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야기

2007년 09월

현장 이야기 | 인천 명성교회 제자훈련, 좌절의 끝자락에서 소망을 그리다

현장이야기 양승언 목사

김영수 목사는 호서대학교와 기독신학대학원대학교(M.Div.), 그리고 미국 미드웨스트신학대학교(Th.M.)를 졸업했고, 현재는 총신대학교 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D.Min.) 과정 중에 있다. 1993년 인천 명성교회를 개척하여 현재까지 담임하고 있다.

 

 

개척한 지 7년이 지났지만, 단지 20여 명만이 모여 자족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인천 명성교회(담임: 김영수 목사). 때로는 상황이 호전되기는 것 같기도 했고, 뭔가 나아질 것 같은 기대감을 갖기도 했지만, 늘 같은 자리만을 맴돌 뿐 더 이상 변화에 대한 기대조차 갖지 못하게 만든 지난 세월이었다. 그래서인지 자그마한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고, 이렇게 평생 목회하다가 마칠 것 같은 두려움마저 김 목사에게 밀려왔다.
  그런데 이런 명성교회의 모습이 결코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당시의 명성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교회의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명성교회를 주목하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너무나 평범했던 명성교회가 새롭게 변화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정체의 늪 속에 빠져 있는 다른 많은 교회들 역시 변화의 씨앗이 심겨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명성교회는 장년만 4백여 명이 모이는 중형 교회로 성장했다. 단순히 수적으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체질적으로 전혀 다른 교회로 변했다. 7년 전의 명성교회의 모습 속에서 결코 예상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이번 호 현장 이야기에서는 지난 6년간 명성교회에서 일어난 변화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했던 원동력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금도 절망의 끝자락에서 힘들어하는 목회자들이 희망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개척, 그 열정만큼이나 깊은 좌절에 빠지다
김영수 목사가 개척한 것은 1993년 1월이었다. 당시 김 목사는 28세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신대원을 졸업하자마자 개척을 시작했다. 특별히 일찍 개척한 남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당시 신대원 동기들의 분위기가 그랬고, 본인도 신대원 시절부터 졸업하면 개척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개척을 해야겠다는 의지와 확신은 분명했다. 하지만, 개척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준비는 거의 갖추지 못한 것이 당시의 솔직한 상황이었다.
  함께 개척할 사람들도 없었고, 재정적인 준비도 전혀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단돈 1백만 원이 전부였다. 게다가 당시 김 목사의 사모는 둘째 아이를 임신까지 한 상태였다. 주변의 상황만 고려한다면, 개척하기에 적합한 여건은 전혀 갖춰지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열정 하나만큼은 누구 못지않았다. 사실 열정만 있다면, 개척하지 못할 이유나 상황, 시대는 없다. 결국 그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지하에 40평 남짓 되는 공간을 얻어 개척을 시작하게 되었고, 둘째 아이가 출산한 지 2주 만에 첫 개척예배를 드리게 된다.
  개척 교회 목회자라면 누구나 경험한 것이겠지만, 처음에는 자신이 섬기는 개척지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좋았다. 얼마나 좋았던지 처음 몇 달 동안은 교회로 잠자리까지 옮겨, 매일 밤 눈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열정 때문인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한두 명씩 보내 주셨고, 교회도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열정도 시들해지기 시작했고, 더불어 조금씩 지쳐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급기야 김 목사는 목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까지 빠져, 교회를 그만 둘 생각까지 하게 된다. 한 번은 후임자까지 정해놓고 외국으로 도망갈 준비를 마치기도 했다. 물론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떠나면 이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게 하셨고, 그들 때문에 떠날 수가 없게 만드셨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보다 뜨겁고 순수했던 열정으로 개척을 시작한 김 목사로 하여금, 목회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까지 빠지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좌절1  사람에 대한 실망에 지치다
김 목사는 학창시절부터 아나톨레와 같은 개인성경연구모임에도 나가며, 성경연구에 대해 나름대로 훈련을 충실히 쌓아왔다. 실제로 이러한 훈련은 김 목사의 목회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고, 설교나 소그룹 인도, 소그룹 교재 제작 등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훈련이 없었다면 오늘의 김 목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 목사는 개척 초기부터 자신의 강점을 살려 성도들을 데리고 꾸준히 성경공부를 가르쳤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효과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열매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렇게 성경을 열심히 가르치는데 왜 사람들은 변하지가 않을까’라는 의문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교회 내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소한 문제들로 인해 사람에 대한 실망은 쌓여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구역예배 때 다른 집 아이가 냉장고의 음식을 꺼내 먹은 것과 같은 작은 일로 인해 다투는 모습이나, 미워하던 사람은 늘 미워하고 서로에게 상처만을 주는 모습에 사람에 대한 실망은 더욱 깊어갔다. 급기야 대부분의 개척 교회 목회자들이 경험하는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애정을 갖고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교회에 심한 상처를 주고 떠난 경우마저 생겼고, 이로 인한 인간에 대한 배신감마저 맛보게 됐다.
