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 교회에서도 목회자가 꼭 교회사역만 해야 한다는 통념은 깨졌다. 이런 고정관념을 전환시키는 데 앞장 선 이를 들자면, 직장사역자 방선기 목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거의 생소했던 시절부터 ‘직장사역’(business ministry)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선구자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그다. 직장이라는 미개척분야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직장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일깨우는 데 지금도 불철주야 고민하는 직장사역연구소 방선기 목사. 그가 직장사역자로서의 삶에 올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이에 대해서 방선기 목사는 젊은 시절 한 사람의 스승과 그가 일깨워 준 제자훈련 정신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성도교회 청년부 시절 만난 옥한흠 목사와 제자훈련에 기인했다. 그의 인생 방향을 바꿔 놓았던 이야기와 제자훈련에 대한 솔직한 견해들을 모래 속의 진주를 캐는 심정으로 다가가서 귀 기울여 들어 보자.
성도교회 대학부서 제자훈련이 처음 시작됐다
지금부터 30년 전 성도교회 대학부 시절로 되돌아가 보자. 당시 주일학교 교사를 맡고 있었던 방선기 목사는 주일학교 전도사로 부임한 옥한흠 목사가 대학부 창립에 관심이 많았던 것을 회고한다. 어느 날 옥 목사는 방 목사에게 성도교회에 대학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방 목사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 제자 삼는 첫 번째 단계였다고 한다. 당시 방 목사는 서울대학교 1학년이었고, 후배인 고3 학생인 라이브교회 박성남 전도사, 한인권 장로를 비롯해 나중에 합류한 이랜드 박성수 회장, 김병재 변호사, 한정국 선교사 등 이른바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 1기 정예부대를 하나둘 포섭하기 시작했다.
1970년 9월 성도교회 대학부의 시작을 알리는 광고가 나갔고, 합숙을 하면서 제자훈련이 시작됐다. 대학부의 핵심이 된 이들은 후배들에게 접근해 대학부의 멤버를 조금씩 늘려 나갔고, 마침내 성도교회 대학부는 대학생 1, 2학년이 주축이 되어 움직이며 부흥하게 됐다.
그때 방 목사는 네비게이토 선교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옥한흠 목사는 자신이 선교단체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방 목사로 하여금 네비게이토의 제자훈련을 잘 배워 오라고 당부했으며, 이것을 토대로 제자훈련 사역을 대학부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선교단체 사역이 교회 안에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고, 교회와 선교단체 간에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상태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획기적인 결단이었다.
그러나 선교단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교회 실정에 맞게끔 재창조해서 사용했다. 방 목사도 직접 청년들을 제자훈련하기도 했다. 훈련생들에게 교재와 암송카드, 성경 66권 주제 등을 담은 제자훈련용 패키지를 만들고, 제자훈련을 수료한 졸업생들에게는 당시 크루세이드 넘버(crusade number, 십자군 숫자)를 부여했다. 방선기 목사는 바로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 정예부대 크루세이드 넘버 1번에 해당하는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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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교회 상황에 맞게 적용된 제자훈련 방법들은 현재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제자훈련의 모태가 된 것들이 많다. 제자훈련 교재나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 때 다락방, 제자반, 순장반 참관 등도 모두 이때 실습된 아이디어들이다.
성도교회 대학부가 부흥하자, 주변교회 청년부에서 탐방을 많이 요청했었는데, 이때 옥 목사가 대학부 제자반을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대학부 회장을 맡았던 방선기 목사는 처음에 반대했었다고 말했다.
괜히 남 앞에 공개한다고 하면 혹시 성도교회 대학부의 모습이 과장되게 포장되지는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많은 교회가 도전을 받자 방 목사도 나중에는 지지하게 됐고, 그 결과 지금의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 때 다락방 참관이 이뤄지는 모태가 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방선기 목사는 옥한흠 목사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기존 선교단체의 제자훈련을 한국 교회 실정에 맞게 재창조하고 그것을 꽃피게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도교회 청년부의 제자훈련은 옥한흠 목사의 교회용 제자훈련 시스템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로부터 ‘직장사역’의 비전을 받았다
대학부 시절 옥한흠 목사는 청년들에게 전도와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동시에 학교 공부를 중요시해서 제자훈련 받는 청년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둘 것을 당부했다. 실제로 제자훈련 받은 많은 청년들이 모두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1차적으로 ‘캠퍼스 선교’(Campus ministry)를 중요시했는데, 이는 제자훈련 받은 청년들이 먼저 모범이 돼야 캠퍼스 선교도 잘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으로는 ‘비즈니스선교’(Business ministry)와 ‘세계선교’(World mission)도 똑같이 강조했다. 이것이 성도교회 대학부의 3M이었다. 방 목사에게는 옥 목사가 강조한 세 가지 중, ‘비즈니스선교’가 가장 크게 와 닿았고,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됐다.
