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TIP

2012년 02월

초보 담임목사, 개척의 바다에서 살아남기

제자훈련TIP 김일영 목사_ NEXT사랑의교회

개척을 준비하며 들은 이야기 중에 ‘코끼리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탄 버스가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길 한복판에 코끼리 한 마리가 주저앉아 그 좁은 길을 오도 가도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가이드가 내려가 막대기로 쑤셔보고, 사람들이 소리도 질러보고 얼러도 봤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목사님이 내려 그 코끼리에게 한마디 속삭이자, 기겁을 한 코끼리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벌떡 일어나 도망치는 것이다. 놀란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다. 목사님의 대답은 이랬다. “그냥 한 마디 했죠. 코끼리야! 나랑 개척 교회 할래?”
먼저, 코끼리도 도망가는 개척 교회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동역자들에게 존경한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진심이다. 사실 처음 부탁받은 글의 주제는 “개척 교회 목회자의 자기계발”이었다. 그러나 막상 지난 3년을 되돌아보니 자기계발은커녕 살아남는 것이 더 큰 숙제였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제 개척 교회 3년차인 목사가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들 앞에서 무슨 아는 척을 할 게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돌이켜보니 개척하고 나서 밤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늘 잠에 쫓기고 일정에 쫓기고, 마음 졸이며 살아왔다. 어느 날은 망망대해에 뗏목을 타고 헤매는 꿈까지 꾼 적이 있다. 이처럼 하루하루를 서바이벌 모드로 헤매는 현실에서 개척 교회 목회자의 자기계발을 말한다는 것은 너무 먼 이야기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통해 자기계발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개척 교회 목사라는 사실은 전적으로 인정한다. 내가 지난 3년 동안 가장 많이 깨달은 것은 나의 부족함과 그로 인해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개척 교회 현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큰 파도들과 싸울 때마다 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하루하루 절감해왔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자기계발 이전에 생존을 위한 지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 글을 통해 내게 닥쳤던 생존위기들과 그 위기 안에서 벌어진 실수와 부족함을 통해 배운 몇 가지를 나누고 싶다.
개척 교회 선배님들이 보시면 ‘그걸 이제 깨달았냐?’ 하고 웃으실 것 같지만 그래도 이제 막 개척 교회에 대해 꿈을 꾸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현실감 있는 조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었다.
개척 교회, 기도로 더 많이 준비했어야 했다. 말씀 준비를 더 많이 했어야 했다. 좀 더 다양한 부서와 장년목회 경험을 쌓아야 했다. 인격수양을 더 했어야 했다. 좀 더 치밀하게 개척 전략을 잘 세워야 했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당연한 것이라 여기서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오늘은 정말 뼈에 새겨서 이제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체험적 지혜 5개만 나누려 한다.

개척의 바다에서 살아남기1-소신을 가지고 끝까지 가라
개척 교회 현장에서 내게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들어오고 나가는 성도들에 대처하는 것’이었다. 성도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가지고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개척 교회 안에는 크고 작은 파장이 생긴다. 함께 있던 개척 멤버들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갈 때 그 아픔은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정이 많고 사람을 잘 믿는 나의 성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번 그런 들고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정말 힘들었다.
수평이동 한 성도들 중에는 교회를 자기 식으로 이끌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안 될 때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나가기도 했다. 그 아픔들을 통해 교회는 나가는 사람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잘못 들어온 사람 때문에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개척 교회 목사는 누구보다 분명한 소신이 있어야 됨을 배웠다. 누가 뭐래도, 한 명만 남아도 이 길을 간다는 자신만의 목회철학과 로드 맵이 있어야 함을 배웠다. 그 누구보다 우리 교회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열심히 섬기고 있다는 거룩한 자부심과, 이 교회를 지키는 데 목숨을 걸겠다는 소신이 있어야 함을 배웠다. 몰려드는 파도 속에서 끝까지 키를 붙드는 선장의 길을 가라. 마지막 한 사람의 관객이 남는다 해도. ‘The Show must go on!’

개척의 바다에서 살아남기2-인사(人事)가 만사더라
‘세우기는 쉽지만 내리기는 어렵다.’ 인사 부문은 내가 가장 많이 실수한 부분인 것 같다. 개척을 하기 전 15년의 목회 기간 동안 나는 사람들을 다 좋게 보고, 쉽게 믿고, 쉽게 맡겼다. 그러나 개척 교회 현실에서 한 번의 인사 실수는 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일꾼들이 제몫을 하게 될 때까지 키우며 기다려야 하는데 개척 교회에서는 그게 힘들다. 당장 일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익은 사람들을 세울 수밖에 없고 그 대가는 너무나 크다. 그렇다고 목사 혼자서 다 하거나 특정한 일꾼들만 일을 하다 보면 지쳐버린다.
그런데 개척 초기에는 당장 보기에 괜찮은 사람과, 가면 갈수록 괜찮은 사람들의 차이를 볼 줄 몰랐다. 적어도 사계절을 지나봐야 사람이 보인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교회에 교역자나 리더 한 사람이 잘 세워지면 순풍이 불고, 잘못 세워지면 거센 폭풍이 불 수도 있다. 세우기는 쉽지만 내리기는 힘들다. 언제 누구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오래 심사숙고하고, 주님의 지혜를 구하며 조심조심 가는 길밖에는 없는 것 같다.
 
