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제자훈련

2010년 02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렵니다

교회와제자훈련 황두환 목사 _ 광주세광교회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이 교회에 부임했다. 60~70명 정도의 교인이 출석하는 아주 가족적인 교회였다. 아니, 너무 가족적이라고 해야 맞겠다. ‘이대로도 좋사오니’ 하는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나는 대학 스터디 그룹에서 『평신도를 깨운다』를 읽었다. 그때 큰 도전은 받았지만, 학교를 졸업하면서 제자훈련은 점점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러다가 농촌의 작은 교회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무언가 돌파구를 찾다가 CAL세미나를 만났다! 제자훈련으로 가슴이 뜨거워져 나름대로 준비를 하던 그 시기에, 주님은 광주시로 사역지를 옮겨주셨다.
그리고 부임한 첫 설교시간, “나는 제자훈련 하는 목사입니다. 제자훈련을 안하면 목회를 안합니다”라고 선포를 해버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더 정들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린 것이다. 새로 부임한 목사가 다짜고짜 첫 설교에서 제자훈련 목사라고 했건만, 장로님들과 성도들은 그저 ‘그런가 보다’하는 눈치였고, 별로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전교인을 소그룹으로 교육했다.
그리고 곧바로 시무장로 4명과 기둥 남집사(?)라고 하는 3명(현재는 장로)과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입학예배는 화려하게 축제분위기로 하라’는 말이 생각이 나서 입학예배 설교를 광주첨단교회 임동헌 목사님께 부탁드렸는데, 당시 첨단교회가 급성장하는 시점이라서 엄청나게 바쁘셨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임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말 그때만 해도 내가 제자훈련에 미쳐서 겁이 없었나 보다. 작은 교회 제자훈련 입학식에 그렇게 바쁜 목사님에게 설교를 부탁하다니. 그러나 임 목사님은 “젊은 목사가 겁도 없이 제자훈련을 한다”고 염려와 함께 격려를 해주셨고, 그게 얼마나 큰 용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수요 예배 후 제자훈련이 시작됐다. 솔직히 장로 제자훈련은 목회 비전에 반대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약간 가볍게 훈련하려고 했다. 그런데 도리어 장로님들이 예습과 암송을 아주 철저하게 해오시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장로그룹 제자반이 자리를 잡아갈 즈음에 여자제자반을 시작했다. 이때 여자반은 참으로 감동과 은혜의 눈물의 도가니였다. 입학 예배 때 내가 훈련생들에게 손수건을 왜 선물했는지 알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훈련했다.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달려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들을 때마다 감사가 절로 나왔다. 이런 감동은 제자훈련을 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것이리라. 지금 장로님들은 남자 순장 겸 교구장으로, 그때의 여자 수료생들은 4년째 순장으로 사역중이다. 
점점 교회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교회비축재정도 굉장히 적었고, 원래 교회와 거리가 많이 떨어진 지역에 교회를 짓게 됐다.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도 한 명의 성도도 떨어지지 않은데다, 주님이 축복하셔서 무리 없이 대출금을 다 갚았고, 교인도 배로 증가했다.
이렇게 감사한 일이 많았지만, 정말 큰 안타까움이 하나 있다. 건축을 끝내고 부채도 다 갚자, 나를 비롯해 전교인이 긴장과 열정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히 제2기 제자훈련이 좀 느슨해졌다. ‘제자훈련은 성경공부가 아니라 특수훈련이다’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이라 자성해본다. 그러다 보니 영적으로 교회가 침체되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서 이제 곧 시작하는 3기 제자훈련은 첫 시간부터 긴장과 열정을 놓지 않으려 무척 애를 쓰고 있다.
계속해서 재생산이 되어야 순장들에게 사역을 맡길 텐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사역훈련을 마친 훈련생들을 예비순장으로 임명했지만 좀 난감하다. 그러나 순장을 준비시켜 놓았으니 주님이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리라 믿는다.
비록 남겨진 과제가 많지만, 제자훈련 목회를 하게 하시고 변화의 싹을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또한 “목사님, 우리도 빨리 제자훈련 받고 싶은데”라고 엄살을 떨면서 항상 호응해 주시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