  급기야 ‘사람들이 왜 변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고민이 ‘과연 내가 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목회자로서 적합한 사람인가?’라는 목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변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실망에 지치다 보니, 목회자로서의 소명 자체마저 흔들리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회의는 김 목사로 하여금 점점 더 목회의 현장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좌절2  빈자리만 바라보다 지치다
김 목사가 좌절에 빠진 또 하나의 원인은 빈자리였다. 김 목사는 당시 자신이 “잘못된 부흥관이 가져온 조급증에 빠져 있었다”고 회상한다.
  “당시에는 부흥이라는 것을 단순히 양적인 부흥만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때는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을 만나도, 노회에 나가도 온통 그런 얘기들뿐이었습니다. ‘너는 몇 명이 모이느냐, 누구는 몇 명이 모인다더라.’ 오직 숫자만이 목회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숫자적으로 부흥시켜야 한다는 조급증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목회자라면 누구나 김 목사가 말한 양적인 부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젊은 나이에 개척한 김 목사의 경우, 넘치는 열정만큼이나 이런 유혹에 흔들리기 쉬웠다. 물론 이러한 양적 부흥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양적 부흥에 대한 관심이 목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목회자가 양적 부흥에 얽매인다면, 결국에는 목회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 수밖에 없다. 김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에는 예배를 인도해도, 모임을 이끌어도, 사람들을 만나도 빈자리만 보였습니다. ‘왜 이 사람은 안 나올까? 왜 저 사람을 또 저럴까?’ 온통 이런 생각뿐이었습니다.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제 자신도 모르게 빈자리에만 시선이 고정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빈자리만 보이니,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역을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급기야 제 안에 분노마저 조금씩 쌓여 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설교에서조차 이러한 분노가 담겨 나오기 시작했고, ‘영적으로 사람을 살리겠다고 시작한 목회인데, 이러다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목회자가 양적 성장에만 초점을 맞출 때, 한 사람을 더욱 귀히 여기고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빈자리에만 주목하게 만든다는 것이 김 목사의 설명이다. 그리고 이렇게 목회자가 빈자리에만 주목하게 될 때, 조급증에 빠질 수밖에 없고, 이러한 조급증은 결국 목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한 사람의 가치를 무시하게 되고 한 사람에 주목하지 못함으로 인해, 결국에는 비교의식에 빠져 목회자로서의 자신의 소명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김 목사는 사람에 대한 실망에 지치고, 빈자리만 바라보다 지쳐, 개척 초기 뜨거웠던 열정만큼이나 깊은 좌절의 늪으로 조금씩 빠져들게 되었다. 그 결과 명성교회는 개척한 지 7년이 지나도록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만 답보하게 된다. 많을 때는 40~50명까지 출석한 적도 있었지만,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면서 종국에는 20여 명만이 출석하는, 더 이상 어떠한 발전이나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까지 처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지역 교회들 역시 당시의 명성교회처럼 처음 가졌던 기대나 포부와는 달리, 정체의 늪에 빠져 어떠한 탈출구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시의 심정을 김 목사는 이렇게 회고한다.
  “어느 날 불현듯 죽을 때까지 이렇게 목회하는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절박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싶어도 현실이 그랬습니다. 목회자인 저는 늘 같은 고민에 빠져 있고, 성도들도 참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교회 역시 교회다워지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제 자신을 위해서나 성도들을 위해서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 동안 서운한 감정과 상한 마음도 솔직히 털어놓고, 다시 한 번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제게 길을 조금씩 보여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CAL세미나, 아픔만큼 깊은 변화의 씨앗이 심기다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며 성경을 보는데, 김 목사의 눈에 갑자기 바울을 통해 양육 받고 훈련된 사람들이 바울과 동역하는 모습이 눈에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자신도 이렇게 동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강하게 생겼던 것이다. 그러자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교회가 붙잡아야 할 것은 제자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급한 일도, 급한 마음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2001년 3월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이하 CAL세미나)에 참석하게 된다.
  사실 김 목사는 CAL세미나에 참석하기 전에 이미 『다시 쓰는 평신도를 깨운다』도 읽고, CAL세미나 테이프도 듣고, 나름대로 제자훈련을 시도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세미나에 참석해 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도 CAL세미나를 통해 목회자로서 자신의 소명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김 목사는 말한다. 이렇게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새롭게 정립하자, 김 목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교회를 바라보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역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본격적인 양육과 훈련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못되어서, 교회가 100명이 넘게 출석하는 교회로 자라는 열매까지 맛보게 된다. 목회자가 변하자 교회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CAL세미나를 통해 어떤 변화의 씨앗이 김 목사에게 심겨졌고, 이러한 변화의 씨앗은 어떻게 명성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씨앗1  빈자리가 아니라, 한 사람을 보게 되다
