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클리닉 두보람 전도사_ 시냇가푸른나무교회
매년 연말과 연초는 교회학교 부서들에 비상이 걸리는 시기이다. 여름 시즌 이후 이때만큼 바쁠 때가 있을까? 한해 사역의 결산과 새해 사역의 준비, 코앞에 닥쳐온 성탄과 송구영신, 아이들의 손실 없는 진급과 정착을 위한 준비는 해도 해도 부족하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역시 새해 사역을 함께할 교사진에 대한 준비이다.
매년 교사진을 구성하는 가운데 각 부서는 크고 작은 일을 겪고, 많은 고민과 노력의 시간을 보낸다. 주님과 영혼을 사랑하는(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의 마음처럼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할 교사들이 넘쳐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고, 열정을 품고 혜성처럼 등장하는 교사들도 있지만, 매년 마주하는 장면들은 “힘들어서 내년에는 사역을 내려놓고 싶다”라든지, “저는 아무리 봐도 교사에 대한 자질이 없는 것 같아서 고민 중”이라고 말하는 지체를 붙들고 열심히 설득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미 오늘날 각 교회는 교사를 모집하고 훈련하고 사역하는 노하우와 시스템을 잘 구축해 놓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교사를 세우는 문제는 늘 어렵다. 즉, 조금 더 본질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한 때다. 헌신된 교사가 귀한 요즘, 어떻게 해야 우리는 교사를 잘 세워 올해도 힘 있게 사역할 수 있을까?
분명한 비전을 공유하기
부서 내의 교사들이 내가 맡은 세대에 대한 공통된 비전을 갖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은 교사가 어떤 상황에서도 사역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교사 사역을 어려워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사역의 곳곳에서 닥쳐오는 어려운 문제들과 변화가 더딘 상황들, 낙심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이것을 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와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교사들에게 모두를 묶을 수 있는 분명한 비전은 사역에 대한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오늘날 교회학교에는 다음 세대는 물론, 교사 수도 점점 감소하고 있다. 오랫동안 교사 사역을 감당해 온 사람들은 과거보다 요즘이 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어쩌면 이것은 아이러니한 반응인데, 그것은 우리의 모든 사역의 현장과 환경이(지역과 교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더 힘든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가르치고 양육하는 다음 세대들이 부족함이 없는 삶 속에서 어떤 분명한 진리나 절대자의 필요성, 신적 존재의 도움이나 구원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본격적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계기는 광야가 아닌 가나안 땅에서 시작됐다. 고단한 광야 길이 아닌 풍요롭고 안락한 땅에서 결정적인 타락과 배교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는 가나안 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태어나서부터 이전 세대들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간다. 더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더 많은 것을 누린다.
광야의 세대는 하루하루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평안한 가나안에서 태어난 세대는 자신들이 누리는 복과 은혜가 어디서 왔는지에 관심이 없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는지, 요단 강을 가르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지금 여기서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이와 참으로 비슷하다. 풍요로움 속에서 약해지고 놀고 즐기는 현상만 강해진 시대에 아이들은 고스란히 그 영향을 받아 현세를 즐긴다. 이 풍요함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분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는 다음 세대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가르치고 있다.
교회에서 하는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속칭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순도 높은 복음의 메시지가 제시됐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지극히 미온적일 때가 많다.
유초등부 시절에는 열심히 말씀을 읽고, 예배도 성실히 드렸던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가서 급격히 신앙이 무너지는 것을 볼 때, 또는 중고등부 때 에너지가 넘쳤던 아이들이 청년이 돼 너무도 빨리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좇는 것을 보면 우리는 힘이 빠진다.
교사로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큰 변화가 없을 때면 지칠 만도 하다. 애들뿐만이 아니라 나도 더 즐기고 싶고 쉬고 싶다. 적당히 하고 싶은 유혹은 늘 우리를 괴롭힌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비전이 필요하다.
“우리 부서는 다음 세대의 이런 부분에 대한 양육을 담당하는 부서이다. 그래서 우리 부서는 이것과 이것에 최선을 다한다”, “우리 부서에 머무는 3년의 시간 동안 반드시 이러이러한 신앙 훈련과 작업들을 해내야만 한다” 등의 분명한 목표와 비전이 서로의 가슴속에 심겨 있어야 한다. 막연히 가르치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현재 우리 교회에서는 2014년 연말부터 교회학교 전체 부서가 연계성을 갖고 각 연령대와 부서에 맞는 신앙의 목표와 비전을 세웠다. 단계적인 교육목표를 수립하고, 각 부서는 그것을 교사콘퍼런스와 교사 박람회를 통해 홍보하고 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부서의 특성과 사역 비전, 방향성을 설명하므로 교사를 지원하는 사람들도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아 본인의 마인드와 방향성을 점검하고, 자기에게 맞는 부서를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것은 부서 내부적으로 오래 사역을 해온 교사들에게 자신의 사역에 대한 비전과 방향성을 정립하는 기회가 돼서 그동안의 사역을 돌아보며 새로운 열정을 품게 하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
1km를 뛰어도 목적지를 두고 뛰는 것과 목적지 없이 막연히 뛰는 것은 큰 차이를 보인다. 목적지를 바라보면서 뛰는 사람은 힘들어도 한 걸음 한 걸음이 그곳에 가까워지는 소망을 품을 수 있다. 우리의 사역과 마음속에 명확한 비전과 목표점이 제시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공유해야 한다. 한뜻으로 뭉치는 것만큼 힘이 나는 일도 없다. 모두가 같은 목표와 소망을 품을 때 교사들의 입에서 “고단하다”는 말이 “가치 있다”는 말로 바뀐다. 명확한 비전이 있어야 교사가 세워진다.
