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윤희구 목사 _ 창원 한빛교회
<디사이플>로부터 글을 써 달라는 원고 청탁이 들어온 것은 내가 좋은 글을 잘 쓰기 때문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마 이유라면 1986년 10월경에 개최된 제2기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에 참석한 후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제자훈련을 계속해 왔다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최근 들어 제자훈련을 하던 목회자들 중 몇몇 분들이 제자훈련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자훈련을 통해서는 교회 성장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교회성장, 또는 급성장이라는 단어는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달콤한 단어이겠는가? 개척된 지 몇 년 만에 수백 명, 또는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로 급성장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현장을 보고 싶고 또 그 비결을 들어서 나도 한 번 교회를 급성장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목회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목회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과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라는 지상명령을 받은 자들이 아닌가?
그러나 현실을 자세히 살피면 교회의 급성장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로또 복권처럼, 또는 주식 투기처럼(표현이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지?) 성공한 사람들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장 신드롬 그 이면에 교회성장을 지상목표로 삼고 사역하다가 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어떤 교회는 예배당을 크게 건축하고 빚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목사님이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생 끝에 지은 예배당을 마침내 처분하고 빚만 잔뜩 짊어지는 경우들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성장통을 앓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한빛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한빛교회도 똑같은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정말 하나님 은혜로 지금껏 목회하고 있다.
우리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는 있지만 그 말씀에 자신을 맡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가난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는 말씀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는 말씀이다. 이 말씀들대로 목회한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만난다 할지라도 감사하며 살아갈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90점짜리 친구
지난 2004년 11월 11일자 국민일보 사회면에 <90점짜리 친구>라는 제목의 수필이 게재된 적이 있다. 90점짜리 인생이라는 말을 들을 때에 사람이 조금은 모자란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90점짜리 친구”란 자신은 90점으로 만족하고 10점은 항상 남을 위해 남겨두는 사람을 뜻한다. 친구 한 명이 100점짜리여서 공부도 잘 하고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고 선생님들의 기대를 듬뿍 받아 졸업 후에는 벤처 사업가로 성공의 지름길을 달렸는데, 그만 중도에 부도가 나서 미국으로 도망치듯 이민을 가 버리자, 90점짜리 친구는 그 100점짜리 친구가 고국을 떠난 것은 자기가 끝까지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것(빌 4:13)은 만사 능통하다는 뜻이 아니라 어떠한 조건과 형편 속에서도 자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비천(겸손하다, 초라한 상태, 가난한 상태)에 처하여도 비굴하지 않으며 풍부(넘치도록 있다, 초과하다.)한 형편에서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가난하게 되는 것이나 비천한 자리(로마 감옥에 투옥되는 일)에 처하여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함이기에 그리스도처럼 낮아질 수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나 교회들의 도움을 받게 되면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서 또한 감사하다. 이러한 마음은 90점에도 만족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다.
급성장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는 여유
90점에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급성장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100점을 최고로 생각하기 때문에 모두가 100점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100점을 받는다고 해서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이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애를 쓴다.
성경은 가난과 부 자체에 대하여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부 또는 앞으로 더 많은 부를 가지고 싶어 하는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성장 지상주의는 일종의 우상숭배가 아닌지? 성장을 위해서 목회자의 윤리와 양심을 저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오늘날 한국 사회와 함께 한국 교회의 도덕성이 땅 끝까지 추락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얼마 전 교육계의 고질병인 학력 위조와 가짜 학위 문제가 불거졌다. 서울의 모 대학 교수의 미국 모 대학의 박사 학위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더 심각한 것은 대학에서 그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것이다. 교수의 학력이 가짜라는 보도와 함께 텔레비전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영어 강사도 학력이 가짜라고 실토를 했다. 각계각층에 이런 비양심적인 사실이 얼마나 많이 내재되어 있겠는가.
이렇게 사회에 만연된 학력 지상주의 내지는 성공 지상주의가 이 사회를 턱없이 경쟁사회로 몰아가고 불필요한 일에 우리의 자녀들을 올인시키고 시간, 경제 등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다. 2004년 수능 고사장에서 고등학생들이 연출한 휴대폰 부정시험 사건,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은 돈 몇십만 원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수능 점수 몇 점에 목을 매었으니 그러다가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게 되었고 부모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다. 이 일은 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그러한 유혹이나 시험에 빠질 수가 있다.
다음(Daum)뉴스에 나온 기사이다. ①로또대박이 깨뜨린 부부 행복 - 132억짜리 복권 당첨 이후에 남편이 술과 도박과 여자에 빠져 결국 이혼하게 됨. ②고3 학생 수능 점수 비관 한강에 투신자살. ③기러기 아빠 부모 묘지에서 자살-자녀와 함께 아내를 뉴질랜드에 유학을 보낸 사람. ④성형중독으로 정신분열증에 이르게 된 선풍기 아줌마 등. 100점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90점마저도 잃어 불행을 당한 이들을 보게 된다. 우리는 100점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겠지만 90점에도 능히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짐으로 믿음을 지키고 순결을 지킬 수 있다.