CAL세미나를 통해 김 목사는 그 동안 자신이 느꼈던 좌절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교회의 지도자인 자신에게, 다시 말해 열정만 있었지 목회자로서 준비되지 못했던 자신에게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김 목사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그 때를 생각하면 울기도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광인론을 비롯해서 옥 목사님의 강의를 듣는데, ‘내가 그 동안 고민만 하고 고생만 했지, 목회 철학은 커녕 목회가 무엇인지조차 몰랐구나. 내가 한 것은 목회가 아니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동안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서운한 마음만 가졌지, 내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먼저 변해야겠구나. 내가 문제였구나’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자,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이전까지 김 목사는 변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실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변하지 않았던 이유가 잘못된 인도자인 자신을 만나서 변할 수 없었던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 동안 그렇게 못마땅했던 성도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목회자를 잘못 만나 제대로 된 신앙생활조차 못했다는 생각에 불쌍하고 미안한 감정까지 들었다.
  게다가 그 동안 자신을 사로잡았던 빈자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빈자리가 아니라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껏 부족한 자신을 믿고 따르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귀하게 여겨졌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목회에 대한 자신감마저 생기게 되었다. 한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되자, 그 한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심겨주신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이러한 눈이 생기자 목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소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씨앗2  방법이 아니라, 마음이 바뀌다
이렇게 사람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바뀌고 빈자리가 아니라 한 사람을 바라보게 되자, 목회 전반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목회는 사람을 다루고 사람을 세우는 사역이므로,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목회의 여러 영역에서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CAL세미나 후 설교가 가장 많이 바뀌었다고 김 목사는 말한다. CAL세미나를 제자훈련에 대해 배우는 장이라고만 여긴다면, 이는 다소 의외의 답변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설교에서 어떤 변화가 생겼기에, 김 목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제 마음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이전의 제 설교에는 질책하는 마음이 많이 담겨있던 것 같습니다. 강단에 오르면 빈 자리만 보이고, 시험 든 사람만 보이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에는 늘 실망과 짜증 속에서 강단에 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미나를 통해 한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고, 한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자 설교에도 그들에 대한 사랑이 담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빈자리가 아니라 한 사람을 보고, 그 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울까를 고민하다 보니, 설교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교를 위한 새로운 기술이나 능력을 익힌 것도 아니었다. 다만 강단에 오르는 자신의 마음이 바뀐 것뿐이었다. 그러자 설교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었다. CAL세미나가 왜 그렇게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에게 건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CAL세미나를 통해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목회자의 마음이 바뀌기 때문이다. 변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들, 목회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볼 때, 결코 가질 수 없었던 한 사람을 향한 마음. 그 마음을 CAL세미나를 통해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김 목사는 세미나를 통해 자신에게 일어난 또 다른 변화 중 하나는 전도를 직접 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개척 초기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전도를 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성도들에게 전도하라고 이야기했지, 정작 본인은 전도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미나를 통해 자신이 먼저 제자가 되어야겠다고, 스스로 제자가 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제자로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그러자 자신이 먼저 전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고, 그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꾸준히 전도를 다니게 되었다. 이렇게 목회자부터 사모함을 갖고 전도에 임하자 성도들도 김 목사를 좇아 전도하게 되었고, 교회가 양적으로도 새롭게 자라가기 시작했다.
  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전과 달라진 것 없었다. 전도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신설한 것도 아니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목회자의 마음이었다. 비록 같은 방법이었지만, 목회자가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그 열매가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목회자가 어디에 주목하느냐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 목회자가 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본인이 먼저 그 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때, 이러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목회자의 마음이 변할 때, 같은 사역을 하더라도 그 열매가 달라지는 것이다.

