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설교자

2017년 02월

“설교자는 가장 영광스러운 직분이다” - 송태근 목사(삼일교회)

설교와설교자 우은진 편집장

송태근 목사는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그리고 풀러신학교(D.Min.)를 졸업했고, Golden Gate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했다. 전통 교회였던 강남교회에 부임해 제자훈련 모델 교회로 성공적인 정착을 시킨 뒤, 2012년 삼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다. 교회갱신협의회 공동대표와 서울 CAL-NET 대표로도 섬기고 있다.





일 시: 2017년 1월 9일
장 소: 삼일교회 목양실
인 도: 김지혁 목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사랑의교회)
정 리: 우은진 편집장(월간 <디사이플>)


<디사이플>은 2017년 ‘설교와 설교자’ 코너를 통해 한국 교회의 존경받는 원로 목회자를 비롯해 자신만의 설교 특징을 가진 목회자들을 매월 만나 그에게 설교란 무엇이며, 설교 준비 과정, 설교의 영향력 등에 대한 담론을 듣고자 한다. 그 두 번째 시간으로 강해설교자로 잘 알려진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를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인 김지혁 목사가 만나 봤다. <편집자 주>


김지혁 목사 ‘설교와 설교자’ 두 번째 대담자로 모시게 돼 영광입니다. 요즘 한국 교회는 설교 방법론보다 설교 신학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설교는 과연 무엇이고, 강해설교의 독특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송태근 목사 박희천 목사님에 이어 인터뷰하는 게 부담스럽다. 설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처지인지, 무엇이 옳은 설교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설교에 대해서는 갈수록 길이 안 보인다.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신학이라는 학문이 현장 목회와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목회 현장에 들어와 여러 가지 다양한 현장을 만나보니 설교 신학의 절대적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보통 ‘설교’ 하면 내용, 전달력, 성령의 은혜, 설교자의 진정성 등 3~4가지 요소를 말하는데, 무엇보다 설교자가 갖고 있는 해석의 틀이 가장 중요하다. 현장을 다양하게 접하다 보니, 신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목회 현장이 뒤틀리거나 흔들리게 된다. 눈에 보이는 차이는 빨리 수정할 수 있지만, 안 보이는 차이는 긴 숨결 가운데 10~15년 후에나 열매가 나오니, 그때 가서는 수정이 불가능하고 서로 힘들어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신학이 중요하다는 것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삼일교회는 2016년부터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의 설교 사역을 돕는 사역의 첫 단계로 ‘오르도토메오(?ρθοτομ?ω) 설교 아카데미’를 시작하게 됐다. ‘오르도토메오’는 ‘옳게 분별하다’, ‘길을 바르게 내다’라는 의미의 헬라어로, 이 아카데미는 신학적 빈곤을 겪고 있는 일선 목회자들에게 양질의 신학적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역이다. 솔직히 나는 절대적인 설교 방법론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체적으로 강해설교를 강조하는데, 성경 텍스트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감동적인 스토리나 설교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성경이라는 텍스트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게 한다. 내가 총신대학교를 졸업할 때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는데, 바로 디모데후서 2장 15절 말씀이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마지막 칠판에 백묵을 놓으시며 캠퍼스를 떠나는 후학들에게 노 교수가 전해 준 성경의 한 구절의 전율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학부 졸업 후 평생 암송하게 됐다. 나는 오늘도 이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살고 있다.


