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지난여름 수술을 받았다. 갑자기 몸 안의 장기들 안에 혹이 여러 군데 발견돼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떨림이나 두려움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외상이나 통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 당일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대기실에 앉아 있는 몇 분간이 내게 주어졌다. 나를 비롯해 두 명이 더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실내 온도가 너무 낮아 간호사가 따뜻한 담요로 대기하는 환자들의 어깨를 감싸 줬다.
그런데 그 15분 동안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수술 전에는 머릿속으로 좀 쉬다 퇴원해 집에 가고, 며칠 후에는 직장도 다시 가서 <디사이플>지를 마감하고, <날샘> 앱도 진행하는 스케줄을 짰다. 그런데 내려간 대기실의 온도만큼 수술 직전의 내 마음도 갑자기 급강했다. ‘혹 수술하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수술하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하면 애들은 어떻게 하지?’ 내 인생의 모든 짐들을 하나님만 붙잡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주재권(主宰權)은 주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만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지배를 받지 않은 영역은 없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차가운 대기실에서 생사의 두려움에 직면해 보니, 내 삶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임을 비로소 실감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자기 마음대로 살고 죽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수많은 재물을 지닌 재벌도, 지식이 많다는 학자도, 건강하다는 스포츠 선수도 자기 마음대로 살거나 죽지 못한다. 인간은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의 주권 아래 존재하는 연약한 피조물일 뿐이다. 그런데도 아프지 않으면, 망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으면 아직도 자신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화로 신앙생활도 뜨뜻미지근한 상태가 된 지 오래다. 주님과 친밀하고 긴밀한 교제가 말씀을 볼 때마다 솟아나고, 찬양을 드릴 때마다 충만하며, 기도를 드릴 때마다 벅차지 않고, 잔잔할 뿐이다. 이는 예수님을 내 삶과 마음의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문밖에 둔 결과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에 <디사이플> 10월호에서는 ‘그리스도의 주재권, 예수님을 문밖에 두지 마라’는 기획 주제를 통해 그리스도인이지만 물질과 자녀, 시간 등을 내 소유물이라고 여기며 인생의 주재권을 온전히 내어 드리지 못하는 영역들에 대해 점검하고 삶의 진정한 주인이신 예수님께 인생의 모든 권한을 이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법에 대해 살펴봤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