온전한 관계성을 세우기
“혹시 몇 명의 교사들과 카페에 갔을 때,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당신은 그들이 원하는 음료를 주문해 줄 수 있습니까?”
교사를 세우는 일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교사를 세우는 일과 또 그들과 함께하는 우리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다. 교역자와 교사와의 관계, 교사와 교사와의 관계가 건강할 때,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가 맡은 사역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또한 그것은 교사를 가장 건강하고 힘 있게 세우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종종 깨닫는 것은 교회 안에서 만난 관계가 세상의 일반적인 관계보다도 친밀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사역을 통해 가까워지고 공유한 부분은 많아도 정작 교사 한 명 한 명,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교회에서 만나 함께 사역하면서 서로를 친밀하게 생각하지만, 실상은 SNS에서 알려주는 알람이나 일정표, 팀 안에 생일을 챙기는 담당자가 없다면 우리는 서로의 생일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끔 식당에 가서 한 메뉴를 시켰을 때, 그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 당황하고 미안해하는 경우도 있다. 함께하고 있는 사역에 관련된 주제가 아니면 공유해 나눌 이야기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목적 중심적인 관계성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사역이 먼저이고, 그 중요성을 알기에 그것이 최우선이 될 수 있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교사들과 서로의 일상과 삶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교사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에너지가 고갈된다.
많은 교회가 이런 문제를 이벤트적인 격려로 돌파하는 시도를 해왔다. 언제부터인지 교회와 부서들 안에 회식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큰 행사를 마치면 으레 다 같이 식사하며 모두의 수고와 헌신을 격려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고 목마르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생일 축하도 정기적으로 하지만, 말 그대로 무언가 정기적인 느낌이 강하다. 일반 사회에서도 이런 방식의 격려는 똑같이 진행된다. 교회는 이 이상의 무언가 다른 것이 서로 안에 존재해야 하는 곳이다. 평소의 상황과 삶을 살피고, 그 사람을 한 명의 영혼으로 지체로 바라보고, 챙기고, 서로 끌어줘야 한다.
교사들도 그들이 양육하는 아이들과 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여전히 자라가야 하는 존재이고, 세상과 교회를 오가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치열하게 분투하며 사는 가운데 여러 영적 공급이 필요한 대상이다. 그렇기에 교사를 격려하고, 교사들의 필요와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세우는 것은 한 명의 지체로서 교사 개인을 위해, 더 나아가 교회학교의 사역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다 함께 부서의 사역과 행사를 놓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사 한 명 한 명의 상황과 어려움을 놓고 서로가 내 일처럼 금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매일 아침 공식적으로 보내는 성경 구절도 좋지만, 어느 날은 모바일 메신저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응원 메시지를 담아 보내주는 것도 좋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신앙생활의 페이스가 떨어진 교사에게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보다 큐티지 사이에 영화 티켓 한 장 넣어 건네는 것이 그의 마음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요한일서 4장 11절에서 말하는 사랑의 논리는 정말 놀랍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해야 하는 최우선적인 목적 앞에서 동일하게 우리는 옆에 있는 교사들을 그렇게 사랑하고 돌아봐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당장 2015년의 힘찬 시작을 위한 격려도 좋지만, 우리가 오래오래 하나님과 영혼들을 위해 사역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1년, 2년, 3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서로를 진심으로 살피다 보면, 서로의 삶을 나누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온전한 사역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다.
기도의 중요성을 나누기
한 해의 사역을 정리할 때면 올해 나의 사랑하는 동역자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방금 언급한 ‘사랑하는 동역자’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기도가 부족했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만큼 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를 통해 우리가 맡은 영혼들이 변화되는 것을 믿는다면, 그들을 담당하는 교사들을 위해서도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교사와의 관계가 잘 형성되고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섬긴다 해도 기도가 없을 때, 잘못하면 그것은 인간적인 관계로만 머무를 수도 있다.
교회의 사역은 분명히 영적인 원리와 힘으로 이끌어져야 하는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에 가장 많은 에너지와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각 부서 안에서 이 기도에 대한 중요성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교역자와 교사가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교사와 교사가 서로를 위해 중보할 때 놀라운 변화가 우리 안에 시작될 것이다. 기도는 교사를 가장 건강하고 온전하게 세워가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한 명의 교사가 온전히 서는 것은 다음 세대에 대한 소망이 더 커지는 것을 의미하기에, 우리는 부서의 사역만큼이나 교사를 세우는데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쏟아야 한다. 2015년도에도 교회학교를 섬기는 수많은 교사의 눈물로 이 땅의 교회와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으며, 얼마 전 우리 중등부 교사들과 나눴던 말씀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두보람 전도사는 성결대학교와 성결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사단법인 한국YFC(십대선교회) 간사로 섬겼으며 현재 시냇가푸른나무교회 중등부 전도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