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큐티 박희원 목사_ 큐티연구소
훈련생들이 A, B, C형 큐티를 어느 정도 실습해 봤거나, 이미 기존에 성경 묵상에 대한 훈련이 어느 정도 돼 있어서 바로 D형 큐티 훈련을 시작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바로 ‘내용관찰’ 훈련이다. D형 큐티를 훈련시키는 목회자들 중에서 내용관찰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고, 연구와 묵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기초를 제대로 닦지 않고 건물을 세우는 것과 같다. 사실 묵상의 깊이는 얼마나 관찰이 잘돼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내용관찰이란?
내용관찰이란 성경 본문이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는 객관적 사실(Fact)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초점 맞추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본문의 줄거리, 뼈대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이다.
제자훈련 인도자는 훈련생들에게 내용관찰이란 ‘빼는’ 과정임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이때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뺄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여기서 사람은 책의 내용 전체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없으며, 성경 본문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모든 내용을 한꺼번에 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본문을 통째로 암송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큐티의 경우는 아주 전문적인 신학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본문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무난하다. 본문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 곧 요약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내용 일부를 생략하는 일을 동반한다. 생략된 부분은 이후 다른 방법으로도 묵상할 수 있으므로, 요약과 초점 맞추기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좋겠다.
내용관찰에 있어 자주 범하는 실수들
내용관찰은 언뜻 보면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엉뚱한 관찰을 하는 이들이 많다. 가장 많이 범하는 잘못 중 하나가 관찰 단계에서 바로 해석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다. 관찰을 하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큰 슬픔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고통으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다”(마 27:46)라고 써 놓는다. 본문에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 지르셨다는 내용밖에 없는데, 본문에 ‘슬픔’과 ‘고통’이 기록돼 있는 것처럼 적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자신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전혀 배제하지 못한 채 그대로 써 놓는 경우도 있다. 마태복음 2장을 관찰했는데 ‘동방박사 세 사람이 찾아와서’라고 쓰는 경우다. 본문에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라는 말이 없음에도, 동방박사는 세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본문의 뼈대를 잡지 못하고 지엽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것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오류다. 물론 전체 맥락을 파악한 후 소소한 부분까지 관찰한 것이라면 칭찬해야 하지만, 전체 맥락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몇 개의 단어나 표현에 집중하면 엉뚱한 묵상으로 빠지기 쉽다.
그래서 D형 큐티를 훈련할 때 내용관찰은 철저히 객관적이어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본문 내용을 요약해 설명하듯이 하되, 본문에 없는 내용은 첨가하지 않도록 주의시켜야 한다. 관찰과 해석을 혼돈하면 이후 연구와 묵상을 할 때 본문에 없는 내용을 묵상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내용관찰을 훈련하는 방법
내용관찰을 훈련할 때에는 ‘나무를 먼저 보고 가지와 잎을 보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일단 해당 본문을 3~4번 읽게 한다. 본문의 뼈대가 무엇이며, 어떤 분위기의 글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후에는 본문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해 보도록 해야 한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된 답을 못하거나, 한두 가지 인상적인 구절만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최대한 본문 전체를 효과적으로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도록 도전해야 한다.
이를 너무 어려워한다면, 단락을 나눠 본문을 각각 요약하게 하는 방법도 좋다. 일단 본문을 몇 개 단락으로 나누고, 각 단락을 한 문장이나 한 구절로 요약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약된 내용들을 모아 설명하게 한다. 예를 들어, 빌립보서 1장 12~18절은 옆의 표와 같이 나눠 요약할 수 있다.
표의 각 요약 부분을 이어 붙여 “바울이 매인 것 때문에 형제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됐다. 어떤 이들은 바울에 대한 사랑으로 복음을 전파했지만,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했다”라고 하면, 이 본문에 대한 충분한 요약이 될 것이다.
이렇게 요약한 후에는 본문의 특이 사항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반복되는 단어나 대조되는 단어, 이미지, 표현법 등을 찾아내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빌립보서 1장 12~18절 본문을 다시 예로 들면 그리스도, 전파, 매임 등의 단어들이 반복되고 있고, ‘매임’과 ‘전파’가, ‘다툼’과 ‘사랑’이, ‘겉치레’와 ‘참’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특이 사항을 찾을 때 중요한 것은 지금 다루고 있는 본문 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1장을 묵상하고 있는데 이후에 나오는 본문과의 연관성을 찾거나, 다른 서신서와의 관련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관찰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귀납적 묵상을 위해서는 어디까지가 관찰이고, 어디까지가 해석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렇게 본문의 줄거리와 특이 사항이 정리됐으면 이것을 기초로, 연구와 묵상으로 넘어간다. 훈련 목회자는 관찰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연구나 묵상도 엉뚱한 길로 오도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