김지혁 목사 목사님의 설교에 영향을 준 사람은 어떤 분입니까?
송태근 목사 내가 설교자가 된 과정에 영향을 주신 분들이 계신다. 먼저 지난 연말 구순을 맞은 박희천 목사님의 따뜻한 그늘을 잊을 수 없다. 내수동교회에서 사역하던 시절 박 목사님의 서재가 옥상에 있었는데, 바로 그 서재 옆에 대학부실이 있었다. 목사님의 서재가 통유리 구조라 커튼을 걷으면 서재 안을 볼 수 있었다. 소파에 구부리고 기도하시는 모습이라든가, 평생 그분의 습관이었던 헬라어, 히브리어 서적을 읽으시던 모습은 젊은 내게 강한 인상으로 각인됐었다. 목사님은 내게 ‘설교자는 성경에 능한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을 심어 줬다. 목사님은 주일 설교나 심지어 부흥회에서도 설교 시간이 딱 15분이다. 예화도 사용하지 않으시고, 성경으로만 설교하셨다. 당시 내수동교회 대학부 시절, 오후 시간에는 성경문답 시간이 있는데, 성경에 대해 평소 궁금하던 것들을 질의했다. 그런데 어떤 질문을 해도 목사님은 성경책도 안 보시고, 즉각 대답하셨다. 그때 나는 ‘저 정도로 성경에 능숙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내가 설교자가 된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또 한 분은 바로 고(故) 옥한흠 목사님이시다. 옥 목사님께서는 설교를 통해 성경 본문에 집착하며 텍스트에 대한 경외감을 보이셨다. 또한 설교자로서의 철저한 준비 자세, 시대를 바라보는 진정성, 그 진정성에서 나오는 전달 능력 등은 어찌 보면 설교의 결벽증에 가까웠다. 나는 설교자로서 그분의 모습에 1/10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옥 목사님은 지금의 내 모습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신 분임에는 틀림없다.


김지혁 목사 설교 신학과 관련해 ‘정말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송태근 목사 나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성경에도 그런 예증이 있지만, 시대마다 청중은 바뀌어도 성경 주해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진의를 바르게 선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모든 설교가 그렇지는 않다. 설교자의 자의적 해석이 들어간 설교나 엉뚱한 적용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다. 설교자가 옥석을 가려낸 한 편의 설교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목회자가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나는 설교자라고 정의하고 싶다.
설교는 성경에서 시대와 문화의 차이를 걷어내고, 텍스트가 갖는 본의를 오늘의 청중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설교자들은 이런 확신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설교자들 가운데에서도 성경관에 대해 흔들리는 이들이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대한 설교자의 확신이 없으면 그가 전하는 말씀은 굉장히 위험하다. 설교자는 성경이 영광스럽고 권위 있으며 절대성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히브리서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말씀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시고” 등의 표현이 많이 나온다.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은 올해는 설교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정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김지혁 목사 그러면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송태근 목사 나 역시 오래전 옥한흠 목사님께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옥 목사님의 답변이 아직까지 오랜 여운으로 남아 있다. 당시 옥 목사님께 “설교자로서 본인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라고 질문하니, “나는 설교를 통해 성도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2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같이 흠 많은 종이 매주 영광스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자체가 영광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아, 설교자의 몫은 여기까지구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구나’, ‘설교자는 성도의 변화라는 목표와 기대를 갖고 설교를 해야 하지만, 설교 자체가 말씀의 역사, 성령의 역사구나’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김지혁 목사 목사님의 30대, 40대, 50대 설교 여정을 듣고 싶습니다
송태근 목사 하나님께서 설교자로서 30대, 40대, 50대 때 나를 사용하셨던 목적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이 대별로 신학적인 틀과 성경의 관점,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많이 달라졌다. 30대 때는 성경을 정말 잘 알고 싶었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한다는 곳은 모두 찾아다녔다. 당시 두란노가 신촌 사무실에서 시작됐는데, 월요일마다 하용조 목사, 홍정길 목사, 박영선 목사 등 여러 강사들이 돌아가면서 강의를 했다.
40대 때는 본격적으로 목회 현장에서 뒹굴던 시기였는데, 언젠가 문득 답답함을 느꼈다. 성경을 읽을수록 내용은 알겠는데, 정작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더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 앞에서 많이 고뇌했다. 그러나 그 답 역시 성경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었고, 다시 성경의 자리로 돌아가게 됐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치열한 목회 현장으로 들어왔기에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더욱이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몰랐다. 신학은 공부했는데, 인간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40대를 마무리하면서 사람의 죄성과 부패, 무능력, 그 해결책도 성경에서 찾게 됐다.
50대는 설교의 양태가 인간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에 대해 눈을 뜬 시기다. 성도들이 살고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라는 틀이 만만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설교자로서 매일 전쟁을 겪고 있는 성도들의 삶이 어떻게 말씀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해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기독교 세계관’이 문제였다. 결국 성도에게는 삶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성경적 사고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교회 내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개설했다. 되돌아보니 설교자로서 20~30년이 훅 지나갔다. 뭘 좀 느끼는 게 있으면 금세 10년이 지나간다. 사람이 한두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해 놓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인생이 되는 것 같다.