 

 씨앗3  결과가 아니라, 열매에 집중하다
CAL세미나 후 김 목사는 본격적으로 훈련에 뛰어들었다. 우선은 양육 시스템부터 새롭게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동안 성경공부 등을 통해 나름대로 가르쳐 왔지만, 훈련을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복음의 기초부터 시작해서 새롭게 세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교회에서 실시하는 확신반과 성장반에 큐티과정을 접목하여 양육 시스템을 갖추었다. 또한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양육 과정과는 달리, 훈련과정은 철저히 지도자로서 세워질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집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김 목사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모든 우선순위를 양육과 훈련에 맞추고 집중했다. 지역 특성상 맞벌이 부부가 많았기 때문에 성도들이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성도들의 편의에 맞춰 주일 저녁이든 평일 낮이든 저녁이든 시간대에 상관없이, 또한 모이는 사람이 많건 적건 인원수에 상관없이 가능한 대로 양육과 훈련 과정을 개설했다. 많게는 8개 반까지 운영하게 되었고, 훈련과 양육 외에는 도저히 다른 곳에 한 눈 팔 시간과 여력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지 않았고, 노회는 물론 웬만한 외부 모임은 일절 발을 끊게 되었다.
  김 목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왜 안 힘들었겠습니까? 하지만 힘든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양육과 훈련을 시작하자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자, ‘목회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가 그 동안 이걸 몰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는 이 행복감에 겨워 힘든 지도 모르고 마냥 달려갔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훈련을 시작했다면, 훈련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명성교회의 사례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훈련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것은 목회자가 목회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김 목사는 이전까지는 목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양적 성장에 큰 가치를 두었다. 그런데 세미나를 통해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 즉 목회의 결과가 아닌 열매에 주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치를 결과가 아닌 열매에 두자, 목회자로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을 맛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행복을 느끼자 자연스럽게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목회자의 진정한 행복은 목회의 열매에서 비롯되지, 결코 목회의 결과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숫자만을 바라보며 김 목사가 지내왔던 지난 세월이 그 증거이다.
  목회자가 목회의 열매를 추구할 때, 양적 성장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어 있다. 이 순서가 바뀔 때, 비록 목회의 결과가 아무리 풍성할지 몰라도, 목회자로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결코 맛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비전, 사람을 세우는 기쁨 하나면 충분하다
이렇게 양육과 훈련을 시작한 직후, 김 목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교회 이전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물론 당시의 교회 상황은 개척 교회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사역해 오던 지역을 떠나 새로운 지역에 가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이 결코 적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그냥 포기했지만, 이번만은 고민이 되었다. 당시 명성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은 편은 아니었지만, 노년층이 중심인 지역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이전할 지역은 비교적 젊은 층이 많았기에 훈련시킬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물론 이 역시 가능성일 뿐이지, 현실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김 목사는 교회 이전을 결정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맛본 사람을 세우는 기쁨 때문이었다. 훈련과 양육을 통해 사람이 자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기쁨을 보다 누릴 수만 있다면, 새로운 도전도 거부할 수 없었다. 사람을 세우는 기쁨, 이것이 바로 명성교회를 움직이는 비전이고 힘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김 목사가 느낀 사람을 세우는 기쁨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기쁨1  변화가 있기에, 멈출 수 없다
김 목사는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맞이하는 첫 종강모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처음 맞이하는 종강이다 보니, 김 목사나 훈련생 모두가 함께 자축하며 마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그마한 종강모임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교회의 위치가 인천과 가깝다 보니, 훈련생 중 한 명이 교회 승합차를 타고 횟감을 마련해 오기 위해 다녀오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는 길에 교회 앞에서 오토바이와 사고가 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김 목사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훈련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훈련 종강모임을 위해 솔선수범해서 섬기겠다고 하다가 사고가 났으니, 혹여라도 시험에 들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들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옛날 생각이 났다. 사실 얼마 전만 해도 이런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시험에 빠져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던 것이 바로 명성교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분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더 기도하라고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인은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훈련 받은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도우실 것이라고, 그래서 괜찮을 것이라고 오히려 주위의 걱정하시는 분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 때 제게 ‘이것이 다 훈련 때문에 생긴 열매다. 