나는 1979년 3월 9일 진해 반석교회(당시 약 200여 명 출석 교회)를 떠나 현재의 한빛교회(당시 개척된 지 4개월 되는 함석 지붕 교회)로 부임해 올 당시, 교인 50여 명만 있으면 목사 한 가정 식구는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옮겨 왔다. 그리고 생활비는 교회에서 주시는 대로 맞추어서 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된다고 설교하면서도 정작 설교자들은 자기 설교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나머지 10점을 나눠줄 수 있는 여유
90점에도 감사할 수 있다면 나머지 10점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것을 같은 양으로 주신 것은 아니다. 각자에게 모자람이 없이 분량대로 은사대로 주셨지만 인간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하여 서로 뺏고 빼앗기는 일들이 벌어지고, 또는 게으름과 지혜롭지 못함으로 인하여 잃어버리는 일들이 있어 부족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곡식은 세계 인구가 먹을 수 있는 양이지만 각 나라들이 부족한 나라와 민족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으므로 세계 곳곳에 양식이 없어서 5초에 3명, 1년에 1,8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생명들이 죽음에 이른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불법으로 만들어 놓은 불공평을 공평으로 만드는 방법을 인간에게 주셨으니 그것이 곧 나눔의 원리이다.
얼마 전에 수도권에 있는 몇몇 교회 목회자들이 앞으로는 수평 이동 교인들의 등록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적이 있다. 어떤 면으로는 신선한 제안이다. 그러나 목회자가 그렇게 선언한다고 해서 교인들이 그 제안대로 따라줄까? 그러잖아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는데 오히려 맘 편히 미등록교인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그보다 전 교회의 목회자에게 허락을 받고 이명증을 가지고 온 교인들에 한해서 등록을 받아주면 되지 않겠는가?
우리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양 무리를 맡은 목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자기 양인 것처럼 착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양으로 바로 볼 수 있을 때, 그 성도를 올바르게 성숙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한 때는 분리 개척한 목회자들에 대하여 칭찬이 자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일도 한 때의 한 사건으로 끝나 버리고 만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8:14).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이 들었을 때 바울 사도는 마게도냐 교회(그리스)로 하여금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돕게 했다. 이 관계에서 서로가 공평한 것은 예루살렘 교회는 육적인 양식을 받았고 마게도냐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영적인 양식 곧 복음을 받았기 때문이다(고전 9:11). 이 일에서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또한 극한 가난(바닥이 보이는 가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힘을 다하여 형제교회의 어려움을 도왔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마게도냐 교회는 90점도 못 되는 경제적 형편에서도 예루살렘 교회를 열심히 도왔다는 것이다.
100을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고 싶은 욕심의 여유는 있을지는 몰라도 남에게 줄 수 있는 여유는 없다. 그러나 90점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웃의 아픔을 알기에 10점을 나누어 줄 수 있다. 부디 90점으로도 감사하고 이웃들에게 사랑과 친절함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야 몰락해 가는 이 사회와 민족을 건강한 사회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는 여유
90점에도 감사하면 모자라는 10점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넉넉하신 분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온갖 세상 정욕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받을 만한 여유가 생길 수 없다. 적어도 10%의 여유라도 있어야 그 부분을 채워 주시지 않을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나는 이 성경 말씀을 좋아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말씀대로 나의 목회에, 나의 가정에 필요한 부분을 언제나 충분하게 공급해 주셨다. 내가 나를 채우려 할 때보다 하나님이 채워 주실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할 것이다. 하나님이 채우시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울 것이다.
100점을 가지지 못하였다고 안달하거나 불평하지 말자. 90점으로도 얼마든지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자. 그리하여야 교인들도 성장을 독촉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내 교회에서 이웃 교회로 이동해 가는 교인들을 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얼른 마음을 고쳐먹으려 한다. 떠나는 사람은 내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좋은 훈련을 받게 하기 위하여 옮겨가는 것이며 하나님은 또 다른 분들을 보내어 주실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그러면 얼마 후에 보내 주신다.
우리는 돼지를 욕심꾸러기의 대명사로 사용한다. 그러나 조사된 바에 의하면 돼지는 자기 위를 80% 정도만 채운다고 한다. 오히려 인간들이 자기 배를 120% 채우고도 모자란다고 아우성을 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먹지 못하여 망하는 것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다가 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디 90점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상 모든 악한 유혹을 거절하는 용기를 갖고 이웃을 배려하는 여유를 가짐으로, 하나님께서 나머지를 채워주시는 복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윤희구 목사는 고신대와 고신대신대원을 졸업했다. 풀러신학대학원과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의 공동학위 과정인 목회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한국교회목회자협의회 공동 상임회장, 국제기아대책기구 서부 경남지회장, 창원 한빛교회 담임목사로 시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