김지혁 목사 설교자에게 필요한 성품과 자질은 무엇입니까?
송태근 목사 설교자의 자질과 성품은 천성이 아닌 신앙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리더십도 신앙에서 나온다. 옥한흠 목사님으로부터 그런 면을 많이 봤다. 목사님은 은퇴 후에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면이 있으셨지만, 한창 때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셨다. 화가 나실 때는 주변에 벼락이 떨어졌다. 목사님에게서 냉정하고 차가운 면을 봤지만, 동시에 교회 전체를 이해하고 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가슴을 지니신 면도 목격했다. 그러다 그분의 리더십과 설교자로서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나는 그 해답을 그분의 인격과 성품이 아닌,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서 찾았다. 옥 목사님은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만회할 기회도 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하실 일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분의 신앙이었다. 옥 목사님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주권을 인정하셨다. 그것을 본 후 나는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김지혁 목사 젊은 목회자들이 닮고 싶은 설교자로서 송태근 목사님을 손꼽는데, 설교 준비 과정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송태근 목사 나는 성경 본문을 선택할 때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구약 설교가 한 번 끝나면 신약으로 넘어간다. 구약의 책들은 일반적으로 길기 때문에 중간에 끊어 가기도 한다. 주일예배 설교로 창세기를 설교하던 중 11장으로 끊어 지난주부터는 히브리서를 설교 본문으로 선택했다. 설교 준비를 할 때마다 시대적, 교회적인 상황을 고려한다. 가장 먼저 설교자로서 착수하는 작업은 주해 작업이다. 주해는 원문의 단어, 의미적, 문법적 맥락이라든지 원전 분석을 탄탄히 해야 전체 텍스트가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그 후 다섯 가지 렌즈를 통과시키는데, 주해 과정이 끝나면 그 본문의 정치적 상황, 청중의 상황 등을 살피는 강해설교를 준비한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내가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런 설교 준비 과정은 어떤 본문이든 한 번도 비껴간 적이 없다. 준비한 설교 원고는 보통 A4 8~9장이 된다. 이렇게 원고가 나오면 과거에는 그 내용을 다시 종이에 5번씩 적었다. 설교 원고를 안 보고 암기해 설교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이런 작업이 많이 줄었다. 아예 A4 한 장에 설교 내용을 요약한다. 설교 요약본 한 장을 주일 강대상에 갖고 올라간다. 그것 역시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설교자는 원고에 매이면 안 된다. 설교를 하면서 청중과 반드시 눈을 맞춰야 한다. 설교를 하면서 설교자가 청중과 시선을 붙잡지 않으면, 설교의 전달력에 많은 감점 요인이 된다. 왜냐하면 청중은 너무 다양하고 엄청난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간다. 주일예배 때 한 번의 설교를 통해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을 설교 본문에 어떻게 집중시키느냐는 설교자가 그들의 시선을 붙잡는 것에 달려 있다. 그러려면 주일 강단에 선 설교자는 원고를 보지 않고도 설교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나는 일주일의 목, 금, 토요일 등 3일을 온전히 설교 준비로 시간을 투자한다. 목요일까지는 주해 작업을 마치고, 금요일까지는 원고 작업을 끝낸다. 토요일에는 워밍업으로 참고 자료를 더 찾는다. 이렇게 금요일부터 주일 아침까지는 그야말로 목양실에서 두문불출한다.


