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성도 문형희 목사_ 인천 동암교회
2002년 11월 제54기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를 수료하고 ‘광인론’과 ‘교회론’을 새롭게 접하면서 비로소 목회철학이 세워졌다. ‘목회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바로 사역훈련 컨설팅에 지원했다. 당시 훈련을 인도해 주셨던 국제제자훈련원의 교역자들이 참석한 목회자들을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시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1년 동안 제자훈련을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2004년에 드디어 제자훈련생들을 인도하게 됐다.
새벽 닭이 세 번 울 때 통곡한 베드로가 되라
내가 인도한 훈련생들은 낮에는 직장에서 근무하고 퇴근한 후, 교회로 와서 함께 간단한 저녁을 먹으면서 훈련을 받는 여성 직장인 반이었다. 지금은 제자훈련 교재 1권부터 3권까지 모든 목차와 내용을 알고 있고, 또 인도하는 중에 어느 부분을 강조해야 하는지 몸에 익었지만, 훈련을 처음 시작하던 해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동네 도서관을 찾아 훈련생보다 더 열심히 선행 학습을 하곤 했다.
훈련생들이 질문할 때에는 그들의 눈에 시선을 맞추지 못했고, 학습한 대로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 질문을 할 때면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12명과 함께 시작한 제자훈련을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감사하게도 올해 16번째 훈련을 인도하고 있다. 어떤 해에는 섬기는 교회 형편상 3개 반을 인도하기도 했고, 또 어떤 해에는 사역반을 인도하기도 했다. 담임목사가 된 후에도 제자반을 3개씩 인도하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번은 제자훈련을 하던 중 한 집사님이 “목사님! 목사님은 제자훈련의 결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질문했는데, 그때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집사님, 베드로가 새벽 닭이 세 번 울 때 주님을 생각하며 통곡하지 않았습니까? 훈련을 받고 났을 때 베드로가 통곡하던 그 심정을 갖는 것이 훈련받은 자의 고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 같은 자를 불러 주셔서 제자훈련을 받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사실 이 고백은 내가 훈련을 받고 훈련을 인도하면서 느꼈던 솔직한 감정이었다. 부족하기가 한이 없는 자를 부르셔서 교회를 섬기는 직분을 주시고, 훈련생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목회자를 성장하게 한 제자훈련을 알게 하신 것은 얼마나 세밀하신 주님의 인도하심인가?
제자훈련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행복과 같다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의 심정을 ‘살얼음판 위를 걷는 행복’이라고 말씀하셨던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내게 제자훈련은 매년 살얼음판을 걷는 행복이었다. 평신도를 훈련시켜 주님의 제자로 만들고 교회의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 행복한 일이긴 하지만, ‘언제 잘못될까? 언제 위기가 찾아올까?’ 하는 염려가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훈련생들을 보면서 너무나 많은 도전을 받는다. 교재 예습뿐만 아니라 훈련 과정에서 요구되는 과제물들을 최선을 다해 준비해 오는 훈련생들의 모습에 놀랄 때가 많다. ‘과연 내가 평신도였다면 저렇게 열심히 준비해 올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작년에 훈련을 받은 한 집사님은 공단에서 제품을 조립하는 여성 근로자였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착실하게 과제물을 준비하며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한번은 왼쪽 팔 인대가 늘어나서 팔에 깁스를 하고 왔는데, 다음 주에는 오른쪽 팔에도 부상을 입어 양손에 붕대를 감고 모임 장소에 나타나셨다. 병원에서는 쉬어야 한다고 했지만 훈련을 이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출석했다면서 “목사님, 기록하는 숙제는 제가 손이 나으면 꼭 제출하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하고 훈련받는 모습을 보면서, 누가 인도자이고 누가 훈련생인지 혼동이 될 때도 있었다.
삯꾼이 아닌 참된 목회자로 살게 한 훈련생들
또 한번은 암 치료 후 5년이 되지 않아 아직 암이 나았다는 확정 판단을 받지 않은 분이 제자훈련에 지원을 했다. 제자훈련 과정이 쉽지 않기에 훈련을 받아서는 안 되는 분에 가까웠지만, 지원하신 집사님은 자신이 죽더라도 훈련을 받아야겠다고 간절하게 요청하셨고, 결국 훈련에 동참하셨다.
집사님과 함께 “제자훈련 하면서는 아프지도 말고 죽지도 말자”라고 힘차게 외치면서 훈련을 시작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간혹 훈련 도중에 병원에 가셔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그런 날에도 결석하지 않고 훈련 장소에 나타나 엎드려서 훈련받던 집사님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아픔이자 자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훈련은 잘 마쳤고, 집사님은 순장으로 파송받아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가 3년 후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집사님을 생각하면 마치 내가 그분을 돌아가게 하신 것 같아 눈물이 앞을 가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분의 신앙생활에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제자훈련이었고, 그로 인해 성도들을 섬기다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이런 분이야말로 진짜 주님의 제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선배 목사님들에 비하면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인도자로서 내 지난 16년의 제자훈련을 돌이켜 보면, 솔직하게 훈련생들이 내 스승이 돼 주는 순간이 더 많았다.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 삶의 질고들과 영적인 갈망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훈련받던 훈련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실로 예수님을 닮은 나의 스승이었다.
‘저렇게 처절하게 훈련받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내가 어떻게 게으를 수가 있고 어떻게 삯꾼이 되겠는가?’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주는 스승들이다.
나는 지금도 훈련생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 때로 ‘어떻게 저런 성도를 내가 훈련에 참여하게 했을까?’라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게 하는 분들도 가끔 있지만, 그분들을 포함해 모든 훈련생들 덕분에 참된 목회자가 돼 가고 있음에 오늘도 감사하다.
문형희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미국 풀러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분당우리교회와 남가주 사랑의교회,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다양한 제자훈련 목회를 경험한 후 2015년부터 인천 동암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