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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가을의 끝자락이다.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내게 허락하신 시간과 물질, 육신의 은혜를 결산해야 할 때이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후 수술 전날에 쓴 《암을 낭비하지 마세요》(Don’t waste your cancer)라는 소책자가 있다. 암을 두려움의 대상이자, 제거돼야 할 것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암을 낭비하지 말라는 어구는 부적절해 보인다. 암이 마치 귀한 보물인 것처럼 낭비하지 말라는 말은 신앙인에게조차도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책 속에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글들이 있다. “투병 중에 예수님보다 자기 목숨을 더 사랑한다면 암을 낭비하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암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한다면 암을 낭비하는 것이다.” 암과 같은 치명적인 중병에 걸린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몸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몸에 좋다는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끼지 않는다. 또 전공의 못지않게 관련 서적을 찾아 읽으며 암에 대해 깨우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암을 낭비하지 말라는 경고는 벼락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치와 수준을 다시 상기시킨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진정한 가치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가치 척도는 단 하나다. ‘이것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하게 하는가?’
내가 목숨처럼 아끼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버려야 한다. 반면 하나님과 가까이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취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자칫 책상머리를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그리스도인의 가치척도라고 해도 치명적 위기 앞에서 하나님보다 자신의 몸을 더 사랑하고, 자신을 구해 줄 세상 방식에 몰두한다면 신앙이 무슨 소용일까!
그래서 우리는 제자훈련을 해야 한다. 진정한 제자훈련은 암과 같은 치명적 순간에도, 삶의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가까이함을 선택하는 것을 체질화하는 훈련이다.
내 인생의 목표는 사랑의교회 담임목사가 아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돼 ‘주님과 더 나은 관계를 맺는 것’이 목표다. 우리는 왜 훈련을 하고, 직분을 받고 섬기는가? 모두 주님과의 더 나은 관계를 맺고 이어가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제자훈련으로 ‘하나님께 가까이함’을 체질화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존 파이퍼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존 확률에서 평안을 찾고 있다면 암을 낭비하는 것이다.” 세상은 이길 확률이 질 확률보다 크면 안도하고, 적으면 불안해 한다. 이 말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미 우리의 심신이 세상적으로 체질화된 것이다. 제자훈련은 확률에 의존하는 삶이 아니다. 제자훈련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이요, 전천후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체질화 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