김지혁 목사 담임목사에 비해 부교역자들은 설교 준비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또 담임목사도 심방과 행정 등의 일정으로 바빠 다른 사람의 설교를 참조하거나 표절 설교를 해서 문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미국 교회는 표절 설교에 엄격한데, 한국 교회는 관용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설교가 본인의 묵상 결과가 아닌 과도한 참조에서 나온 표절 설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송태근 목사 한국 교회의 목회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교 표절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한국 교회에는 설교자가 해야 할 설교가 너무 많다. 부교역자들에게 설교 준비 기간을 배려하는 교회는 별로 없다. 삼일교회는 부교역자들이 설교를 맡은 경우, 모든 사역 스케줄을 설교에 맞추라고 조언한다. 목회자는 설교 잘하는 게 본업이라고 강조한다. 설교 표절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너무 좋은 설교 내용이 있어 목회자로서 성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경우다. 그럴 때는 출처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좋은 문장이나 자료의 경우 설교자로서 욕심이 생길 때가 있지만, 원 저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윤리성과 예의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진짜 표절의 문제는 설교자로서 노력의 과정 없이 무작위로 베끼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엄격한 잣대를 통해 표절 시비를 가려야 한다.


김지혁 목사 많은 목회자가 삼일교회 부교역자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담임목사에게 설교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부교역자들에게 설교 멘토링을 해 주기도 하는지 궁금합니다
송태근 목사 팀 켈러의 책에는 “내 목회의 첫 번째 대상은 부교역자들”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한국 교회 문화에서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간의 접촉점을 갖기가 굉장히 힘들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간에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축구나 탁구 등 스포츠를 통해서라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내 첫 번째 목회 대상이 부교역자라는 생각 하에 그들의 설교 멘토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솔직히 잘 안 돼서 그렇지, 자주 도와주고 싶다. 전에 강남교회에서는 전체 교역자들의 설교를 같이 보면서 내용이나 스타일, 말투, 어감까지도 가슴 아플 정도로 서로 지적해 주고 격려해 주는 자리를 가졌었다. 젊을 때는 야단을 맞아도 회복할 시간이 있다. 그러나 50대가 되면 지적해 줄 사람도 없고, 회복할 내성도 없다.
그래서 젊은 부교역자들에게는 그들이 듣기 좀 불편하더라도 혹독하게, 때론 가슴 아플 정로로 지적을 해 준다. 최근 삼일교회에서도 오르도토메오 아카데미 세미나 과정 중 마지막 시간에 ‘설교 클리닉’ 코너를 넣었다. 설교 클리닉 시간은 설교 전달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들이 자기 설교를 녹화해 와서 내가 미리 보고 설교 멘트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설교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지난번에 어느 젊은 설교자에게 따끔하게 조언을 했더니, 많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나 한참 후, 나의 신랄한 비판이 오히려 고마웠고 용기가 났었다고 전해 왔다. 전혀 성경 주해가 안 돼 있고, 성경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경우 의도적으로 혹독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설교자의 언어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느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판가름이 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두려운 마음으로 설교 준비를 한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설교 실습보다는 개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부교역자들의 설교를 멘토링해 주는 작업은 어느 정도 필요할 것 같다.


