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박세광 목사 _ 부산 남도교회
글렌 H. 스테슨의 『산상수훈으로 오늘을 살다』 (국제제자훈련원)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팔복교회’이다. 타브가에 도착하기 전 좌측 산언덕을 3㎞ 걸어올라 팔복산 정상에 이르면, 예수님이 팔복의 산상수훈을 선포한 것을 기념하는 ‘팔복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여덟 가지 복을 상징하는 팔각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내부 여덟 개의 유리창에는 라틴어로 팔복의 내용이 하나씩 아름답게 기록되어 있다. 교회 옆에는 주님이 설교하신 곳으로 추정되는 산상설교 언덕이 있다. 그 곳에 오르면 마치 주님의 음성이 들릴 것 같은 감동이 밀려온다. 바로 그와 같은 감동의 묵상을 하면서 동료 목사들과 함께 그 곳에서 한 동안 고즈넉이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산상수훈에 대한 수많은 저서와 주석이 있지만 글렌 H. 스테슨처럼 실제적으로 접근한 책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친구 데이비드 거쉬가 쓴 편집장 서문이 눈에 확 들어왔다.
“지난 20년간 그는 나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그에 관해 한 가지만 이야기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만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을 별로 만나 보지 못했다. 이 책은 냉담한 성서해석 전문가가 쓴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예수님의 방식이 자신과 모든 그리스도인을 비롯해 세상의 삶의 방식이라고 믿으며 그대로 살아온 한 사람이 쓴 것이다.”
확신 있는 삶의 언어로 소개하다
이 책을 접하면서 좋은 책이 지니는 세 가지의 특징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전문성과 감동, 그리고 현장성이다. 저자는 마치 자신이 예수님이 사시던 현장에 있는 것처럼 글을 써 나간다. 그리고 그가 지닌 해석학의 독특하고도 치밀한 필체로 주님이 말씀하신 시대 상황의 본뜻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무엇보다도 산상수훈의 말씀을 자신이 그대로 살아본 듯한 살아 있는 언어로 확신 있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서문을 보면 이런 느낌을 받는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나의 목적은 산상수훈을 가능한 한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저 예수님의 가르침을 단순하게 풀어놓고 싶을 뿐이다. 그것은 내게 쉬운 일이다. 또한 나는 농부, 신문 배달원, 골프 캐디, 건설 인부, 공장 직원, 기숙사 상담원, 물리학자, 전자 기술자, 청소년 사역자, 담임목사, 교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거쳐 왔다. 때문에 나는 일반인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의 의문과 걱정과 웃음을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보듯이 그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대상들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연약한 일반 민중들이었다. 저자는 주님이 그들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가르치셨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나 이해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산상수훈으로 오늘을 살다』를 읽어 내려가면서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감동이 밀려온다. 너무나도 메마르고 강퍅하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꼭 읽어보아야 할 명저로 추천하고 싶다.
실천적 방식으로의 산상수훈
첫째는 실천적 방식으로의 산상수훈을 소개했다는 점이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저자가 계몽주의에서 오는 이성론과 관념적 시각을 벗어나고자 하는 점이다. 헬라의 관념론은 외적 행동으로부터 내적 영혼을 분리한다. 저자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천국에서의 삶의 양식, 곧 너무나 높은 이상주의’라는 생각을 배격한다. 또한 정반대의 관점, 스스로 완벽해지고 지나치게 높은 이상에 부응하고자 하는 인간적 노력이라는 접근도 불허한다. 사실 17세기의 계몽주의나 헬라의 관념론은 산상수훈을 이런 식으로 접근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관점으로 성경을 보게 만들어 현장에서의 삶과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분리된 이원론적 신앙생활을 낳았다.
저자는 바로 그런 대표적인 인물들이 유대시대의 바리새인들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산상수훈은 이상론이 아니다. 그 가르침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입어야 할 하나님의 능력이다. 스테슨은 그것을 “하나님의 임재”라고 표현한다. 그는 산상수훈을 철저히 이사야 예언의 성취로 이끌고 간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행하고 계신 일’, 곧 ‘그분의 임재하심’으로 인도한다. 참으로 놀랍게도 스테슨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임재 속에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으며, 그의 친구 파루시 파루셰브의 경험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산상수훈은 하나의 임재 안에 있는 삶에 관한 것, 하나님이 항상 행하고 계신 새로운 일 가운데 참여하라는 초대이다.
변화를 위한 방식으로의 산상수훈
둘째로 변화를 위한 방식으로의 산상수훈을 소개한 점이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많은 설교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절망스런 일이다. 반면에 제자훈련을 통하여 훈련생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감동과 보람, 그 이상의 하나님의 신비로운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살았고 운동력 있는 변화와 능력의 말씀임을 수 없이 체험한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산상수훈에 대한 윤리적 접근을 배격한다. “많은 사람들은 팔복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높은 이상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보다 우리 자신의 선행 혹은 노고에 초점을 맞추는 관념론적 윤리이다.” 스테슨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삶의 방식을 ‘악순환’으로 진단한다. 그는 산상수훈을 ‘전통적 의’, ‘악순환에 대한 진단’, ‘변화의 시작’이라는 틀을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길로서 제시하려고 한다.
“제4장 분노와 유혹 다스리기”, “제5장 진실과 화평과 원수를 향한 사랑”, “제7장 돌보시는 하나님”, “제8장 네 눈의 들보를 보라”에서 기존의 관념론적인 해석을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재해석한다. 그의 독특하고도 치밀한 분석은 인간이 지닌 연약함과 완악함을 정확하게 진단하며, 변화를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실감나게 인도한다. 저자는 산상수훈이야말로 높은 이상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과 구원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도전이 되었던 것은 글렌 H. 스테슨이 ‘디트리히 본회퍼’의 삶에 영향을 받은 점이다. 책의 도처에서 그는 본회퍼의 저서 『나를 따르라』와 그의 감동적인 삶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또 한 사람의 저자 ‘본회퍼’를 만나는 쏠쏠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박세광 목사는 배재대학교 국문과와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리버티대학교 신학대학원 강해설교(Th.M)를 졸업했다. 새로남교회, 서대문교회, 수영로교회 부교역자를 거쳐 현재 부산 남도교회 담임목사로 시무 중이다.