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제자훈련

2010년 11월

가장 느린 방법이 가장 빠르다

교회와제자훈련 김성주 목사 _ 우리들교회

2006년 7월 2일에 한 가정과 함께 천마산 자락에 우리들교회를 개척했다. 나름대로는 오랫동안 청년대학부 사역을 하였고, 나 자신도 젊기에 젊은이들이 많이 올 줄로 기대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중장년층만 오는 것이었다. 오랜 대학부 사역에 익숙해져서인지 무거운 장년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매주 부담스러웠다. 매주 메시지를 전할 때마다 바위를 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는 “목사님! 우리는 청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곳에 쉬러 왔습니다. 제발 우리를 가만 놔두세요”였다.
그래도 뭔가는 해야 되겠어서 주변의 권유로 D-12를 시작했다. 1년 동안 많은 재정과 시간을 들였다. 그런데 내 스스로가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성도님들은 너무 순박하셔서 그래도 목회자가 힘들지 않게 하려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와 주는데, 결코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선교회 모임 중에 집사님 한 분이 질문하시는 것이다. “목사님, 행복하십니까?” 순간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였지만 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아니요. 저도 힘들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것이 제자훈련 목회였다. 여제자반 1기를 모집하였다. 나이도 신앙의 연조도 각기 달랐다. 그러나 열심히 제자훈련에 임하였다. 예습을 하고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독서과제, 생활과제를 수행하면서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보였다. 어떤 집사님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소리만 지르고 자신은 TV만 보았는데, 이제 함께 공부하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남편의 발을 처음으로 씻어주고 사랑한다고 고백한 뒤 느꼈던 뜨거운 감동의 고백도 들었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안아주고 축복기도 해주고 느낀 행복함을 나누기도 했다.
제3기 때는 70세가 되신 권사님이 제자반을 신청하셨다.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교회에서 가장 젊으신 집사님이 그 제자반에 함께 신청했다.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30대 초반의 새댁과 70세 할머니가 함께 훈련받는 것이다. 실패가 자명해 보였다.
그러나 막상 제자반을 시작하니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권사님은 가장 모범적이었고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자극제가 되었다. 암송을 위해서 단어장을 만들어 늘 등산할 때마다 외우고 다니신다. 독후감도 다른 사람 4배, 5배 분량으로 그 내용도 알차게 작성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이 변했고, 행복해 하신다. 그래서 또 한 사람의 동역자를 얻는 열매를 얻게 되었다. 지금은 순장과 화요전도팀으로 열심히 섬기고 계신다.
구역예배를 드리지 못하다가 옥한흠 목사님의 다락방 교재 『마가복음』을 선정하고 훈련생 중에서 순장을 세워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제자반 과제도 감당하기 벅찬데, 다락방 교재를 예습하여 2시간씩 순장 성경공부를 하고, 또 주중에 2시간씩 순모임을 갖는다는 것에 곤혹스러워 했다. 그러나 날마다 교회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리면서 여기저기서 행복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어떤 순은 점심 먹고 모여서 나누다 보니 5시간이 가 버려서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한 번은 정말 과묵하신 집사님 한 분이 숙제로 해온 간증문을 읽는데, 사업이 어려웠을 때 주님께서 인도해 주신 일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옆에 계신 부인 권사님도 그런 모습은 평생 처음 본다고 하면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역사가 일어나려나 보다고 했다.
이제 여제자반 3기가 끝나가고 있으며 사역훈련반 1기와 남제자반 1기를 다시 모집 중에 있다. 제자훈련을 통하여 무리와 군중을 주님의 제자로, 더 이상 잠자는 평신도가 아닌 황홀한 동역자로 세워가게 됨이 너무 감사하다. 처음에는 정말 미약하였는데 갈수록 단단한 느낌을 받는다. 가장 느린 방법이 가장 빠르다. 무엇보다도 목회에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