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이야기 한미숙 사모_ 제주제성교회
나는 결혼 전 부요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이 지냈다. 그리고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당시 신학생이었는데 강남의 중형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했다. 큰 어려움이 없었던 생활은 나로 하여금 목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극적인(?) 섭리와 인도하심으로 제주도 한 교회의 청빙을 받아, 큰 고민이나 걱정 없이 설렘과 기대감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됐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초보 사모로서의 준비되지 못함과 철없음이었다.
외로운 제주 생활
그런데 막상 제주에 내려와 보니 내 생각과 기대와는 달리 처음부터 실망의 연속이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고립감이었다. 제주에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육지(제주에서는 이렇게 부른다)에서는 원하면 언제든지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제주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마음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다.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것 때문인지 마치 외국 생활만큼이나 지인들과 몸과 마음이 멀어졌다. 계속되는 외로움이 나를 짓눌렀다. 설상가상으로 제주의 습도 높은 해양성 기후까지 내 몸을 짓눌러 나는 점점 더 무기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새로 부임한 교회는 부임 전에 들은 이야기와는 달리 많이 힘든 상황이었다. 교회는 도심의 변두리 한 모퉁이에 위치했고, 교회 주변은 점집과 술집이 즐비했다. 주위에는 온통 몸과 마음이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뿐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서울 강남의 사람들과는 생각하는 것도, 삶의 패턴도 너무 달랐다. 성도들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해서 교회를 떠나고 있었고, 남아 있는 성도들마저 마치 떠날 시기만을 엿보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활기 없는 예배,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성도들, 오랜 시간 동안 체질화된 무력함 등이 나를 지치게 했다.
가난한 영혼들을 만나다
교인들의 집을 심방하면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는 집이 태반이었고, 교회에 출석하는 교회학교 아이들은 믿지 않는 부모들로부터 방치돼 있었다. 교회의 몇 안 되는 아이들 대부분은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제주도는 이혼율이 전국 1위였다. 그러던 중 이런 상황을 잘 대변해 주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불규칙하게나마 교회에 출석하던 한 여학생이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연락도 되지 않아 집으로 찾아갔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열악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를 언제 했는지 부패해가는 밥통 속의 밥, 말라비틀어진 밥상 위의 반찬들, 여기저기 나뒹구는 애완견의 배설물 등으로 인해 말 그대로 집 안은 쓰레기장 그 자체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이들이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런 환경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여학생은 가출하고 집에 없었다.
나는 교회에서 이 여학생의 동생들을 돌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몇 달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여학생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너무 반갑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학생을 만났을 때, 나는 당황했다. 17살 여학생이 임신을한 것이다. 여학생의 부모도 만나고, 사회복지사도 만나면서 여학생이 미혼모 쉼터에서 생활할 수 있게 도와줬다. 해산달이 차 여학생의 엄마를 대신해 분만대기실에서 함께하며 안타까움과 염려 속에서 몇 시간 동안 눈물로 기도했다.
그 후 다시 여학생을 미혼모 쉼터에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능함,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어린 여학생을 잘 돌보지 못했음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왜 나를 제주도, 그것도 가난하고 소외된 영혼들로 가득 찬 이곳에 보내셨는지 질문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주도 사역은 두 달란트 사역
그러던 중 나는 목사님과 함께 마태복음 25장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다가 ‘한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두 달란트 가진 자’였다. 그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 비하면 작은 것을 가졌지만, 비교 의식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한 달란트 가진 자와 함께 다섯 달란트 가진 자를 비난하거나, 주인을 향해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이 맡긴 두 달란트를 감사하게 여기며, 다섯 달란트 가진 자와 동일한 마음과 열심으로 ‘착하고 충성되게’ 일해 결국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했다.
목사님과 나는 제주도에서의 사역을 ‘두 달란트 사역’이라 이름 붙였다. 우리는 큰 능력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대한민국 남쪽 땅, 작은 섬 모퉁이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가난하고 소외된 영혼들을 위해 눈물을 뿌리며, 말씀으로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 애쓴다. 우리는 이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기쁨으로 제자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한 사람’을 열심히 세우고 있다. 지금은 충성된 좋은 동역자들이 세워져 함께 사역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주도와 제성교회와 소중한 한 사람을 건강하게 세워 가기 위해 오늘도 감사의 눈물로 씨를 뿌린다.
한미숙 사모는 현재 김종철 목사와 함께 제주제성교회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