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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성도 이기혁 원로목사_ 대전새중앙교회
바람이 휘돌아가는 길목에서 가을을 만났다. 어젯밤 언덕을 넘은 강풍에 힘없이 떨어진 나뭇잎들이 어지러이 처박혀 있다. 더러는 흩날리다 서로 엉켰고, 더러는 길가에 엉거주춤한 나그네처럼 서성이고 있다. 가을이 오는 길목엔 의레 찬바람이 분다.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만난 햇살은 찬바람을 품는다. 조금 있으면 그 뒤를 이어 겨울이 고갯길을 넘어올 것이다. 그래도 아침 빛은 수줍은 신부의 웨딩드레스처럼 화사한 빛줄기로 나를 맞는다. 언제나 그랬을 터인데 유독 금년 가을바람에는 씨알 같은 이야기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나날들의 연속이 겹겹으로 쌓여 세월을 이뤘을 터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세월의 책갈피 속에 곱게 새겨진 이야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들리지 않던 속삭임이 뉴런(neuron)에서 기어 나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40년 동안 갇혔던 골방에서 자유를 얻은 한 마리의 새처럼 하늘을 난다. 은퇴를 통해 내게 주어진 호사스런 보상인가 보다.
40년간 달려오다 처음 맛보는 여유
나는 토요일 오후가 홀가분하다. 아직 현역에 있는 동료들에겐 송구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자유다. 양 어깨에 무겁게 매달렸던 책임이 벗겨지던 날, 한순간에 무중력의 허공에 던져진 것처럼 자유는 고요했다. 이 고요함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 맛보는 환경이다. 지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