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2005년 04월

종으로서의 리더십이 절실하다-『권한 위임의 기술』

서평 김 진 목사 _ 예수도원 이끔이

-『권한 위임의 기술』케네스 머렐, 미미 메레디스 지음/ 김기쁨 역/ 지식공작소/ 1,2000원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자신의 능력만 믿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어떤 사회이든 그 사회는 상호 유기적인 관계로 형성되어 있고, 또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보편적인 가치에 근거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생산적인 관계망 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어떤 조직이든 조직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활용할 때 보다 효율적인 성과가 가능하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상호 북돋움이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가가 문제이다.

 

권한 위임을 통한 승승의 원리
『권한 위임의 기술』(Empowering Employee)이라는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경영 전문서이다. 이 책은 그 제목에서 보여지듯이 어떻게 하면 한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자신 안에 있는 권한과 힘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눔으로써 서로가 풍요로워질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그 조직이 발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전문 경영자나 회사원을 위한 책일 뿐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우선 이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이 말하는 권한 위임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정의(定意)는 다음과 같다. 권한 위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람들 사이에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는 영향력의 창조적 분배이며, 책임 공유, 넘치는 에너지, 포괄적이며 민주적이고, 오래 지속된다는 특징을 가진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한 위임을 실천한다는 것은 사람들 자신 안에 내재된 힘을 북돋아 그들 스스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활용하게 하고, 또 성취욕을 불러일으키며, 이를 위해 학습에 투자하고, 조직의 정신과 정체성을 발견하면서 효과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권한 위임을 실천한다는 것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필요에 따라 서로 이끌어 주고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전통, 제약, 관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것을 남에게 개방하거나 심지어 그 권한을 위임하면 자신의 능력과 장점이 드러나서 손해 보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특히 경쟁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경쟁력은 무엇이든 독점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한 조직 내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고 소통함으로써 상대방의 능력을 배가시킬 뿐 아니라, 자신의 능력 또한 무한대로 뻗어나가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런 권한 위임을 통해 전체 조직은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권한 위임을 위해서는 ‘대화’가 중요
그러나 이 책은 권한 위임이 의미 있고 타당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시도하기보다는 지혜롭게 진행시켜 나가길 권한다. 구체적으로 올바른 권한 위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또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술과 인력이 필요하다.
권한 위임을 위해서는 학습 기회를 창출해 정보를 공유하고, 더불어 창조적이며 다양하며 조화로운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다수간의 유연한 커뮤니케이션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권한 위임자는 다른 사람의 말과 뜻을 깊이 경청하는게 필수적이다. 권한 위임에 있어서 중요한 소통 기제는 논쟁이 아니라 대화이다. 대화는 일방적인 명령 하달이 아니라 상호 주체적인 소통을 의미한다. 또한 대화는 짜여진 결론이 아니라 열려있는 결론으로 이끌어 가는 기술이다.
권한 위임을 위한 지도자로 갖춰야 될 가장 핵심적인 덕목은 남을 지배하려는 리더가 아니라, 상대방을 섬기는 ‘종으로서의 리더십’(Servant-Leadership)이다. 종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3R’(Respect, Resource, Reinvestment)를 갖춰야 한다. 즉, 다른 사람들을 공경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공급하며, 그들에게 재투자하는 마음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외에도 이 책은 창조적인 권한 위임을 위해 편안한 공간의 배치, 조직의 잠재 가치와 미래의 도전을 파악할 수 있는 혜안, 정보와 부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 자세 등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모든 서술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힘을 인정하되 다른 사람 속에 있는 힘을 무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 안에 있는 잠재된 힘이 발휘되도록 돕는 권한 위임이 자신과 조직을 살리는 길임을 강조한다.

 

예수는 권한 위임 실천자의 전형
전문 경영인이 아닌 한 사람의 목사 혹은 신학자로서 나는 이 책을 잡는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이야말로 이 책에서 말하는 권한 위임의 의미를 온전하게 실현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분이 권한 위임 실천자의 전형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거나 혹은 남을 지배하는 무기로 삼기보다는 그 사랑을 나누고 베풂으로서 자신이 만나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힘을 북돋워 주신 분이 아닌가! 그분이야말로 우리 자신이 고귀한 존재임을 일깨워 주면서 우리 안에 있는 달란트를 세워 주신 분이 아닌가! 자신의 능력을 나누어 주면서 평화의 사도로 귀신을 내쫓고,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힘을 주신 분이 아닌가!
그는 일방적인 가르침보다는 비유와 대화를 통해 하늘의 지혜를 나눠 주셨고, 군림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기꺼이 섬기는 ‘종의 리더십’을 보여 주셨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오늘날 교회가 하나의 ‘조직’으로서 예수의 권한 위임의 모습을 얼마나 재현하고 있는지 되물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성찰이라고 본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목사 한 사람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면서 평신도의 창조적인 은사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날 목회자에게 ‘종으로서의 리더십’보다는 군림하려는 닫힌 권위자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투영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교회의 핵심 가치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가 무시되고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빠져 양적인 성장과 외적인 비대함으로 목회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한 교인들이 서로의 은사(恩賜)를 알아보고 그 은사에 따라 자연스럽게 교회의 직임이 주어지며,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는 힘을 북돋는 권한 위임의 사역을 하고 계심을 믿기에 우리 또한 공동체 안에서 권한 위임이 실천되도록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만약 이 책이 우리 신앙 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언어로 독해(讀解)되어 읽힐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목회나 제자훈련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김 진 목사는 총신대학교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신학부(Ph.D)를 졸업했다. 크리스천아카데미 선임연구원, 성공회대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개신교 수도공동체인 ‘씨알수도회’와 영성공간인 ‘예수도원(道園)’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그리스도교의 영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