김지혁 목사 미국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의 설교를 평가해 주고, 성도들이 긍정적인 설교 피드백을 해 주기도 하는데, 한국 교회에서도 이런 상황들이 적용 가능할까요?
송태근 목사 한국은 청중이나 문화가 달라 아슬아슬한 부분이 있는게 사실이다. 내 경우 부교역자들 가운데 4~5명이 내 설교를 평가하고 피드백해 주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때때로 주일예배 1부 설교가 끝나면 몇몇 교역자들로부터 메신저로 설교 피드백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면 가끔 따끔한 조언이 날라온다. “목사님, 그 내용은 빼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정보는 틀렸습니다”, “말씀에 무리가 있습니다”, “주해가 잘못됐습니다.” 이런 피드백은 곧바로 2부 설교 원고에 반영돼 수정된 설교로 진행된다. 나로서는 그런 피드백이 고마울 따름이다. 삼일교회 부교역자 중에는 나보다 실력이 좋은 이들이 많다. 그런 설교 피드백 그룹을 만드는 것이 목회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하고 바람직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룹조차 없으면 담임목사에게 작은 조언도 할 수 없는 구조가 돼 버린다. 그리고 담임목사는 그런 설교 피드백 그룹의 비평을 온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그룹의 존재 자체가 필요 없게 된다. 물론 이는 많은 인적 자원을 가진 대형 교회 담임목사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교회든 담임목사의 설교를 피드백해 줄 건강한 그룹을 만드는 것은 요즘과 같이 청중의 설교 눈높이가 높은 시대에는 필수적인 일이다.


김지혁 목사 송 목사님의 설교는 문학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습니다. 성경 본문의 진의를 드러내기 위해 신중한 단어를 선택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시는 부분이 엿보입니다. 이런 부분에 목사님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송태근 목사 내 설교들이 성경에 묻혀 있는 내용을 이야기화한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이는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조심스럽지만 내 설교가 문학적이고 상상력,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의 개연성과 맞닿은 경험들이 있다. 한때 시각 장애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었는데, 그들에게 “불이 활활 탄다”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할 때가 있었다. 불이 타는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다 보니, 일반인들의 언어로는 설명이 안 됐다. 그래서 같은 성경을 가르치더라도 그들을 대상으로 가르칠 때는 텍스트를 이미지화해야 했으며, 좀 더 구체화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도록 설명을 해 줘야 했다. 맹인교회의 설교자로서 10여 년 동안 함께한 이 시간이 내게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그 경험을 내 설교에 감수성, 상상력, 문학성을 향상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것 같다. 또한 설교자의 언어 선택은 중요하다. 어휘력을 늘리라는 선배 설교자의 조언에 공감한다. 자기 생각과 말을 글로 써 본 사람은 말만 하는 사람과는 확실히 다르다. 글로 써 본 사람은 말할 때 어휘 능력이 향상되고, 언어 전달력도 커진다.


김지혁 목사 성경 본문의 이미지화를 말할 때 본문의 장르를 중요시하시는 것 같습니다. 설교자들이 장르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편 설교, 서신서 설교 등 패턴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다양한 장르가 목사님께서 설교 준비를 하시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요?
송태근 목사 성경은 역사와 문학 등 장르를 통해 쓰인 책이다. 거기에 신학이 얹어진 것이다. 역사와 문학, 신학이라는 장르는 설교자가 이해하는 데 중요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설득하기 위해 말씀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해시키기 위한 수사적 방법이 많이 담겨 있다. 또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다양한 문학 장르를 통해서 말씀을 드러내기도 하셨다. 따라서 유대문학, 묵시문학, 시편 등은 그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성경 저자가 따로 그런 학문을 배웠다기보다는 오랜 시간 성경이 읽히다 보니 장르가 다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성경의 저자는 청중과 시대의 정황 그리고 개인의 달란트에 따라 장르를 선별해 기록했다. 그래서 성경이 쓰여지던 시대의 제1 청중에게는 장르의 벽이 그리 높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신학적 작업으로 장르별 구분이 정확히 이뤄지지 않으면 설교자는 설교 작성 시 문단나누기 수준에만 머물게 된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편 설교를 하면 3대지로 나눠 하다 보니, 시편 속 시인의 마음이나 이미지가 전달이 안 되는 한계가 있었다. 요즘은 설교자들이 그런 것까지 고려해 설교하는데 바람직한 것 같다. 솔직히 설교자에게는 시편 설교가 가장 힘들다. 시편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을 모르면 해석에 혼란이 오고, 시편의 구속사적 관점도 많다. 127편 같은 경우 그리스도의 구속을 설명하는 내용이 많은데, 가정의 달에 주로 설교하는 본문이 되는 적용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김지혁 목사 교회에는 여러 사역이 있는데,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송태근 목사 나는 설교가 100이라고 본다. 사역도 100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몇 대 몇으로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내게는 ‘옥한흠 목사 비망록’이 있다. 생전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 중 옥고와 같은 말씀을 적어 둔 어록이다. 옥 목사님은 “목사의 리더십은 강단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너무 중요하다. 이는 설교가 전부라는 뜻이다. 언젠가 누군가 옥 목사님께 “사랑의교회가 제자훈련으로 부흥했다고 보십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천만에, 사랑의교회는 설교로 부흥했다고 봐야 해”라고 답하셨다. 본인의 설교보다는 설교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교회의 리더십은 강단에서부터 시작된다. 설교자로서 설교할 수 있는 위치에 대한 영광스러움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설교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것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그 권위에 맞게 성실히 임했으면 좋겠다. 물론 설교자는 영광스럽지만 설교 준비는 고통스럽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고 설교 준비도 갈수록 힘들다. 가끔은 설교 준비가 너무 부담스럽다 보니, 빨리 은퇴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옥 목사님께서도 65세 조기 은퇴하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설교 준비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나 역시 설교자로서 역량이 안 되는데, 설교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게 힘들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직분 중에서 이것만큼 영광스러운 직분은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설교하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설교하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임을 확신한다. 설교자로서의 노고는 훗날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것 같다.


