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깨운다 박정식 목사_ 인천 은혜의교회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갈망하라
얼마 전부터 설교 시간만 되면 쉼 없이 머리를 끄덕이던 형제와 예배 후에 우연히 만났다. 나는 형제에게 요사이 피곤한 일이 있는지, 아니면 건강에 문제가 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뜻밖에도 돌아온 답변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매일 큐티도 열심히 하고, 회사일로 지방에 다녀올 때면 방송으로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도 듣는다고 했다.
나는 내친김에 오늘 예배 설교 시간에 들은 말씀이 어떤 내용인지 물었다. 그러자 형제는 제대로 답을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나는 그에게 단호하게 충고했다. 강단 설교가 안 들리면 지금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니, 간절히 기도하며 어떻게든 듣기를 갈망하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안 되면 본당 맨 뒤에 서서 들으라고 했다. 진심을 담은 충고지만 형제에게는 지나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그에게 충고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청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영성이요, 신앙 수준의 척도라고 확신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말씀을 들을 때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나 청중에게 “들으라!”고 충고하시고 책망하셨다.
신앙인들은 개인의 영성 관리를 위해 큐티, 성경공부, 제자훈련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모든 신앙생활의 기본은 강단으로부터 들리는 말씀을 잘 듣는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큐티를 통해 지금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성경 말씀을 너무 주관적인 관점으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다.
예전에 순수한 신앙을 가진 성도 한 분이 기초 제자반을 하면서 기록했던 큐티 노트 내용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창세기 3장 7절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졌다는 구절에 대해 ‘아! 아담과 하와가 그전까지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구나’라고 이해하고 기록한 것이다. 그때 큐티 노트를 점검해 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순진해서, 혹은 너무 똑똑해서 자칫 성경 말씀을 자의적으로 이해하거나 감정적으로 접근할 위험성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소그룹 인도자가 견고하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 민감한 주제에 대해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때가 있다. 또한 말씀을 다르게 이해해 말씀에 대한 성찰과 적용보다는 서로간의 다름을 틀림으로 속단해 구성원과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소그룹 모임을 갖기 전에 옥토 같은 마음이 되도록 준비하기 위해서는 강단 설교를 통해서 내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점검해야 한다. 때로는 그 시간이 소그룹 모임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강단 설교에 집중하라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 목회자의 강단 설교가 잘 들리는가? 전에 내가 신앙생활을 했던 작은 교회 목사님은 인격적으로는 존경할 만한 분이셨지만, 말이 어눌해 주일 설교 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성도들이 달콤한 잠(?)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얼마간 졸다가 깼는데, 때마침 나를 바라보시는 목사님의 눈과 마주쳤다. 그때 느꼈던 송구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만큼 가슴에 새겨져 기도할 때마다 ‘제게 듣는 마음을 주셔서 목사님의 주일 설교에 은혜받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내게 임하는 소중한 은혜를 경험하게 되고, 지금까지도 ‘듣는 마음’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 이처럼 강단 설교의 질을 비판하기 전에 말씀을 들으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들으려고 준비하고 갈망할 때,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임재하신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4).
마틴 루터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설교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말했다. 또 존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음성이 사람을 통해 울려 퍼지도록 하기 위해 사람의 입과 혀를 구별하신다”라고 말했다.
목회자인 나도 설교를 들어야 하는 회중일 때가 있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 부흥 사경회가 열릴 때는 맨 앞자리에 앉아 말씀 듣기를 갈망하며 집중한다. 목회자인 내가 정작 듣는 마음이 없다면 그건 가슴을 쳐야 할 일이다. 말씀을 듣는 자들은 목회자든 성도든 의지를 힘써 가져야 들린다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