훈련 받지 않고 교회 일 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다면 큰 시험거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훈련 때문에 변화된 모습을 보니까, 그 다음부터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훈련으로 사람들이 세워지자, 같은 환경, 같은 사건을 경험하면서도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훈련이 왜 필요한지, 왜 훈련을 멈출 수 없는지에 대해 느끼게 된 것이다. 이렇게 훈련을 통해 변화된 모습이야말로 훈련을 통해 누리는 목회자의 기쁨이며, 동시에 훈련을 시작한 목회자라는 훈련을 통해 이러한 삶의 변화라는 열매가 맺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기쁨2  한 마음이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김 목사는 훈련을 통해 맛본 또 다른 기쁨 중 하나는 교회가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게 된 점이라고 말한다. 다른 개척 교회처럼, 명성교회도 처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교단 배경도 다르고, 신앙의 색깔도 다르고, 게다가 기성 교회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사람이 교회에 출석하면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하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이러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작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람에 대해 오히려 폐쇄적이 되어갔다.
  그런데 양육과 훈련이 튼튼히 자리 잡게 되자, 이런 문제로 인한 갈등이 없어지게 되었다. 양육과 훈련을 통해 자신이 잘못된 신앙관이나 교회관을 바로 잡을 기회를 가질 뿐만 아니라, 담임 목회자의 목회 철학과 신앙관을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훈련과 양육을 받았다고 모두가 같은 신앙의 색깔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훈련과 양육을 거치게 되면, 담임 목회자는 물론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과도 함께 공유된 무엇인가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 내에서 무슨 일을 하든 교회가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든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중요한 발판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훈련을 시작한 이후, 교회가 건축을 두 번하고 증축을 한 번하고 주차장을 구입하고 비전센터를 건축했지만, 한 번도 혼란이나 어려움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건축을 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부흥회 같은 것을 해서 억지로 이끌고 가잖아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냥 조용히 기도하는데도,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모아지고, 90%이상이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훈련과 양육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쁨3  함께 뛰기에, 풍성해진다
명성교회가 갖는 특징 중 하나는 평신도들의 사역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에 들어서야 교육부서를 담당할 파트 교역자 3명을 모실 정도로, 그 동안 모든 교회 내 사역을 평신도들이 감당해 왔다(물론 김 목사는 부교역자가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역자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지금은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사역에 동참하게 된 데는, 김 목사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사람이 부족한 대부분의 개척 교회 목회자들이 그렇듯이, 김 목사도 교회 출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전 교회에서의 신앙 경력만을 보고 몇 번 사람을 세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세웠을 경우, 본인에게나 교회 모두에게 유익을 끼친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가 그렇지 않았다. 본인도 힘들어했고, 교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훈련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은사도 분명히 발견되었을 때만 일을 맡기게 되었다.
  사실 같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일의 열매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목회자가 사람을 만들고 세우는 일에 전념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사명감을 심어주고, 그 사명감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을 옆에서 코치하며 돕는다면, 평신도 사역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김 목사의 설명이다.
  실제로 훈련 사역을 시작한 후, 교회 건축과 같은 중요한 교회 내 사역을 훈련생들에게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너무나 잘 감당해 주었다고 한다. 대신 그는 훈련 과정 중에 적극적으로 사역에 동참하고 이를 통해 배우도록 이끌고 있다.
  “저 역시 성도들을 어떻게 하면 보다 적극적으로 사역에 동참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청소나 식당 봉사와 같이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교회 내에서 섬김의 손길이 필요한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훈련을 받는 분들에게 이들 사역 중의 한두 가지를 반드시 섬기도록 도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사역을 통해 얻는 기쁨과 훈련을 통한 영적 성숙이 서로 상승효과를 가져와 훈련의 열매가 더욱 컸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훈련생들에게 훈련 기간 중 교회 내 작은 사역과 봉사라도 참여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훈련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사역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준비된 사람들이야말로, 저희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셈입니다.”
  김 목사가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자신의 영혼을 깨웠던 바울과 동역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의 모습. 바울이 보여주었던 평신도 지도자들과 동역하는 모습이 어느덧 자신의 교회의 모습이 되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개척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명성교회는 마치 갓 대학에 입학한 젊은이를 보듯, 어제보다 내일에 관심이 가는 교회이다. 이렇듯 명성교회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는 한 가지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명성교회가 한 사람을 세우는 기쁨으로 움직이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7년에 가까운 절망스런 목회의 끝에서 사람을 세우는 기쁨으로 새로운 희망을 그려가는 명성교회의 모습이, 지금 이 순간 절망의 끝자락에 서 있는 교회와 목회자에게 자그마한 소망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