 됐다. 옥 목사님과의 관계가 보다 새로워지고 깊어지는 기회가 된 것이다. 서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사건은 목사님과의 또 다른 차원의 인격적인 관계로 들어가는 귀중한 경험이 됐다.
1982년 미국에서 탈봇신학교 입학 허가를 받고 8월 입학을 준비할 때였다. 이동원 목사님의 소개로 안이숙 사모님의 부군인 김동명 목사님의 교회에서 사역을 감당하게 됐다. 사역에 앞서 많은 고민을 했다. 장로교에서 자라 장로교 교회에서만 사역했기에 침례교회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때 부친과 의논했는데 전도사 시절은 교단도 중요하지만, 누구에게 배우느냐도 중요하다는 부친의 조언에 생각이 열려 LA침례교회에서 대학부를 맡았다.
7월 첫 주 부임 당시 35명의 대학생들이 있었는데, 그해 성탄이 지나고 겨울수양회에 120명이 참석했다. 그때 한 목사님께서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나는 아이들에게 30분만 설교해도 아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주리를 트는데, 오 전도사는 어떻게 아이들을 토요일까지 잡고 있을 수 있느냐?” 그때 했던 대답은 지금도 내 사역의 중추가 되고 있다. “목사님께서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고 하시지만, 저는 사람의 변화가 목표고, 영적 재생산이 목표입니다.” 그곳에서의 사역은 한 사람을 제자로 양육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책상머리가 아닌 사역의 현장에서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김동명 목사님은 남미에서 여러 교회를 개척하셨다. 목사님은 당시 한국에서 파송된 권영국 선교사님을 만나 제자훈련에 눈뜨셨다. 그러고는 내게 요한복음 교재를 갖고 오시면서 “오 전도사도 나하고 제자훈련을 하자”고 제안하셨다. 그런데 내가 가르쳤던 대학부 리더들도 함께하자는 조건이었다. 제자훈련에는 양육하는 사람과 양육받는 사람 사이에 나름의 위계질서가 있는데, 대학부 리더들과 함께 훈련받는 일은 큰 고민이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양육한 제자들과 함께 목사님으로부터 훈련받은 시간은 주님 앞에서 깨지는 시간이었고, 다듬어지는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옥 목사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새롭게 한 경험, 30여 년 전에 이민 교회에서 젊은이 사역에 진액을 쏟았던 현장, 그리고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과 함께 훈련생으로서 깨지고 다듬어진 시간들이 지금 내 사역의 뼈대가 됐다. 마음속에 박힌 사역의 편린들을 부족하나마 드러내는 이유는, 지금 사역 현장에서 땀 흘리는 후배 사역자들에게 제자훈련 사역은 제한된 시간의 열매가 아니라, 관계나 배움에서 한 생애가 쌓이는 것임을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