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이의용 교수 _ 대전대학교
요즘 환갑을 넘긴 남성가수들이 20대 젊은 아이돌 그룹이 주도하는 가요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이 이끄는 ‘세시봉’의 재등장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1970년대 가요계를 주도했던 스타들이다. 당시 이들의 등장으로 이미자, 남진, 나훈아가 독점했던 가요계는 큰 도전을 받아야 했다. 덕분에 팬들의 선택 폭은 넓어졌다.
‘세시봉’의 재등장과 미디어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두세 개의 기업이 만든 가수와 노래가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다. 노래 자체보다는 섹시함과 노출, 춤으로 영상 쇼를 연출하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 ‘소녀시대’, ‘2PM’의 노래가 아이들의 동요가 돼버렸다. 이런 노래들은 가사도 선정적인 데다가 리듬과 가락이 너무 격하고 빨라서 청중이 따라 부르기가 어렵다. 교회의 복음성가나 CCM도 이를 닮아가고 있다.
반면에 ‘세시봉’의 노래는 서정적이고 단순하여 청중이 쉽게 따라 부를 수가 있다. 그래서 음악이 흘러나와도 벙긋 못하는 40대 중반 이후의 세대가 ‘세시봉’의 노래에 환호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나이가 너무 많은 데다, 뒤를 이을 가수들이 많지 않아 큰 기대는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미디어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문화의 주도층은 주로 서민들이었다. 서민들 사이에서 생겨난 노래가 서민들의 취향에 따라 보급되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미디어가 문화를 주도한다. 좋은 노래를 만든다고 잘 알려지지 않는다. 미디어를 타야 팔린다. 미디어는 현상을 비쳐줄 뿐만 아니라 확대 재생산해준다. 미디어는 이 시대의 ‘공중 권세’다.
문제는 미디어가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디어도 기업이기 때문에 현상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 ‘세시봉’의 재등장도 미디어가 했다. 아니 그 프로그램의 프로듀서가 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시청률을 올리려는 방송국의 전략이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미디어들이 우리 시대의 문화를 주무르고 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정부든 교회든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하지 않고는 ‘뜨지도’ 못할뿐더러, 자칫 ‘한 방’에 쓰러질 수도 있는 세상이다.
미디어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 요즘 우리 기독교가 이런 미디어의 속성을 너무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 비쳐진 기독교의 부정적인 모습이 미디어의 왜곡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디어로 인한 파장이 엄청난 만큼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이다.
돈, 명예, 권력 지향의 삶 - 감시 카메라에 걸리다
나는 매주일 아침 CBS라디오의 <크리스천 매거진>이란 프로그램을 5년째 진행해오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교계 소식과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얼마 전부터는 이름 없고 변두리에 있으며 작고 소박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는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어떤 분은 벽지에서 10년째 목회를 하고 있는데 교인 수가 열 명 정도다. 그나마 그가 전도한 사람들이고 70대 가까운 노인들이다.
또 어느 분은 예산의 70%를 모두 지역사회를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 교인 수는 30여 명. 10년 동안 사례비를 받아 본 적이 없단다. 그 밖에도 감동적인 사연들이 많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도시의 커다란 교회의 작은 부서 일도 안 되는 규모다. 그렇지만 그 작음, 적음, 약함, 낮음, 하찮음 속에서 이들은 큼, 많음, 강함, 높음, 중요함을 발견하며 산다.
이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전도가 힘들다는 점이다. 우선 농촌, 산촌, 어촌에 전도할 대상자가 없다. 있다 해도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나빠서 전도하기가 어렵다. 연일 언론을 타고 흘러나오는 나쁜 소식들이 전도의 문을 서서히 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디어는 이름 없고, 변두리에 있고, 작고 소박한 사역자들을 주목하지 않는다. 신자들보다는 목회자를, 작은 교회보다는 큰 교회를, 평신도보다는 높은 ‘자리’의 지도자를 감시 카메라처럼 비쳐준다. 그래서 이들 무명 인사들의 아름다운 삶은 묻히고 만다. 결국 세상은 유명인사들의 언행이 곧 기독교의 모습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명문대학 여부는 그 학교 출신이 졸업 후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로 결정된다. 그래서 졸업생들이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안달이 난다. 좋은 종교 여부는 그 종교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로 결정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오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돈, 명예, 권력을 지향하며 사는 모습이 너무도 자주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순진한 평신도들과 무명의 사역자들을 맥 빠지게 한다. 그리고 비신자들에게 기독교가 나쁜 종교라는 오해를 심어주게 된다.
돈, 명예, 권력을 지향하는 ‘일부’ 인사들의 잘못된 삶이 한국 교회의 얼굴(Brand)이 되고 있음은 대단히 억울한 일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의 삶이 순진한 신자들에게 모델이 되어가고 있고, ‘기독교 문화’로 인식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제발, 기독교의 얼굴인 ‘교계 어른’들은 평신도들과 다음 세대가 마실 ‘진리’라는 옹달샘을 더 이상 오염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할 자신이 없으면 속히 은퇴를 하고, 은퇴를 하면 노욕을 버리고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면 좋겠다. 돈이 필요하면 사업가로 변신을 하고, 명예가 필요하면 교회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좋겠다. 권력이 필요하면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의 주인이 되기 위해 올인을 하면 좋겠다.
한 발은 교회의 핵심에 들여 놓은 채 다른 한 발은 돈, 명예, 권력이 있는 곳을 기웃거리지 않으면 좋겠다. 가까이 해야 할 것과 멀리 할 것을 잘 구분하되, 실수를 했으면 깨끗하게 인정하고 물러나 회개하고, 검찰과 법원에 제출한 고소나 고발 서류는 거두어들여 우리끼리 해결하면 좋겠다.
다시 사순절과 부활절이다. 미디어의 카메라와 세상의 눈은 지금도 24시간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지금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언행에 조심하며 회개하고 거룩성을 회복할 때다.
이의용 교수는 교회문화연구소장으로 활동해 왔으며, 문학박사로 이번 학기부터 대전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커뮤니케이션과 교수법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