김지혁 목사 삼일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청중의 변화된 모습은 무엇입니까?
송태근 목사 올해로 삼일교회에 부임한 지 4년 반이 됐다. 그동안 많은 것이 변화됐다. 원래 삼일교회 성도들은 좋은 설교 청중이다. 무척 순종적이고 말씀에 잘 반응한다. 솔직히 내 설교가 달콤한 스타일이 아니기에 설교자와 청중 간 합을 맞춰 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1년이 넘어가니, ‘아, 성경을 정말 알아야겠다’, ‘성경을 배워야겠다’라는 성도들의 고백들이 들려왔다. 그것은 단기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다. 나는 내 설교를 들은 삼일교회 청중이 성경에 대한 갈급함을 갖게 된 것을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주일 저녁예배 시간에 청중들이 보이는 반응은 설교자로서 큰 위로가 된다. 나는 말씀에 대한 그들의 갈급함이 예쁘게 보인다. 또한 그들에게서 말씀에 대한 배고픔이 보인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설교 준비를 한다.


김지혁 목사 목사님의 설교 중 베스트로 꼽히는 설교는 무엇이며, 기도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송태근 목사 과거 디모데후서 4장 6~8절을 설교했던 ‘백조의 노래’라는 설교를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이 주제설교는 신학생들에게 많이 했던 설교다. 이 본문은 설교의 울림이 나 자신에게도 컸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또 설교를 하면서 바울의 심정을 그대로 공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 새소리를 흉내 내면서 설교를 해서 청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오후 9시 자고, 새벽 2시면 깬다. 곧바로 교회로 가서 새벽기도회 전후로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다. 인문학과 신학 관련 서적도 주로 이 시간에 본다. 자주 보지는 않지만 설교 준비의 정확도를 기하기 위해 『WBC 주석』이나 『그레고리 빌 주석』, 바이블웍스 프로그램 등을 주로 사용한다. 또 부교역자들과 『팀 켈러의 센터처치』를 중심으로 8주에 걸쳐 세미나를 열기도 했고, 팀 켈러의 책들에 요즘 푹 빠져 있다. 이 새벽 시간이 가장 집중이 잘되는 시간이다. 본당 옆에 강사 대기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기도실에서 새벽에 주로 기도를 한다. 모든 일은 기도 없이 이뤄지지 않는데, 설교 역시 기도가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