방 목사는 “당시 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학교 공부에는 큰 열심을 내지 못했다”며 “대신 옥 목사님의 세 가지 강조점 중, 직장사역에 대한 비전을 받아 나중에 직장사역자 1호로 한국 교회를 섬기게 됐다”고 소개했다.
방 목사는 당시 외국에는 직장사역이라는 말이 없었으며, 옥한흠 목사가 ‘직장사역’(business ministry)이라는 말을 한국 교회에서 최초로 사용했고, 자신은 그 비전을 강하게 받아 직장사역의 꽃을 피우는 개척자가 됐다고 웃음지었다. 현재 미국의 경우는 직장사역을‘Marketplace’혹은‘Workplace Ministry’라고 부르지, business ministry라는 말은 없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후배를 제자훈련 하는 것과는 거리를 두게 된 방 목사는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사해 직장 안에서 6년간 열심히 일했다. 직장 안에서 방 목사의 성실한 일처리 능력이 인정받게 되자, 방 목사는 서서히 직장 안에 복음을 전하고 제자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방 목사는 “당시 옥한흠 목사님이 미국으로 유학가자, 직장 안 제자훈련에 대한 여러 가지 자문을 구하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대학시절에 제자훈련 받았던 학생들이 정작 직장 안에서 많이 헤매는 것을 목격한 방 목사는 열심히 전도하고 제자훈련해서 나름대로 열매를 거뒀다. 일하다가 시간만 나면, 직장 동료들에게 교회에 다니느냐며 묻고 사영리를 들고 전도했다. 이어 성경공부하자고 설득하고 제자훈련에까지 이르게 됐다.
직장 사역자로 개척활동을 하다
이때부터 직장이 사역의 홈그라운드가 됐다는 방선기 목사. 직장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장을 제자 삼는 영역으로 본 그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가르치고 전하는 사역을 확장해 나갔다. <직장전도 성경공부> 교재도 이때 만들었다.
퇴사 후 미국 신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논문 주제도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크리스천>으로 썼을 정도로, 한 방향으로 삶을 엮어 나갔다.
이후 1988년 두란노서원에서 3년 간 일한 그는 91년부터 지금까지 이랜드에서 사목으로 직장사역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92년에는 직장사역연구소를 세워 교회와 직장 속에서 직장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방 목사는“옥한흠 목사님이 대학부 시절 현장에서 변화된 영향력을 발휘하라며, 캠퍼스와 직장에서 제자 되는 삶을 강조했는데 내가 직접 이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고 웃음짓는다.
그가 직장에서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직장선교’라는 말은 있었지만, ‘직장사역’이라는 말은 없었다고 한다. 그가 직장사역을 시작하자 그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비슷한 사역을 하는 단체들이 많이 생겨났다. 기업인을 대상으로 하는 CBMC(한국기독실업인회),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BBB(직장인성경공부모임) 단체들이 그렇다. 방 목사는 기업인, 직장인 평신도들이 제자 삼는 사역을 좀더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미 다른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직장 안에서 직장에 대한 이해 수준의 강의는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훈련 받은 사람들에게 직장사역에 대한 강의를 하고 싶어 했다. 그래야 좀더 균형 잡히면서도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배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의 장, 이젠 세상 속으로 들어갔으면 한다
현재 방 목사는 제자훈련이 교회 안에서만 꽃필 것이 아니라, 직장과 세상에서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정말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직장 안에서도 그 영향력이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제자를 키우고 재생산을 하는데, 그 영향력이 교회 안에서만 멈춰 버리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는 것이다.