개척의 바다에서 살아남기3-비교의식에서 벗어나라
 ‘비교는 바보들의 놀이!’ 개척 교회를 하면서 또 하나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비교의식이다. 주변의 잘되는 다른 교회와 비교하고, 나보다 잘하는 목회자와 비교하고, 우리 교회 교인과 다른 교회 교인을 비교하고…. 이렇게 비교하다 보면 갈 길을 잃고 무너지기 쉽다.
비교적 비교의식 같은 것에서 자유롭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순간순간 닥쳐오는 공격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비교의식은 수렁과 같다. 여기에 잘못 빠지면 빠져나오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진한다. 
나 같은 경우 이 유혹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 없어서는 안 되는 감초 같은 교회를 꿈꾸는 것’으로 이길 수 있었다. 마차와 말을 연결하는 고리쇠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게 없으면 말도 마차도 힘을 못 쓴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은 별것 아니지만 그게 있어야 우물물을 펑펑 쓸 수가 있다.
우리 교회가 우주적 교회라는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한 조각 퍼즐로 우리의 몫을 다 하는가 못하는가가 중요하지, 다른 교회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 내가 내 강점을 통해 최선을 다해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하지, 모든 사람보다 뛰어나야 할 필요는 없다. 비교는 바보들의 놀이, 최선은 우리의 권리, 결과는 하나님의 뜻, 감사만이 행복의 열쇠다. 개척을 시작하려면 비교의식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야 한다.

개척의 바다에서 살아남기4-페이스를 조절하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1등이 아니라 완주다.’ 교회 개척이 정말 소모전이라는 것은 요즘 내 머리를 보면 실감이 난다. 개척하기 전, 개척 교회 선배 목사님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참고로 우리 교회는 남가주사랑의교회가 킹덤드림 프로젝트로 세운 개척 교회 중 5번째이고, 4명의 개척 선배들이 있다. 그때 농담처럼 나누었던 말이, 개척 교회를 하면 머리가 빠지는 훈장과 머리가 세는 훈장 중 하나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불과 3년도 안 되어 내 머리는 참 많이 세어버렸다. 그런데 나는 머리가 빠지는 훈장도 함께 받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개척을 하면서 전력질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밤이고 낮이고 몸바쳐 사역하며 앞만 보고 뛰면 되니까. 그러나 그러다 보면 먼저 건강이 못 따라준다. 이어서 가족들이 못 따라온다. 그리고 교인들이 저 멀리 뒤처지면서 교회가 못 따라오는 결과가 생긴다. 개척을 하면서 또 하나 어려운 것이 바로 이 페이스 조절이었다. 개척 교회 목사가 뭔가 안 하고 있으면 죄책감이 든다는 말을 내가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더 빨리 부흥시키고자 하는 내 안의 욕심과 싸워야 했다.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겠다는 선택을 어렵지만 해야 했다.
개척 교회 목회자의 자기계발이 사치스러운 말처럼 들리지만 꼭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사역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1등이 아니라 완주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어떻게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전력질주만 해서는 절대로 마라톤을 완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족과 교인들을 데리고 가려면 때로는 더디 가더라도 페이스를 늦추어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급한 일이 눈앞에 닥쳐 있더라도, 기도원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독대하며 멈춰서는 시간이 필요한 때가 있다. 내 그릇만큼밖에 자라지 않는 우리 교회를 위해 과감히 나를 키우기 위한 자기계발 투자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 막 개척 교회를 시작하려는 분들이 스스로에게 꼭 물어보셨으면 하는 것이 있다. 나는 개척을 정말 좋아하는가? 잘할 자신이 있는가? 이 길이 나만이 아닌 정말 나의 성도에게도 유익한 길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조언해 드리고 싶다. 페이스 조절이 핵심이다.

개척의 바다에서 살아남기 5-아버지로서 성도들을 대하라
이민 목회 현장은 어떻게 보면 참 척박한 곳이다. 서로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곳이다. 다시 돌아보면 그동안 성도들을 형같이 동료같이 대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일대일로 만나 논리적으로 설득할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곤 했다. 상식과 논리에 맞게 결정했고 따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게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선배 목사님의 멘토링을 통해 ‘아비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대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 뒤로 정말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하지만 나도 변하고 교인들도 많이 변했다. 전에는 상식과 논리로 설득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아버지로서 대하면 그냥 풀리는 것이 많았다. 
전에는 ‘나의 사리에 맞는 결정에 왜 못 따라올까?’ 하며 성도들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우기는 성도들에게 져주기도 하고, 우리 성도들에게 유익하다면 양잿물도 마셔 보겠다는 각오를 한다. 물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신앙과 목회철학과 교회론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니까 우리 성도들에게 유익하다면 많은 부분을 바꿀 수 있겠다는 유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나도 배워가는 중이기에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내게 부족한 부분이 정말 많이 채워지는 계기였던 것 같다.
2009년에 개척을 준비할 당시 옥한흠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의 개척 구상과 진행 상황을 묵묵히 들으시던 목사님께서 한 마디 하셨다. 그 말씀이 3년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시간 정말 부족함 투성이었던 나, 그래도 살아남아서 감사했던 나, 그리고 이제 더 잘해보고 싶은 나에게 지금까지도 동일하게 울리는 그 한 마디. “이제 너만 잘하면 되겠네. 잘해라!”

 

김일영 목사는 연세대와 총신대대학원을 졸업하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교육심리학 박사를 받았다. 서울 사랑의교회, 남가주사랑의교회 부교역자를 거쳐, 현재 미국 얼바인에 있는 NEXT사랑의교회 담임목사와 Fuller신학교 논문지도교수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