물론 제자훈련을 제대로 받고 변화된 사람은 가정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고, 교회에서도 평신도리더로서 열심히 봉사하게 된다. 또 직장 안에서도 영향력 있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방 목사는 그 영향력 있는 삶이 너무 교회 안에서만,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데만 집중되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 시점에서 방 목사는 제자훈련이 어디서 일어나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흩어진 교회로서 균형 있게 보는 시각(perspective)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가 자신에게 직장 속에서의 제자훈련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제자훈련은 어렵다. 시공간의 제약이 있고, 헌신도 교회 제자훈련과 비교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교회 목회자들의 이해와 관심 부족도 이를 더 힘들게 한다.
방 목사는 정말 제자훈련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직장 안에서도 이뤄지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빨리 바뀌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방 목사는 국제제자훈련원에서 교회와 더불어 직장 안에서도 제자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평신도가 직장에서 진정한 사역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도 제자훈련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동시에 직장에서도 제자훈련을 해서 교회 제자훈련에 참여하지 못하는 평신도 직장인들을 직장 안에서 직장인 평신도리더가 훈련시킬 때 시너지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방 목사는 지금까지 제자훈련이 교회 안에서 자리 잡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이제는 웬만큼 교회 안에 제자훈련의 토양이 잡힌 만큼, 직장 속에서도 제자훈련이 이뤄져야 하며 그 부분에도 시각을 넓혀야 할 시점에 왔다고 말했다. 교회로 데리고 와서 제자 삼는 것 못지않게 세상, 즉 직장에 가서 제자 삼는 사역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제자훈련이 교회 안의 프로그램으로 머물지 않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평신도리더들이 직장 안에서 사역하는 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는 제자훈련의 장을 예배당 안으로만 제한하지 말고, 세상 속에서도 예수의 야생마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의 수준과 제자훈련 다음을 고민한다
그의 삶에서 옥한흠 목사를 빼놓고는 지나갈 수 없다. 그에게 옥한흠 목사에 대한 단상을 물었다. 그는 선교단체의 제자훈련이 평신도들의 신앙에 도전을 주고 삶을 바꿨다면,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은 가장 까다로운 한국 교회 ‘목회자’의 목회철학과 삶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대학부 시절부터 옥한흠 목사를 봐 온 방 목사는 ‘치밀하고 철저한 분’이라고 평하며, 수련회 하나를 준비하면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옥한흠 목사,를 ‘앞서서 보는 선구자’라고 평하는 그는 나 자신도 앞서 보는 것은 하지만, 그것을 치밀하게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은 못했다고 자평하며 웃는다. 본인은 새로운 생각을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반면, 옥 목사는 새로운 생각을 할 뿐 아니라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분이라는 것이다.
신학교에서도 직장사역에 대해 강의하는데, 새학기부터는 특히 ‘일상생활에서의 신학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려는 그는 그런 면에서 직장사역의 새 영역을 만들어 놓지는 못했지만, 제자훈련이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강조해, 안 하는 것을 하게끔 하게 만드는 것이 제자훈련의 정신이라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저출산 현상이 사회문제화 되는 시점에서 방 목사는 아기를 많이 낳는 것도 제자훈련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들을 기쁘게 키워 주는 것도 제자훈련의 열매라는 것이다.
사교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제자훈련 받았지만, 학군 따라 이동하고 학벌 위주 사회 풍토에 편승한다면 올바른 제자훈련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는 제자훈련의 방향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까지 제자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며 계속해서 이슈를 만들어 갈 것을 주문했다.
요즘 그는 직장사역과 별도로 주일날 그의 집에서 ‘가정교회’를 4년째 인도하고 있다. 20명이 교회 멤버이다. 그는 가정교회도 획일화된 한국 교회 현실에서 다양성 측면에서 필요하고,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제자훈련의 다음 단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 중이다. 그것이 직장 제자훈련이든 가정교회든 말이다.
인터뷰를 마친 방선기 목사는 미처 이론화되지 못한 주제로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다며 멋쩍어 했다. 이랜드 사옥 한 편에 위치한 방선기 목사의 작고 검소한 방을 나오며 제자훈련 받은 1세대로서, 예수의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지금도 고민하며 실천하며 사는 그의 밝은 모습 속에서 제자훈련의 영향력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